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밤을 완전히 지새우는 건 아니다. 일찍 자면 2시, 늦을 땐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든다.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아이들을 간단히 먹인 후 학교까지 직접 차로 데려다주고 그때서야 농장으로 향한다.
진~한 커피를 향도 즐길새 없이 들이키곤 작업 가방을 둘러매고 장갑을 낀다.
농장출근 일할준비
그래도 아침나절엔 시원한데 더 더워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곧 뜨거워질 거다. 새벽부터 일을 하고 낮엔 쉬었다가 선선해질 오후 무렵에 일을 하면 좋으련만, 난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에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위를 참아야만 한다. 이제 날이 더 뜨거워지면 그마저도 힘들어질 것이다.
그래서 평일 낮엔 일을 오래 하지는 못한다. 점심을 먹고부턴 너무 더워서 일하기가 힘들뿐더러 아이들이 오기 전에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폭풍같이 치우고 개고, 차려놓고를 마치고 뛰어가듯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로 향한다.
그때부턴 육아 출근!
" 엄마 오늘 도서관 가자, 마트에서 맛있는 거 사쥐!! "
하면아이들의 요구에 부흥하고 다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시골도서관
씻기고 먹이고 치우고 재우고...
아이들을 재우다 깜빡 잠이 들었다.
할 일을 두곤 마음 편히 잠을 잘 수도 없다. 자다 말고 눈이 번쩍 떠진다.
" 그만 자지 그래~!"
잠이 들듯 말듯하다 깬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 아~~ 나 숙제 있어. 조금만 하고 잘게 "
조용히 나와 불을 켜고 식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작년부터 온라인 관련 강의를 계속 연이어 듣고 있다. 한번 시작하면 2주간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일상이 시작된다. 힘들면서도 계속한다.
항상 바쁘게 뭔가를 해내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근성을, 우리 어릴 때 공교육에서부터 훈련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ㅎ
"농사지으면서, 그 많은걸 다해요? "
가끔 렌선 이웃님들이 해주시는 말씀이다.
"애셋 키우면서, 책은 언제 읽어요?
"글은 언제 쓰세요?"
"^^"
한번 시작하면 며칠씩 잠을 못 자야 해낼 수 있는 일들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살 것 같으니 참 이상도 하다.
쉴세 없이 뭔갈 하라고 세뇌당한 게 분명하다. ㅡㅡ;
남편이 하루 종일 회사에서 소모되며 사는 게 싫었듯, 나 또한 집안일에만 소모되는 하루는 싫다. 나의 의무를 벗어난, 내가 선택한 어떤 일 한 가지라도, 하루 30분만이라도 스스로 해내야 나의 하루를 온전히 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수많은 소모임에서 강의를 듣고 과제제출률 100프로 , 가끔 들어오는 서평단의 리뷰를 위해 밤을 새워 책을 읽고, 블로그 챌린지에 참여하느라 끊임없이 끄적인다.
힘들다 하면서도 끊지 못하고 스스로 하고 있는 일들이다.
한자람농원 홈페이지만들기
2주 전쯤 네이버 모두 홈페이지 만들기 모집공고를 보자마자 바로 신청을 하고 돈을 입금했다.
나의 하루를 더 타이트하게 만드는 강제성을 스스로 부여한다.
그렇게 2주간을 쉼 없이 달리고, 마감을 맞추고 나면 작은 성취감이 또 하나 쌓여 희열이 느껴진다.
업체에 맡기면 50만 원한 다는 홈페이지를 그렇게 직접 만들었다.
돈 50만 원을 아끼겠다는 심산이 아니다. 스스로 해내고 싶을 뿐이다. 네이버 검색창에서 타 홈페이지들을 벤치마킹해보았다. 형식적인 업체 설명! 그저 그런 뻔한 정보를 나열한 홍보. 업체에 맡겨서 만든 것 같은 홈페이지들은 금방 알 수 있다.
나는 좀 다르게 만들어 보고 싶은데... 어딘가에, 마음에 드는 홈페이지가 있을 것이다.
