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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달수 Nov 07. 2020

hello, stranger?

글모임 엮기와 풀기에서 쓴 글을 올립니다. 이번 글감은 '다가가는 법'

hello, stranger?

-영화 [클로저] ‘앨리스’의 대사 중

 

한 참 이해도 못하면서 이것저것 유명하다는 영화를 섭렵하던 시절이 있었다. 갓 중2병을 졸업하고 감성 가득한 고등학생 시절, 난 너희와 달라!라는 허세가 가득했던 나는 [씨네 21]이나 [필름 2.0] 잡지를 보며 자의식 과잉 허세를 채우기 위해 평론가들이 좋다고 하는 영화를 동네 도서관에서 DVD를 대여하거나 이런저런 방법으로 감상했었다. 감상 후에는 싸이월드 사진첩 폴더에 ‘-‘라고 이름 붙이고, 그럴싸한 영화 스틸컷과 검색하면 흔히 나오는 대사를 업로드하곤 했다. 지금 보면 이해도 못하면서 이해한 척했던 부끄러운 시절이지만. 그중에서 영화 [클로저]는 왜 이 영화가 유명하지?라는 물음표 백만 개가 생성된 영화였다. 좋아하던 애 싸이월드 BGM이 데미안 라이스가 부른 ‘The Blower's Daughter’였고, 괜히 걔랑 말 한마디 더 하고 싶어서 봤던 영화였기 때문에 본 투 비 유교걸이었던 난 주인공 중 한 명인 앨리스의 행동들이 이해하기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걔에게도 선뜻 다가갈 수 없었다.


  ‘closer’에는 상반된 두 가지 뜻이 있다. 발음에 따라서 뜻이 달라지는데, ‘닫는 것’이라는 뜻은 ‘클로저’라고 읽고 ‘더 가깝게’라는 뜻으로 사용하려면 ‘클로서’라고 읽어야 한다. 영화 제목을 [클로저]라고 표기해 좀 혼돈이 있을 수 있는데 영화는 ‘클로서’로 읽는 것이 더 알맞지 않나. 이처럼 ‘closer’는 더 가까운, 더 친밀한 이라는 뜻도 있지만 닫는 것, 최종회라는 뜻도 있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해석이다. 그렇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까워진다는 건 공간이나 마음이 좁혀지는 거고. 그러니까 친밀해지는 행위 자체가 점차 폐쇄적이고 _우리사이진짜진짜최종완료. pdf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닌가 싶기도 하고.


 다가가는 행위엔 양면성이 있다. 모든 행위가 그렇듯이 말이다. 낯선 사람에서 낯설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 낯선 것에서 낯설지 않은 것으로 전복되는 지점. 그게 ‘다가감’이라고 생각한다.


 앨리스가 댄을 보자마자 “안녕, 낯선 사람?”이라고 말을 건 것도, 그 ‘다가감'의 지점이지 않을까. 한국에선 대놓고 상대에게 “낯선 사람 안녕?”이란 표현을 쓰지 않으니 이렇게 낯선 사람, 즉 stranger라고 지칭하는 것이 꽤 흥미로웠다.


 그래서 케첩 고백을 하자면 나도 이런 표현을 가가 라이브 랜덤채팅 때 썼음을 밝힌다. 앨리스가 이해가 안 갔지만, 안 간만큼 더 멋졌거든. 멋져지고 싶어서 그 대사를 따라 했다. 랜덤채팅에서 “안녕, 낯선 사람?”이라고 말을 걸었던 수많은 낯선 이들은 이름도, 목소리도, 얼굴도 모르고 그저 상대가 쓰는 텍스트로만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내가 되고 싶은 게 될 수 있었다. 40대 전문직 남성이나 20대 명문대 학생이라던지, 미친 욕쟁이 또라이 새끼도, 30살 원남쓰도 될 수 있었다. 랜덤채팅 안에서는 진실을 말해도 거짓 같고, 거짓을 말해도 거짓 같은 특수한 공식이 성립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오히려 낯선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숨기고 싶거나 추하다고 여겨지는 진실은 한낱 거짓처럼 보여 친밀한 이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것보다 훨씬 눈치의 무게감이 덜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있어서 ‘다가감’은 코바늘의 ‘사슬 뜨기’ 기법 같다. 두 실이 대칭 형태를 이뤄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뜨기 말이다. 나는 코바늘의 일정한 사슬 뜨기 같은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지만, 신기하게도 힘을 세게 주면 너무 뻑뻑하게 실이 짜여서 틈이 없고 너무 힘을 빼면 긴장이 없어 축 쳐지게 된다. 관계로 친다면 ‘힘’이라고 지칭한 것은 ‘관심’으로도 대체가 가능하리라.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상대에게 진심을 원한 적, 대부분 다 있지 않을까? 미숙한 시절의 나도 그랬고, 나에게 다가온 미숙한 상대들도 진심을 알기 원했다. 그런데 그 진심, 상대방 듣기 좋으라고 거짓으로 꾸며 낸 마음이 반 이상일 수도 있지.


 진심은 오히려 상대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꺼내 보이기 힘들다. 멋 모를 때 했던 연애나 우정에선 다가가고 가까워질수록 상대의 진심을 알길 원했다. 그런데 진심을 알고 싶어 하면 할수록, 진심을 이야기하면 할수록 상처 받는 건 그걸 듣기 원했던 나였다. 마치 래리가 다그치면서 앨리스에게 본명을 집요하게 묻듯 말이다. 그렇게 해서 듣게 된 상대의 진심은 강요해서 들은 대답이었기에 거짓된 마음 같았고, 그 거짓된 마음이라고 생각한 건 내가 강요하면 강요할수록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 되었다. 변질된 관계는 너저분한 끝으로 맺음 되기 일쑤였다.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다 보니, 이젠 잘 포장된 거짓보단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이 더 자연스러우며 편안하다. 가령 “나 사실은 데미안 라이스 지루해서 안 좋아해.” 라던지 “저번에 너랑 약속 깬 거, 너 만나기 싫어서 그랬던 거야.”라는 말들 말이다. 오히려 매끄러운 거짓보다 까슬한 진실을 이야기해 준 사람들과는 꾸준히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거나 누군가 다가와주길 바라는 속내가 꾸준히 생기기도 하고. 사람은 정말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영장류야.


 뭐 그런 고로, 난 언제나 앨리스마냥 행동하며 다가간다. 호기심이 가득 넘치는 눈으로 언젠가는 쉬이 사라져 버릴 설렘을 품고. 두려운 미래가 떠오르기 전에 후다닥 다가가야지, 안 그러면 영영 그의 거짓에도 다가가지 못할 걸 잘 알거든. 안녕, 낯선 사람, 너 나와 함께 관계의 사슬을 떠 보지 않겠어?


Ps) 배경음악은 역시나 데미안 라이스의 곡! https://www.youtube.com/watch?v=YkEZaOrzw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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