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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메제니 Nov 11. 2022

나는 오늘도 나답게 산다.


'나답게'라는 표현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표현을 쓰는 사람들 중, 진정 '나다움'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짧게나마 세상과 단절하고 지낸 기간이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지내온 시간을 나라고 규정하며 살았구나.' 


이를 테면 나의 부모와 친구, 내가 나고 자란 동네, 다니던 학교, 으레 그 정도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선택한 직업 같은 것들. 사실은 내가 누구인지 잘 알기도 전에 보이고 들려서 그 안에서 나름 최선을 선택하며 살아온 모습. 10대, 20대 때를 돌이켜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허락했는지..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제 좀 나를 알 것 같은 시기. 나는 그 시기가 30대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된 순간부터 비로소 우리는 각자 고유한 존재가 된다. 사실 태어난 순간부터도 유일하고 고유한 존재지만, 자립하기 전까지는 주변 환경의 영향이 지대하다. 그렇기에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진정 고유한 존재가 되는 것은 정신적인 독립 이후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그 시기는 30대였다. 


이는 누군가 규정했던 나를 스스로 재정의하고, 내가 하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자기 주관'이 생기고, '나다운' 모습에 가까워진다. 


나를 알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와 선택을 하게 된다. 이는 시야를 조금만 더 넓혀보면 충분히 허용되는 범위이다. 그러나 이는 주변인에 시선에 늦었다는 시기일 수 있고, 주변인이 하지 않을 선택이기도 하다.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너 변했어."라는 걱정과 우려 섞인 반응은 기본 옵션이다. 이런 주변 반응은 '나다움'의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 혼란을 더한다. 이 혼란의 약은 배움이고 그로 인해 갖춘 충분한 지식이다. 주변인의 반응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정도의 충분함. '너답게' 굴기보다 '나답게' 채워간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답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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