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사의 딸
2020.9.28 브런치 응모 글 (낙선됨)
어린시절,
엄마가 공단 안쪽에 납작하고 끝은 뭉뚝한 쵸크라는 것으로 밑그림을 그리고난 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낸 뒤 필요가 없어진 나머지 천들은 둘둘말아 쓰레기통에 넣던 그 손을 나는 거의 매일 마주했다.
사각사각 옷감을 조각내는 순순히 엄마의 손을 따르는 가위.
뾰족함으로 네모진 공책에 스크래치를 내가며 흔적을 남기던 연필이 내는 소리보다, 경쾌하고 규칙적인 리듬으로 가위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나는 좀 더 듣기에 좋았다. 살다보면 실력이나 재능보다 인간성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실력도 재능도 인간성에서도 뚜렷하게 두드러짐이 없는 나는 스치는 인연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으며 살아욌는가 보다.
차가운 인상으로 다가올 인연조차 밀어냈다.
가로 세로의 정해진 구격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할증 요금이 부과되는 우체국의 과금체계처럼나는 내 자신도 모르는 나의 기준의 측량자에서 벗어나는 것들을 싹둑싹둑 재단해버림으로써 내 주변의 사람들을 괴롭혀왔다.
네 귀퉁이의 각이
날카로운 나는
네모 도형들이 들으면 불쾌하다 할
정사각이다.
그러나 [지천명]을 코 앞에 두고,
하나가 더 있음을 깨닫는다.이제보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아이들만의 환상 무적파워레이져들의 특허품인 레이져도 발사하는 사람인가보다.
정오가 다되어 집을 나서는데 머리가 희끗하신,
그래봐야 내 또래의 아저씨겠지만...
“사모님!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듣기 싫어하는 단어다)
우유 하나 드릴게요!”
언덕진 나의 집을 향해, 작열하는 태양은 머리에 이고 빛이바래 색이 선명하지도 못한 바구니는 옆구리에 낀 채로 올라오는, 그 아저씨의 짐을 나는 빨리 덜어주고 싶었다.
우유 배달을 주문할 생각이 나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희망고문]이것 만큼 못된짓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아니요!”
거리를 둔 외침.
내가 더 당혹스러울 정도로아저씨는 바로 돌아서버렸다
.......
순간 멍하게 멈춰버린 것은 나.
봉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