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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아 Oct 26. 2022

쉬어 감.

2022.10.07

"선생님. 저는 이번 주 지옥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마치 제가 있는 곳이 지옥이 아닌 것처럼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저에게서 악취가 나요. 뻔뻔하게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제 스스로가 '밉다'라는 감정을 넘어 가루처럼 부서져 버리면 좋겠어요. 그래서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산산이 날아가버렸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선생님께서 저에게 싸울 의지가 전혀 없는 사람 같다고 하셨죠. 맞아요. 저는 싸울 의지도, 용기도, 힘도 없어요. 그래서 이번 주 상담을 쉬고 싶어요."  

             

나는 상담 하루 전 날, 상담 선생님께 '이번 주 상담에 가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긴 장문 메시지를 보냈다. 상담 선생님은 메시지를 읽고 한동안 답이 없으셨다. 두어 시간이 흘렀을까. 선생님에게서 답신이 왔다. 나의 마음이 그러하거들랑 상담을 한 주 쉬어가도 좋겠다는 답변이었다. 대신에 한 가지를 꼭 당부하셨다. 나 스스로를 해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의례적으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정말 의례적인 대답이었다. 나는 언제라도 나 자신을 해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그렇게 하고 싶은 욕구가 매일같이 올라오고 있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 마음이 지옥인데 내가 있는 곳이 지옥이 아닌 것 마냥 직장 동료를 보면 웃고, 맛있게 무언가를 나누어 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나는 지겹다. 더 이상 괜찮은 얼굴을 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어쩌면 이곳에 쓰는 주저리주저리 글을 쓰는 까닭도 '내가 지금 괜찮지 않아요. 제 삶은 지옥이에요'라고 외치는 방법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내 삶은 지금 전혀 괜찮지 않다. 그렇게 상담 한 주를 쉬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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