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다 보니 에쉴리와 나 둘이서도 작업을 척척 해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단조로운 농장의 일과를 며칠이고 똑같이 반복하다 보니 절로 손에 익게 된 것이다. 이젠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에도 선수가 됐다.
닭들은 닭장 문을 열어도 동요하지 않고 얌전히 거닐다가, 모이통이 채워지면 사이좋게 모여 식사를 한다. 닭들이 모이를 먹는 동안에는 빈 닭장에 쌓인 배설물을 처리한 뒤 물통을 채운다. 처음에는 닭이 날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손을 뻗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나, 생각보다 닭이 온순하다는 걸 알게 되고선 문제없이 안아 들었다. 닭들은 우악스럽게 잡으려는 기색을 보이면 소리를 내며 피해 다니지만, 자세를 낮추고 부드러운 손길로 털을 쓰다듬어주면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있다. 안아 든 이후에도 쓰다듬는 손길을 멈추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안겨 있다. 농장의 귀염둥이, 양치기 개 모카는 우리가 닭장에 갈 때마다 따라와서는 일이 다 끝날 때까지 문 근처에 엎드려 구경하곤 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위들의 우리에 들어갈 땐 어김없이 양팔을 퍼덕여야 한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귀엽게 보이는 생김새와는 달리, 하는 행동마다 거칠기가 짝이 없기 때문이다. 두툼한 부리에 살갗이 쪼이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선, 마치 큰 새가 된 것처럼 양팔을 쭉 뻗어 날갯짓을 하는 동시에 거칠게 발을 굴러 근처에 오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순한 말에게 먹이를 주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신사와도 같이 점잖은 자세로 기다리기 때문에 겁먹지 않아도 된다.
먹이를 주는 데 있어 유일하게 어려움을 느낀 동물은 흑돼지였다. 농장 뒤편 한구석에 몸집이 큰 흑돼지들이 모여 지냈는데, 이들에게는 물에 불린 귀리나 콩 또는 유청(치즈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을 먹였다. 문제는 먹이통을 채우러 우리 안에 들어가는 순간,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돼지들이 먹이가 든 양동이 쪽으로 난폭하게 달려든다는 점에 있었다. 자칫하다간 그 엄청난 덩치에 치여 고꾸라질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동료와의 분업이 필수적으로 요청되었다. 한 명이 울타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먹이통을 채우면서 돼지들을 유인하는 틈을 타, 다른 사람이 재빨리 안쪽으로 뛰어가 빈 먹이통들을 차례로 채웠다. 거칠게 돌진하는 돼지들을 피해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마치 썩은 우유와도 같은 인상과 향을 풍기는 치즈 부산물들이 몸으로 쏟아지기 일쑤여서, 돼지들을 보러 갈 땐 늘 가장 낡은 옷을 입었다.
동물들을 돌보는 일 외에도, 농장에는 다양한 일거리가 있었다. 양젖으로 만든 요구르트에 농장의 이름이 적힌 라벨이나 유통기한이 찍힌 스티커를 붙이고, 때로는 작업장에서 함께 양젖 치즈를 만들었다. 멧돼지의 침범을 방지하기 위해 전류가 흐르는 말뚝을 박는 작업을 돕기도 했다. 처음엔 망치를 잘못 내리쳐 손가락에 꽂아 박던 것도, 수십 번을 연습하다 보니 익숙하게 할 수 있었다.
비슷한 일과가 이어지는 한편 나와 에쉴리, 쥐스틴이 번갈아 식사를 준비했다. 모로코에서 스페인을 거쳐 프랑스로 넘어오는 동안 하잘것없는 식량들로 배를 채우던 것과 달리, 농장에 도착하고부터는 신선한 채소와 빵, 각종 곡물들을 양껏 먹을 수 있었다.
에쉴리는 ‘영국 레시피’를 보여 주겠다며 자신 있게 조리를 지휘했다. 막상 결과물을 맛보니 시금치를 넣은 국에 밥을 말아 먹는 요리여서 차라리 한국적인 맛을 띠는 음식으로 보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또 다른 ‘영국 레시피’라며 선보인 요리는 소금과 후추로 볶아낸 닭가슴살에 삶은 당근과 애호박, 밥을 곁들인 음식이었다. 에쉴리와 얀은 밥을 빵에 올려 먹는, 한국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다소 괴상해 보이는 방식으로 식사를 했다. 나는 농장 식구들을 위해 호박과 가지, 달걀을 잘게 썰어 넣은 오므라이스를 만들거나, 늘 가지고 다녔던 김밥용 김과 발을 이용해 오이 김밥을 차려 냈다.
