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앤지 May 22. 2024

외국 생활 N년차, 누구냐 너는…

나에게 낯설어버리다.


K-pop에 눈을 뜨다.

영어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영어노래 가사들을 찾아가면서 공부하듯이 외우고 읊조리던 시기가 있었다. 그 덕분에 현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유행하는 노래들이 있기도 하지만 옛날 노래도 자주 틀어주는 요즘 디제이들 덕분에 그때 알게 된 노래들로 아직까지도 우려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고 케이팝의 위상이 날로 높아져 아시안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트나 음식점이 아닌 일반 대형 쇼핑몰에서도 BTS와 블랙핑크, 그리고 뉴진스 등의 노래가 나오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을 통해서 한국 가수들의 신곡 소식을 듣거나 신인가수들을 접하게 되는 것도 꽤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한국 노래를 집중적으로 찾아가며 듣게 된 계기는 쉐프로 키친에서 일하면서였다. 영주권 때문에 기약은 없었지만 미우나 고우나 최소 2년은 버텨야 했던 키친의 몰지각함에 나는 케이팝에 빠지게 되었다.

(모든 키친의 분위기가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접한 키친에서 다소 거친 언행들이 오고 가는 것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내가 일했던 키친은 ‘다소’라고 하기에는 대놓고 고성과 욕설이 오고 갔고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음담패설이 ‘농담’이라는 과분한 포장으로 일상에서 행하여 지고 있었다.  


외국에서 현지인들과 일을 하면 일상이 영어니 귀를 활짝 열고 있으면 “영어 듣기도 연습도 되고 좋겠다.” 고 생각하겠지만 내 주위에서 오고 가는 대화들이라곤 80%가 욕이고, 조금만 더 귀 기울이면 경찰이든 노동청이든 당장 신고 해버리고 싶은 지저분한 농담들이라면 영어고 나발이고 그냥 내 귀 속에 잡히는 대로 쑤셔 넣어 막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나는 한국가요를 선택했다.  


내가 귓구녕을 정화시켜 줄, 내 귀를 닫고 정신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예쁘고 반짝거리는 한참 어린 언니들의 목소리나 다정하고 감미로운 젊고 파릇파릇한 오빠들의 목소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영어를 쓰는 일상이지만 한국말이 더 편한 나에게 한국 노래만큼 귀에 쏙쏙 박히고, 입에 찰진, 몸을 두둠칫 하게 하는 노동요는 또 없으니까.


그들의 목소리는, 착착 감기는 가사와 멜로디는 나의 억척스럽고 과격한 일상 속에서 과자 냄새나고 말랑말랑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주곤 했다.  


그나마 음악을 들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다행이라 여겼는데 executive chef 가 바뀌면서 음악을 틀지 못하게 하려는 조짐이 보였다.  

그전에 그만둘 수 있어서 어찌나 감사한지…

여기서도 난리인 우리의 BTS



집순이가 되어버림

한국에서 지낼 때 어머니께서 ‘젊은 애가 집에 있는 꼴’을 보기 싫어하셔서 뭐든 나갈 거리를 찾아서 밖으로 나가기도 했지만, 한국은 워낙 갈 곳 도 많고 할 것도 많고 카페에 앉아 대중 속에 스며드는 것도 나름 재밌어서 쉽게 쉽게 나가곤 했었다.  

사실 여기도 여행 좋아하고 밖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성향의 사람들이라면 여전히 할게 많은 나라겠지만

가만히 있으면서 충전을 하는 나에게는 딱히 흥미로운 ‘나갈 거리’가 없는 나라이다.  나갈 거리를 굳이 굳이 찾지 않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혼자서 뭘 하는 게 지긋지긋해…

뉴질랜드에서 호주, 그 사이에 휴가차 다녀오는 여행들까지… 늘 혼자서 계획하고 혼자 놀러 다니는 것은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하는, 나를 알아가는 여행 좋지~

근데 십 년 넘게 혼자 느끼고 혼자 감동하고 혼자 간직하는 것들을 만들었으면 이제는 사실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느낌이다. 또 지금 생활의 터전이 남들의 여행지인 덕분에 그냥 동네를 걸어도 도서관을 가도 마트를 가도 그냥 외국일 수 있는데 굳이 또 다른 데 갈 필요가 있나 싶은 마음이다.  

볼때마다 신기한 말 타고 다니는 경찰을 보는 일상


근데 또 신기하게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오면 나도 같이 여행객 모드가 되어 괜히 낯설고 괜히 돈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이제는 혼자 말고 누군가와 함께 할 때인 것 같기도…



밖에서 뭐를 하는 게 생각보다 너무 비싸!

뭐 나를 위한 힐링에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쓸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상황에서 누가 날 보러 오는 특별한 이벤트도 아니고 멀쩡한 집을 놔두고 또 어디 가서 몇백 불씩 돈을 쓰고 다닌 다는 게 마냥 신나지만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거짓말 많이 보태면 아기발뒤꿈치

지난번 한국여행 때 친구들이랑 괜찮은 생활템을 얘기를 하다가 발 뒤꿈치 각질 제거제를 추천받았다.

한국에서는 많이 걸어 다니다 보니 3달도 채 안 있었는데도 각질이 많이 생겨서 추전 받은 제품을 챙겨서 신나게 돌아왔다.

그리고 6개월…  내 뒤꿈치는 (거짓말 좀 보태면) 여전히 각질제거를 받은 직후처럼 뽀송뽀송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 10여분 내외인 회사는 대중교통보다 차가 더 빨라서 운전해서 다니고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어딜 잘 다니지도 않으니 발이 뭔가를 굳세게 감내해서 굳은살을 만들어 낼 필요가 없을 수밖에…

그래서 한국에서 아주 꿀템이라며 ‘우와, 우와’ 했던 제품이 여기서는 장롱템이 되어버렸다.


다음 한국 휴가 때나 다시 가져가야지… 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