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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트레커 Feb 21. 2024

통곡이 터져 나옴을 이길 수 없었다...거제 칠천도

- 섬여행 (104)


우리나라에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 여행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은 지 꽤 되었다. 전쟁, 학살, 큰 재난 등 비극적인 역사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회피하지 않고 교훈으로 승화시키는 여행이다.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찾는 여행도 좋지만 아픔이나 고난의 현장을 직시하며 통찰과 반성을 해보는 여행은 담담한 용기와 위로를 준다.

(사진 위) 칠천량해전공원의 야외 조형물

국내 대표적인 섬 다크 투어리즘 장소로는 제주의 4·3평화공원과 거제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여수 안도의 이야포공원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거제 칠천량해전공원이 있다. 거제시는 역사의 수장고에 깊이 파묻혀 있던 치욕의 칠천량해전을 2013년 6월, 양지 밖으로 끌어내 공원으로 조성했다.


칠천량해전공원에서 느끼는 1만 조선 수군의 비애


임진왜란 때 패배의 기미가 짙어지자, 왜군은 명나라와의 화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기회로 본국으로 철수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명·왜 교섭이 결렬되면서, 1597년 음력 1월(이하 날짜는 음력)에 14만 병력으로 재침략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정유재란이다.

(사진 위) 칠천대교에서 바라본 칠천량 북쪽 바다. 해전이 일어났던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1596년 겨울, 왜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는 재 침략에 앞서 걸림돌인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해 부하인 요시라를 시켜 조선 조정에 허위 정보를 흘린다. "정적인 가토 기요마사가 1957년 1월 대마도에서 부산포로 향하니 맞서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선조는 이를 믿고 이순신에게 출동을 명하지만 적의 간계임을 안 장군은 출동하지 않았다. 이를 괘씸히 여긴 선조는 왕명 거역 죄로 2월 26일 장군을 파직하고 한양으로 압송해, 투옥시킨다. (‘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 노승석)


후임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부산 앞바다로 나가 왜군과 싸우라는 도원수 권율의 독촉에, 휘하 정예 함대 160여척과 수군 1만5천여명을 이끌고 나가 싸운다. 그러나 전략 없는 싸움으로 칠천량까지 후퇴하여 궤멸하고 말았다. 

칠천량해전에서 불타고 있는 조선 수군의 판옥선을 재현한 전시관 내부

“원균이 지휘하던 조선 수군은 1597년 7월 14일 가덕도와 거제 영등포 등에서 왜군의 습격으로 손실을 크게 입고 후퇴하여 15일 밤에 거제도와 칠천도 사이 칠천량에 정박했다. 이틑 날인 16일 새벽 다시 왜 수군 600여척의 기습 공격으로 조선 수군은 160여척을 잃었고,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 조선 장수들이 장렬하게 전사했으며 원균은 고성으로 퇴각하다가 육지에서 전사하였다.” (칠천량해전비, 경상남도)

해전에서 희생된 1만여명의 조선 수군을 추모하는 전시관 내부의 시설물

칠천량해전공원은 이 비극적인 전쟁을 한눈에 보고 느낄 수 있도록 7개의 테마로 구성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임진왜란 당시 수군과 백성의 생활상이나 전함의 구조 등이 잘 재현되어 있다. 또한 7~8분 정도 상영되는 영상물을 통해 1만여명의 조선 수군이 희생된 칠천량해전의 슬픈 역사를 사실감 있게 그려냈다.


칠천량의 패배를 '명량의 승리'로 바꾼, 이순신 


한양에서 모진 고문을 받다, 우의정 정탁(鄭琢)의 간절한 상소로 목숨을 건진 이순신은 1597넌 4월 1일 감옥에서 나와, 도원수 권율 장군의 진영으로 ‘백의종군’을 시작한다. 장군은 7월 18일 경남 합천에서 칠천량해전의 대패 소식을 듣는다. 난중일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새벽에 이덕필과 변홍달이 와서 전하기를, 16일 새벽에 수군이 기습을 받아 통제사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및 여러 장수들이 다수의 피해를 입고 수군이 크게 패했다"고 하였다. 듣자 하니 통곡을 금할 길이 없었다.“ (‘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 노승석)