한편 날이 더워지면서 식사를 야외에서 하게 되었는데, 혐오를 느낄 정도로 엄청난 양의 파리 떼가 달려들었다. 쉬쉬 쫓아내면 도망가는 여타 파리와는 달리, 동물농장에 머무는 녀석들은 무척 거칠었다. 손바닥으로 식탁을 치거나 접시 위로 손을 휘저어도, 도망가기는커녕 살갗을 깨물었다. 식사를 끝내고 나면 늘 양젖으로 만든 치즈와 디저트를 먹었다. 웬만하면 디저트를 거르지 않는 습관이 있던 얀과 쥐스틴은 양젖으로 만든 요구르트나 산딸기를 올린 타르트 따위를 자주 권하곤 했다.
늘 함께 지냈던 에쉴리가 떠난 이후로는, 농장의 일과에 익숙해진 것과 별개로 쓸쓸함을 견딜 수 없었다. 기분이 눅눅하다 못해, 내가 우프(*)를 통해 온 여행자가 아니라 얀과 쥐스틴의 농장에 고용된 일꾼과도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할 일이 많은 얀과 쥐스틴이 각자 일하느라 바쁜 건 당연했지만, 에쉴리와 둘이서 했던 일들을 혼자 도맡아 하는 데다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으니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나 자신이 중세 시대의 하녀라는 상상을 하며 일했다. 창고를 개조한 방에 머물고 있던 것이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 우프(WWOOF, 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 일손을 돕는 대신 무료로 숙식을 지원받길 원하는 사람들과 농장주를 연결해 주는 네트워크로, 현지인의 삶에 깊이 녹아들 수 있는 모종의 여행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농장에서 맞닥뜨려야 했던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밀짚 더미에 앉아 흐르는 땀을 닦아 내거나 어렴풋한 미소를 띤 채 방울을 딸랑이는 양들을 바라보던 경험은 내 영혼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 온종일 노동하는 몸에는 배추벌레처럼 영혼을 갉아먹는 '생각'이란 게 위세를 떨칠 자리가 없었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내면이 휴식할 수 있는 침묵의 시간이 달갑게 다가왔다.
앙드레 지드는 그의 작품 『지상의 양식』에서 낙농장을 찬양하는 시를 읊는다, '헛간 곁에서 마른풀 향기가 상기시켜 주는 여름'을 꿈꾸면서. 나는 그렇게, 코끝에 맴도는 마른풀 향기를 간직한 채로 얀과 쥐스틴의 농장을 떠났다.
휴식! 침묵. 치즈가 압축되고 있는 발 받침에서 끝없이 떨어지는 물방울. 금속관 속에 압착되는 버터 덩어리. 7월의 몹시 더운 날씨에는 굳어진 우유 냄새가 한결 더 신선하고 김빠진 듯…… 아니 김빠진 듯한 것이 아니라 싸한 맛이 어찌나 은근하고 연한지 콧속 저 깊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어 냄새라기보다는 벌써 맛이나 다름이 없다.
더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하게 유지한 교유기(攪乳器). 배추 잎 위에 놓인 버터 덩어리. 농장 집 여인의 붉은 손. 언제나 열려있지만 고양이나 파리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망을 씌운 창문.
크림이 다 떠오르기까지 점점 더 노란빛을 띠어가는 우유가 가득 찬 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크림이 천천히 떠오른다. 차츰 부풀어 주름이 잡히더니 거기서 유청(乳淸)이 생겨난다. 크림이 모두 빠지고 나면 걷어내는데……. (그러나 나타나엘이여, 그러한 것들을 모두 다 그대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농사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는 그런 것들을 훌륭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무엇이나 제각기 쓸모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유청도 아주 버리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준다. 노르망디에서는 그걸 돼지에게 주지만 그보다 더 요긴히 쓰일 수도 있는 모양이다.)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