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돌아와 마드리드 공항에서 밤을 지새운 뒤, 처음으로 히치하이킹(*)에 도전했다. 다음 목적지인 프랑스 리무(Limoux)와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두려움과 부끄러운 마음이 뒤섞여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이동 시마다 교통비를 지출하기엔 예산이 빠듯하였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히치하이킹 (영어: hitchhiking, thumbing 또는 hitching)은 여행, 특히 무전여행에서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차를 타려고 하는 행동이다. 히치하이킹을 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은, 히치하이킹의 의사를 나타내기 위해 도로변에 서서 팔을 도로쪽으로 뻗고 엄지손가락을 든다. (위키백과)
먼저 히치하이킹을 하는 데 유용한 정보들이 담긴 웹사이트 ‘히치위키’에서 마드리드(Madrid) 교외로 나가는 길목을 파악했다. 마드리드에서 차로 두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부르고스(Burgos)까지 가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종이에 두꺼운 글씨로 ‘Burgos’를 쓴 뒤, 교외로 향하는 운전자들의 눈에 띌 수 있도록 흔들기 시작했다. 소심한 마음을 채 버리지 못해 쭈뼛거리며 손을 휘젓는데, 어떠한 차도 멈춰서지 않았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서인지 혹은 무척이나 따가운 스페인의 햇빛을 고스란히 맞아서인지 급작스레 피곤함이 몰려왔다. 공항 로비에서 밤을 지새운 피로가 풀리지 않아 도로변에 서 있는 와중에도 꾸벅꾸벅 졸았다. 그늘에 앉아 잠시 쉬기라도 할라치면 금세 잠이 들어 고꾸라졌다.
하염없이 엄지를 휘두르는 내게 한 스페인 사람이 다가와서는 “이곳에서는 차가 잘 잡히지 않으니, 차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 쪽으로 나가보라”고 조언하여,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광장 근처에 이르자 차들은 확연히 많았으나 온통 교통이 혼잡했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다시 도전해 보아야겠다는 의욕도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매 끼니를 싸구려 빵으로 때우다 보니 더는 기력이 없었다.
히치하이킹을 하기는커녕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 일단 부르고스까지 버스를 타고 간 후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묵었던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공용 숙소)에 다시 한번 가보기로 했다. 푯값은 18유로로 현 상황에 쓰기엔 큰 금액이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산티아고 길을 순례하던 중은 아니었으나, 순례자임을 입증하는 크루덴시알(Crudencial, 순례자여권)을 소지하고 있었기에 숙박 허가는 쉽게 내려졌다.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땐 그저 걷는 것에만 집중하고, 교통비며 잘 곳을 걱정할 필요 없이 그날 도착한 마을의 순례자 숙소에서 푹 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돈 없이 전전하며 잘 곳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이 되니, 순례길을 걸었던 게 비교적 쉽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여겨졌다. 40일 동안 약 900km를 걸었던 당시에는 홀로 감당하기에 벅찬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하루하루 목표한 만큼 걷기만 하면 달콤한 휴식이 보상으로 주어졌던 안락한 나날이었음이 틀림없었다.
기필코 히치하이킹에 성공해야겠다는 결의는 유효했으나, 길가로 나서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두 번째 날의 목표는 국경을 넘어 프랑스 남부 바욘(Bayonne)에 이르는 것이었고, 그 길목에 있는 비토리아(Vitoria)와 도노스티아 산세바스티안(Donostia Saint-Sébastien)을 차례로 거쳐 갈 예정이었다. 먼저 부르고스에서 약 112km 떨어진 곳에 있는 비토리아에 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순례할 때 걸었던 단조로운 공장 지대를 거꾸로 걷는 와중 간간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순례자들은, 하나같이 내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거나 “좋은 여행이 되기를!(Buen Camino)” 하고 인사해 주었다. 더는 순례를 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순례자들에게 인사를 받는 게 멋쩍기만 했다.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곳에 이르자, 주유소가 있었다. 부끄럽고 낯선 마음을 이기지 못해 운전자들에게 동승을 요청하지는 못했지만, 직원에게서 비토리아로 가는 길이 정확히 어느 방향인지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비토리아로 가는 길목에 서서 ‘Vitoria’를 쓴 종이와 엄지를 흔드는데, 전날보단 부끄러움이 한결 덜했다. 그 순간 지나간 줄로만 알았던 자가용 한 대가 저만치 멈추고, 한 아저씨가 차에 타라는 손짓을 보냈다. 호탕하고 수다스러운 스페인 아저씨였다. 그는 노선상 비토리아까진 힘드나, 그 길목에 있는 미란다 데 에브로(Miranda de Ebro)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약 80km에 달하는 구간이었다. 아저씨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해 스페인어를 자주 섞으셨지만, 신기하게도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그는 마을로 향하는 한 시간 내내 유명한 스페인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나를 태워 함께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흡족해하던 그는, 내가 스페인에서 ‘꼬시도 마라가토(Cocido Maragato)'라는 이름의 전통 요리를 먹었다고 하자 좋은 음식이라며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저씨는 미란다 데 에브로 마을 초입에 있는 병원에 날 내려주고선 떠나셨다. 잠시 한숨 돌리며 가지고 있는 빵과 햄으로 시장기를 채웠다. 순식간에 낯선 이의 차로 80km를 달려온 게 믿기지 않았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히치하이킹에 도전했고, 오래지 않아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자동차로 함께 여행하고 있는 세 명의 프랑스 청년들이었다. 아쉽게도 나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은 내가 더욱 수월하게 차를 잡을 수 있도록 마을의 출구까지 데려다주었다. 두 번째 히치하이킹마저 성공하자 자신감이 급속도로 차올라, 고속도로 입구에서 비토리아까지 데려다줄 다음 차를 물색하며 당차게 걸었다.