(사진 위) 명량해전에서의 이순신 장군과 휘하 장수들을 재현한 진도타워 앞의 조형탑. (사진 아래) 해남 우수영관광단지 내 명량대첩탑

장군은 8월 3일 삼도수군통제사에 복직된다. 칠천량해전 승리 이후 기세등등한 왜 수군은 끊임없이 도발하여 진도까지 밀고 들어온다. 장군은 9월 15일, 판옥선 13척과 병사 2000여명으로 와해된 조선 수군을 재건해 명량(울돌목)에 진을 친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則生必生則死)”-. 8월 16일 전투는 아침부터 치열하게 전개됐다. 칠천량의 망령에 시달렸던 조선 수군은 왜군 133척을 물리치고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승리를 일궈낸다. 장군은 난중일기에 “이번 일은 실로 천행(天幸)이었다.”고 적었다.


아픔을 딛고 관광명소로 발돋움하는 칠천도


칠천도(七川島)는 경남 거제시의 북서쪽에 있는 섬으로, 섬에 강이 7개가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면적은 9.87㎢, 해안선의 길이 25 km에 이른다.  

칠천대교에서 바라본 칠천도. 가운데 산봉우리가 옥녀봉이다

거제시에 속한 10개의 유인도 중 가장 큰 섬으로 2024년 2월 현재 626세대에 1018명이 거주하고 있다. 옥녀봉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으며 승용차나 자전거로 섬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또한 부속 섬인 황덕도와 수야방도는 인도교로 연결되어 있다. 

(사진 위) 수야방도 정상에서 바라본 황덕도. (사진 아래) 수야방도

특히 40~60분의 코스로 누구나 트레킹하기에 좋은 수야방도 정상에 오르면 시원스레 펼쳐지는 마산만과 거가대교, 부산 가덕도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칠천도 일대의 섬과 해안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칠천량 해전길’도 있다. 칠천량해전공원~옥녀봉~대곡고개~굿동산~옆개해수욕장에 이르는 약 5.4km의 코스로 3시간 30여분 소요된다.

옥계마을과 씨롱섬을 연결하는 출렁다리

거제시는 관광자원 개발 차원에서 해전공원 아래 옥계마을 선착장과 무인도인 씨롱섬 사이에 길이 200m, 너비 2m의 출렁다리 설치공사를 마무리 중이다. 씨릉섬은 출렁다리 개통으로 올리브를 주제로 한 테마섬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장문포왜성과 장목진객사 등 임진왜란 유적지도 가볼 만


칠천도를 둘러봤다면 그곳에서 가까운 거리의 장문포왜성(場門浦倭城)도 가볼 만하다. 선조 27년(1594) 장목만 서쪽 산 정상부에 축조한 이 왜성은, 바다 건너 500여m 맞은편에 축조한 송진포왜성과 함께 장목만을 수비하기 위해 임진왜란 당시 쌓았다. 남아있는 성벽의 둘레는 710m, 높이 3.5m, 너비 3.5m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쌓은 장문포왜성

난중일기는 장문포왜성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성안에는 높은 누각이 있으며, 양쪽 산봉에 성채를 쌓고 싸우려 하지 않는다”. 선조는 한산대첩에서 승리한 이후 장군이 왜군과 싸움에 소극적이라며 불만을 갖게 되는데 바로 장문포해전이 그 시작점이었다고 한다.


장문포왜성을 나와 장목항으로 가다가 장목마을로 들어서면, 조선 수군의 자취가 서린 장목진객사와 만날 수 있다. 거제 장목진 객사는 정면 4칸과 측면 2칸의 건물로 조선시대 거제부에 소속된 7진 가운데 하나였던 장목진 관아의 부속 건물이다.

거제 장목마을의 수리 중인 장목진객사

이 건물은 조선시대 수군이 주둔하던 거제 7진 가운데 남아있는 유일한 목조 건축물로,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장문포왜성과 장목진객사는 임란 당시 거제도가 조선 수군과 왜 수군의 공동경비 지역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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