그걸 찾느라 또 새벽까지 뜬눈이다.
스마트폰 줌 강의를 들으며 노트북으로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영혼을 끌어다 기획을 하고 카피를 고민하고 사진을 넣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남편에게 전송했다.
생각보다 단순하게 나와서 아직 만족스럽진 않지만 사과대추가 자라는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으며 끊임없이 수정을 더할 것이다.
" 농장 홈페이지의 최고 퀄리티를 지향하겠어 "
남편에게 건 공약. ㅎ ㅎ
"그래 잘해봐"
건조한듯한 전라도 남자의 짧은 응원이지만, 그래도 나에겐 가장 큰 힘이 된다.
이제... 뭐가 남았지? 또 쉴 수가 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다음 할 일들......
1년째 고민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정해진 농장이름.
"크게 크게 자란다"라는 뜻으로 " 한자람 농원 "이라 지었다.
이름은 예쁘다고 내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네이버 검색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일 검색어가 없거나 적어야 하고, 상표등록이 가능한지를 검토해야 한다.
이제 다시 로고 디자인을 할 차례다. 결혼 전 디자인을 했던 나는 바로 업체에 맡기지 못하고 당연한 듯 컴퓨터를켰다. 농장일로 피곤하고 졸리지만 또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밤새 로고 자료를 수집하고 , 메인 컬러를 고민한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더하다 스케치를 해서, 디자이너에게 전 송한 후에야 겨우 잠이 든다. 끝이 아니다. 계속되는 자료수집, 고민. 그리고 디자이너와의 수정 작업을 거쳐야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이름이 정해지고 사업자가 나왔다. 로고가 완성되면 상표등록을 신청해야 한다. 그 후엔 스마트 스토어에 블로그 마켓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농부인데, 농사짓는 것 이상으로 다른 일들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아는 선배 농부가 며칠 전 SNS에 홍보 피드를 올렸다." 라이브 커머스"에 직접 출연하신다며. 떨고 계시다고... ㅡㅡ 남일 같지 않다. 그 느낌 알 것 같은데...
이제 농부는 땀 흘리며 농사만 잘 짓는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다. 블로그 마케팅을 공부해야 하고 글도 잘 써야 하며, 인스타에서 인기 좀 얻으려면 사진도 잘 찍어야 하고 소셜 센스도 겸비해야 한다. 나처럼 홈페이지와 로고 디자인까지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라이브 방송까지 해야 한다니. 작년 온라인 마케팅을 공부할 때만 해도 라이브 방송까지 염두에 두진 않았었는데, 1년 만에 추가가 되었다. 내년쯤엔 또 다른 것들이 우리 농부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 너무 떨지 마세요. 제가 꼭 응원 갈게요 ㅡㅡ; 우리 꼭 이겨내 보아요."
진심을 담아 댓글을 남겼다.
이제 만능 농부가 되어야 한다. 스마트 스토어만 열어놓는다고 누가 와서 사주지 않을 것이다. 검색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끊임없는 홍보가 계속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요즘엔 능력 있고 감각 있는 농부 마케터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나이 먹고 은퇴한 후 농사짓겠다던 그 옛날 우리 부부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여실히 깨닫는다.
"이게... 나이 먹고 할 일이 아니었어 ^^;"
라방(라이브 방송)에 대한 부담감까지 느낀 내가 남편에게 한 말이다.
어제도 농장에선 폭풍같이 부직포를 깔았다. 앉았다 일어났다. 허리를 굽혔다 펴기를 하루 종일 반복하고 나면 집에 와선 똑바로 걷기도 힘들다.
그래도 참말 다행스러운 건. 몸이 아픈 건 그다지 큰일이 아니라는 거다. 그래도 아직은 젊어서 하루 이틀 자고 일어나면 금세 좋아질, 정말 별거 아닌 시련이다. 그것도 그새 단련되었는지, 이삼일 가던 근육통들이 하룻밤 새 사라지곤 한다. 내 몸도 적응이란 걸 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