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에 한참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온 세상 힘듦, 고난, 역경, 부침 다 이고 지고 살던 시절이라 그렇게 글을 써댔다
글들은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일깨워준다
마치 냄새로 과거를 기억하듯
이글루스에 쓴 글들로 과거를 기억한다
꽃보다 남자 ost 마냥 내 머리가 나빠서 기억력이 나쁜 난
그런 감정들과 내가 겪은 일들을 적어내는 이런 시기가 필요하다
문득 글 쓰다가 이글루스에 접속해봤는데
너무 쉽게 로그인이 되어 깜짝 놀랐다
제일 중요한 모바일 서비스 해주는 케이티는 로그인이 안돼
허구헌날 애먹기 일쑤인데
약 4년만에 로그인 한 이글루스는 4초안에 로그인이 된다니
재미있는 인생
그때 적은 글의 제목은
"맥주 한 캔의 감정"
웃긴다
전문은 이렇다
(사실 공개하고 싶은 부분만 공개한다)
"10개월 만에 접속하는 이글루
그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
난 애정결핍이면서도 애정에 대한 무심함이 있는 이상한 사람이야
기네스와 허니버터아몬드를 먹으면서
모던패밀리 에피소드를 하나 보고
코코넛 오일을 머금은 탐폰을 질에 끼우고
이렇게 이글루를 적어내린다
역시 나를 울리고 나를 슬프게 하는 건 내 글이 최고야
아직도 나는 그 때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그 굴레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
아무리 페미니즘을 공부해보고 괜찮다고 되뇌어도
어릴 때 부터 세뇌당한 관념이 너무 크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그 마음이 크기 때문일까
(후략)"
난 여전히 애정결핍이면서도 애정에 대한 무심함이 있어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들에게 뽀뽀세례를 퍼붓다가 앞발에 종종 맞기도 하고
기네스와 허니버터아몬드는 더 이상 먹지 않고
모던패밀리 마지막 시즌을 보낼 자신이 없어 다시 시즌 1부터 보고있고
코코넛 오일을 머금은 탐폰을 끼우진 않지만
내 방광이나 어딘가에 문제가 있어 내일은 병원을 또 가야한다 지겨워
그리고 아직도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 재미있는 글이 있네
제목은
"생리와 눈물의 상관관계"
이건 정말 전문을 공개할 수 있다
이런 글을 썼다니 제법이다 나
"생리를 오래만에 한다
2달 만에
그래도 몇개월 꼬박꼬박 제 주기에 맞춰 하더니
이렇게 할듯 말듯 1달동안 날 괴롭힌 생리는 오랜만이라
불쾌하면서도 익숙한 기분으로 또 1달을 살았다
그 1달동안 정말 무수히 많은 일이 있었다
가끔은 나는 뇌가 아닌 심장이 아닌 자궁으로 생각하고 느낀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자궁이 옳았다
나는 자궁한테 못할짓을 많이 해왔는데
어쨌든 나는 생리를 하면 꼭 펑펑 우는 날이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글루스에 적는 글의 대부분 다 생리중일때 적은 글임을 확신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오늘의 달수가 불쌍해서 울었고
이십대 중반의 달수가 불쌍해서 울었고
스물아홉살과 삼십살의 달수가 제일 불쌍해서 많이 울었다
생리할때는 그 시절의 내가 다시 돌아오는 그런 기분이야
생리와 눈물은 비례한다
특히 이틀째 삼일째 되는 날 나는 정말 폭풍오열을 한다
크리넥스 반 통은 쓰는 기분으로 운다
생리혈의 양이 많을수록
눈물의 양도 많아진다
내 경우엔 그렇다
아까는 내가 살아 온 인생을 되짚어봤는데
남자때문에 힘들고 상처 받은 것
여자들이 치유해주고 공감해 주었다
여자때문에 겁먹고 상처 받은 것
남자들이 껴안아주고 사랑해 주었다
지금은 휴지를 양 콧구멍에 끼우고 입으로 숨쉬면서
이글루스에 한글자 한글자 적어가는게 웃겨서
내 모습이 한심하고 제법 귀엽다
가슴이 아리는 순간과 보지가 아리는 순간이 다르다는걸"
재미있는 글이 또 있었네
"정리를 하는 것"
"그때 혼자 잘 해보려고 적었던 글들에는
나의 단호함과 씩씩함이 묻어나와서
지금은 하나도 없는 그 단호함과 씩씩함이 그리워지고말았다
그래서 이글루스를 다시 들어왔구
정리를 한다는 게 그냥 나한테는 그 행위 자체가 큰 의미이다
왜냐면 내 머릿속은 너무 뒤죽박죽이고
남들도 이정도인가 싶을 정도로
남들은 어떨까
남들은 글을 읽을때 누가 읊어주는것처럼 글을 읽나?
나는 내 머릿속에 글들을 읽을때 그 글의 장르나 색깔에 따라서 목소리가 달라지는데
그래서 내 글을 읽을때 난 항상 운다 왜냐면 내 목소리가 읽어주는거니까 말야
지금도 존나 펑펑 울다가 이 감정을 기록하고싶어서 이글루스를 켰고
두렵고 겁이 많이 났지만 '우연'이라고 믿고 그 '우연'을 지키기로 했던 내가 잘 지냈으면 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모르지만
9월 23일이 다가온다.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가지만 일년이란 시간의 길이가 나에겐 와닿지 않아 여전히."
내 글이 나에게만 유독 슬픈 이유가 있었지
언젠가 오늘 쓴 글도 읽으면서
어머 얘 웃겨 2021년엔 이런 생각 하고 살았구나
하며 과거의 나를 기특하게 여겨주었으면
그때의 나도 이 글을 읽으면 뭉클 움직여서 눈물을 흘려줄까
지금의 난 여전히 내 글을 보면서 엉엉 우니까
난 내 글이 제일 슬프고 좋아
살아남기 위해 쓴 글이라 그런가봐
내가 죽으면 이 글들은 이렇게 인터넷에 남겨지게 되겠지
누군가 이 디지털 파편을 읽어준다면
그렇게 나는 영생하는게 아닐까 사이버 세상에서
그런 마음으로 죽은 이들의 글을 읽는데
과거의 나도 죽은 이
살아남는다는건 수백번 다시 죽었다 태어나는걸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