더는 멈춰서는 차들이 없었다. 신호를 보내는 것에만 몰두하며 걷다 보니, 길게 이어진 갓길이 어느새 고속도로로 탈바꿈한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차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고, 다섯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있을 정도로 널찍했던 갓길이 한 명만 겨우 설 수 있을 정도로 좁아져 있었다. 아니, 그건 이제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자동차들만이 다닐 수 있는 고속도로였다.
고속도로에 진입했다는 의식 없이 오랜 시간 걸어오고 난 후였기에, 가까운 마을로 가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덤프트럭이 아슬하게 곁을 스칠 때마다 머리털이 곤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고속도로로 이루어진 감옥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고선 구석에 서 있는 내 옆으로 경찰차가 다가왔다. 차에서 내린 경찰관은 걱정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한편,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경찰관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자, 그는 말없이 차에 타라고 손짓했다.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미란다 데 에브로(Miranda de Ebro)로 돌아왔다. 진이 빠져버린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버스 편을 알아볼 생각으로 일단 터미널에 갔으나, 이미 시간이 꽤 지난 후라 운행 중인 버스가 없었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가장 저렴한 음료를 주문한 뒤, 저녁 내내 죽치고 앉아 앞으로의 계획을 재정비했다. 카페 와이파이를 이용해 접속한 모바일 메신저에 이탈리아 친구 마테오가 보낸 메시지가 와 있어 큰 위로가 되었다.
상황이 계획대로 돌아가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두려운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맞닥뜨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에 주안점을 두어 남은 여정을 점검했다. 히치하이킹엔 실패했지만, 저렴한 숙박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비싼 돈을 들여 잠잘 곳을 구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인적이 드문 곳에서 노숙하기로 마음먹고선 버스 터미널 근처 골목으로 들어갔다. 침낭을 깔고 노숙을 하는데, 사람들이 오가는 발걸음 소리뿐만 아니라 새벽 버스가 내는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게다가 등에 닿아 있는 아스팔트 땅바닥 밑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심상치 않게 울려 왔다. 거리를 배회하는 개가 찾아와 무방비상태로 누워있는 나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오가기 전에 일어나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이 채 트기도 전에 일어났다. 자판기로 가득 차 있는 무인 상점 안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핫도그며 젤리, 과자 등 여러 종류의 군것질거리를 파는 자판기가 한데 모아진 곳으로, 불이 환히 밝혀져 있어 침입에 대한 걱정이 덜했다. 더는 거리로 나설 자신이 없어, 남은 돈을 탈탈 털어 교통비로 사용하는 대신 하루 더 노숙하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는 프랑스 남부의 시골 마을에 있는 목장으로, 요새 도시로 유명한 카르카손(Carcassonne) 근처였다. 스페인 북부 미란다 데 에브로에서 버스 네 대를 갈아탄 끝에 국경을 넘어 카르카손에 도착했고, 역 근처 운하에 있는 벤치에 침낭을 폈다. 두 번째 노숙은 한결 수월했다.
(**) 히치하이킹이나 노숙을 해야 할 정도로 돈이 없었던 이유: 항공권을 미리 구매해 두었고, 각 나라에는 일을 돕는 대신에 숙박을 지원받기로 한 호스트들이 있었기에 육로 이동 시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만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이전의 여행지(모로코)에서 계획보다 많은 예산을 사용하게 되어, 약소한 비상금을 보완할 수 있는 육로 이동 방책(즉, 히치하이킹!)을 마련해야 했다. 호스트들과의 약속 장소까지만 가면 돈을 쓸 필요가 없었기에, 딱 교통비 문제 하나만 해결하면 되었다.
노파심이 들어 독자분들께 전하는 메시지: 제가 겪었던 히치하이킹과 노숙이 다소 위험천만한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겪었던 모든 일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진행 과정을 가감 없이 기술하였으나, 여러분께서 낯선 곳을 여행할 때는 되도록 안전한 숙소와 교통 시설을 이용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