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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니즘을 그리고 쓰다 : 작가 예주

sustainable art

똥과 오물에 뒤집어진 그런 트럭 안에서 실려가는 돼지들을 보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는데, 샤워를 하는 게 나는 좀 묘하게 느껴졌어. 그 냄새를 빼기 위해서 샤워를 하는데, 아 참 나는 이렇게 사는데, 그 동물들은 정말 비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함이 항상 있는 그런 삶이지 않나.


예주 작가 인터뷰 보러가기 > 안녕, 두룸씨! <진지하게 그리고 쓰는 사람 / 작가 예주> 



여기 항상 삶에 미안함을 느끼고 살아가는 화가가 있다. 

화가로, 작가로, 그리고 비건 운동가로 활동 중인 노예주를 주목해본다.



<글을 쓰는 시간>(2020), <후구의 초상>(2021), <안녕, 기면증>(2021)을 출간한 노예주 작가는 동물권 운동에 관심을 갖고 비거니즘적 시각으로 현실을 포착해 자신의 작업으로 담아냈다.



<후구의 초상>(2021)

<후구의 초상>은 음식점 수조 속의 복어 ’후구‘와의 인연을 통해 비거니즘을 말하고 있다. 4년 전 어느날, 매일 그를 보러갔던 일종의 개인적인 비질(vigil) 경험을 토대로 써내려간 기록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하였다. (온다책방 <후구의 초상> 소개문)


© Clker-Free-Vector-Images, 출처 Pixabay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런 순간의 장면이 나오곤 한다. 세상의 시간이 공평하게 흘러가는 문제와 상관없이, 일순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로 수렴하는,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 말이다. 그런 순간을 노예주 작가는 경험했던 것 같다.


평범한 음식점 수조 속에서 작가는 한 복어를 마주친다. 복어를 담은 수조였으므로 수조 안에는 여러 복어가 있었다만 '그 복어'만은 수조의 순환하는 물흐름에 저항하며 바닥에 혼자 버티고 있어 작가의 눈에 든 모양이다. 작가는 복어를 보았고, 관심이 갔고, 이후에는 생각이 나서 계속 복어를 보러 갔고, 복어는 더 이상 바다생물의 종을 지칭하는 일반명사 복어가 아닌 작가의 '복어'가 되었다.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작가의 세계에 개별적이고 특별한 존재로 들어온 수조의 복어 ‘후구’의 마지막을 작가가 함께했다.


2017년에 ‘후구’를 작가가 관찰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비건이 아니었다고 했다. 단지 ‘앞으로 복어는 못 먹겠다’ 정도만 생각했을 뿐이라고. 이후 그가 비거니즘을 알고 비질 운동에 참여하면서 ‘후구’와의 경험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예주 작가가 소개하는 <후구의 초상> 


앞선 소개글에도 등장한 ‘비질(vigil)’은 무엇일까? 


‘비질’은 도살장 앞을 찾아가 육식주의 사회에서 고통받는 동물의 현실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활동으로, 도살장 앞에 찾아가 죽음 직전 12시간 넘게 물조차 마시지 못한 동물들에게 마지막 물과 먹이를 주며 그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기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캐나다 동물권단체 ‘토론토 피그세이브(Tronto Pig Save)가 2010년 처음 시작한 활동으로, 현재 전세계적인 풀뿌리 동물해방운동으로 자리잡았다.


작가가 ‘비질’을 개념으로 접한 뒤, 그는 과거 ‘후구’와 함께한 시간이 비거니즘적인 시각에서 비질의 일종이었음을 깨닫고 그 시간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재구성의 산물이 <후구의 초상>이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왜 이 그가 복어에 '후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왜 그가 '후구'의 초상화를 그렸는지, 왜 그가 '후구'의 죽음에 슬퍼하는지 몰랐는데 비거니즘을 접하며 그 의미를 정립하게 된 것이다. 




<후구의 초상>이라는 제목에 대한 설명이 인상깊다. 인간만의 전유물으로 생각되는 초상화이자, 기린다는 의미의 초상. 두 가지 의미를 담은 <후구의 초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성격과 외모, 존재를 기억하길 바라며, 이 책으로 그의 죽음을 기려본다. 표지는 4년 전 그가 살아있을 때 그린 그의 초상화이며, 그의 죽음을 기리는 책이므로 ’초상‘이라는 제목은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터뷰 마지막에서, 작가 예주가 예술가로서 결심한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한때 작가의 가장 큰 고민은 “가만히 걸려있는 그림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였다. 


그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그림작가인 그에게도 자리잡고 있었지만, 비건과 그림활동을 계속하며 작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그는 단순히 기록하는 그림이 아닌, 더 강렬하게 다가갈 수 있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싶어한다. 수동적인 회화 매체의 위치를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에 안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자발적으로 작품을 가지고 감상자의 마음에 들어간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노예주 작가는 지금도 비건 운동가이자 작가로서, 화가로서 많은 활동과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세상을 위해 세상에게 그의 이야기를 예술로써 펼치고 있다. 그의 행보를 응원해 본다.



instagram: 예주 @yeju_roh



<MAGAZINE LET.S>의 2호권, [비거니즘]의 펀딩이 곧 시작됩니다.


매거진 렛츠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주제로 -하자(Let's)는 사유와 사유를 나누는 문화예술잡지로 '지구 공동체'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매거진 렛츠의 피플의 영역을 다룬 2호권 지면 매거진의 주제는 비거니즘입니다. 펀딩에 참여한다면 비건으로 사는 이야기, 비건을 시도하는 이야기 등 다양한 비건의 모습을 담아 하나의 선물 꾸러미 같은 매거진이 집에 도착하게 됩니다!


동물, 사람.

우리는 과연 공생공존할 수 있을까요?


하나의 물음에서 시작하여, 매거진 렛츠의 에디터들은 8개월간의 작업 기간 동안 약 100명의 사람들을 만나 생각과 고민들을 나누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2호권 <LET.S bE vEgan>에 고스란히 담길 예정입니다.


머지않아 2호권 펀딩이 시작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MAGAZINE L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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