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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년 Nov 21. 2024

거절 장애

거절을 못하면 핑계가 생긴다

출근길에 우체부 아저씨 아니고 우체부.

지섭 씨를 만났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아저씨에서 

탈락하는 사람도 늘어간다.

군인에 이어 두 번째로 우체부도 이제 

아저씨라고 부를 수 없다.


“신문은 왜 보시는 거예요? 한동안 안 보시더니?”


머뭇 거리지도 않고 거짓말을 나는 했다.


“애가 고삼이라 신문사설을 봐야 한다고 해서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지섭 씨의 질문이

'왜 매일 제가 꼭대기 집까지 가야죠?'

는 아닐까...



작은 시골 동네여서 

우체부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지역은 넓고...

그들의 열악한 배달 스케줄을 

이웃일 뿐인데도 알고 있으니 

내 마음이 불편하여.


나이를 먹으면서 거짓말도 는다. 

얼마 전 핸드폰 기계를 바꾸고 전화번호를 

옮기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사실.

스팸처리가 안 된 번호를 옆으로 밀었는데 

받아진 것이다.


“사모님! 신문 하나 보세요!”


나의 배우자는 

선생님도 아니고 

목사님도 아니기 때문에

사모님 이라고 불릴 때  나는 

아주 듣기가 거북하다.


“싫어요” 

상담 아주머니는  아주 천천히, 

낮은 음조의 교양은 가득하지만 

신문을 안 보는 나를 미개하다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도록 

설득같은 질타를 하셨다. 




“그래도 싫어요” 

라고 말을 했는데... 


아주머니는 성공했으나,

실패했다 나는.


결국 평소의 나와는 다르게 

끝까지 거절에 성공하지 못하고 

일 년 계약을 하고 말았다. 





2020년 내 작업실의 커튼


당일 배송도 아닌




하루 묵어 우리 집에 배달되는,

어제의 신문은 


원래의 용도를 벗어나 사용되고 있다.

옷장 방충제에서 

커튼까지.



지섭 씨에게 미안타.





20200619_봉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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