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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밭농부 Jul 25. 2021

시골생활, 병아리가 가족이 된 순간

생명은 함부로 키우는 게 아니야.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하우스 뒤편으로 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앞쪽 하우스를 서성거렸다. 가지를 치려고 고지 전지가위를 들고만 다녔지, 내 눈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어디서 삐약 삐약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농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유난히 새소리가 많이 들리는데, 평소엔 신경도 쓰지 않던 새소리가 온종일 병아리 소리처럼 들렸다.


괜한 기대감에 대답 할리 없는 병아리들 이름을 다 불러본다. 우연히라도 찾게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 구독아 ~~, 달빛아..... "


혼자 피식 웃는다.

이름을 알아듣고 대답이라도 할리가 없잖아.



'어쩐다... 어딜 갔어.. 바깥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길고양이한테 잡히면 어떡하려고.....'


상자에 넣어 거실에서 키우던 병아리 네 마리를 농장으로 옮겨놓은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아침에 농장으로 출근해보니 태어난 지 한 달 된 큰 병아리만 울타리 안에 있었다. 어디로 마실을 간 건지 작은놈 세 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집에선 좁은 상자 안에서 네 마리를 한꺼번에 키웠다. 얌전하던  병아리들이 거실 산책을 몇 번하더니 좁은 상자 안이 싫었는지 벽을 쪼기 시작했다.  특히나 큰 병아리 코가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다. 삐약 삐약 소리 내고 부딪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갇혀 살아서 힘들지??'


 괜한 노파심에 더 이상 그 소릴 듣지 못하고 나 혼자 결정해서 상자를 들고 농장으로 갔다.


한쪽에 접어놓은 개 울타리를 꺼내다 하우스 한편에 둘러쳤다. 네 마리 병아리 중 작은 세 마리들이 틈새로 자꾸 나온다.


" 안돼 위험하다고 "

자꾸 탈출하던 아기 병아리들


 울타리 망으로 막아주었다. 아랫부분을 부직포 핀으로 꽂고 흙으로 덮어 마무리를 했다.


뿌듯했다. 신기한 듯 돌아다니며 노니는 병아리들을 보니 보기 좋았다. 시골초등학교 교장실 앞 인공부화기에서 태어나 상자 속에서만 자란 아이들에게 풀을 보여주고 땅을 밟게 해 준 것이다.



"이게 세상이야. 그건 풀이고, 그건 흙이야. 하늘을 봐~~ 기다리고 있으면 땅이 젖었을 때 지렁이도 나올 거야. 마음껏 잡아먹어..."


그 병아리들을 위한 일인 줄 알았다.



" 밑에 나무판 자라도 깔아주는 게 좋겠어 "


내가 보낸 카톡 문자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 그러면 땅에서 나오는 벌레들을 못 잡아먹잖아. "



나는 그게 병아리들에게 더 좋을 줄 알았다.



일하다가도 생각나서 살피러 와보면 자꾸만 작은 아이들이 좁은 틈새를 비집고 밖에 나와있었다.


스스로 나와놓고 안에 있는 친구들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어서 들어갈 길을 찾느라고 우리 둘레를 서성이며 머리를 들이미는 병아리들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도망도 못 치면서 왜 나온 거야.. 바깥세상은 위험하다고..."


막내딸과 둘이서 병아리를 잡아 다시 우리 안으로 넣어주었다. 정말 한주먹 크기밖에 안 되는 한입거리들...


귀여운 짝은 엉덩이들..~~!!


사고 치고 뒤뚱거리고 넘어지고 애쓰는 게 마냥 귀여운 작은 생명들...


요 아이들이 며칠이나 우리 집에 있었다고 이렇게 눈에 밟히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어디로 간 거야...


찾고 싶었다.


'되돌아오는 길도 모를 텐데 왜 나갔어.'



무사히 돌아와라... 일하다가도 우연히 발견하게 되길 바랐다.


오전 내서성 거리며 두리번두리번 하우스 안을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뭇가지를 자르다가 또다시 두리번거리다가...

혼자 구석에 앉아있는 코만이 외로워 보였다.


"왜 움직이지 않고 구석에 앉아만 있는 거야. 동생들 없어서 외로워서 그래?? "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생 병아리들이 스스로 탈출을 한 줄로만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코야 , 동생들 어느 쪽으로 갔니??"

대답 할리도 없다. 괜히 코이름만 불러본다.

의기소침하게 구석에 앉아만 있던 초코가 일어나 삐약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없다. 또다시 기대 없이 돌아섰다.

일하다가도 우연히 병아리들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오후 아이들의 하교시간, 혹시라도 우리 아이들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굣길 아이들을 데리고 농장으로 갔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망설였다.

" 병아리들이 탈출을 했는데 함께 찾아보자."


"어디 갔을까?"

 삼 남매가 우왕좌왕이다.


"나는 이쪽 찾을게 너는 저쪽으로 가봐!"


첫째와 둘째가 함께 길을 나누어 병아리들을 찾아 나섰다. 4시 반이라곤 해도 날이 여전히 뜨겁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았지만, 우리 농장은 너무나도 넓고 그나마 하우스 밖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땅이 보이질 않는다.


한주먹도 안 되는 병아리 세 마리를 찾기엔 무리다.


어쩌지? 그런데 이상하다. 아까 오전까지만 해도 그냥 앉아만 있었는데, 초코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 왜 저러지?? 등 쪽이 이상하다 살이 보이는 듯하다.


"혹시 날이 너무 더운가?? 그래서 그래?? "

혼자 구석에 앉아만 있던 초코


덜덜 덜덜 떠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 엄마 죠코를 풀어보자. 초코가 아기들을 찾을지도 몰라."

우린 그때까지도 병아리들이 탈출을 했을 거라 생각한 거다.

그래.. 어쨌든 얘가 덜덜 떨고 있으니 일단은 꺼내자.



망을 다시 푸르고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갔다. 벌벌 떨던 초코가 첫째가 들어가 쓰다듬자 고개를 숙인다.

" 어! 이제 안 떠는데..."

갑자기 안정을 찾는 게 눈에 보인다. 느낌이 이상하다.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래, 이제 안 떠네 뭔가 안정을 찾은 것 같은 느낌.


집에서도 그랬다. 삐약 삐약 무언가 요구사항이 있는 듯 삐약 거리다가도 첫째만 가까이 가면 병아리 울음소리가 멈추곤 했었다. 초코가 첫째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덜덜 떨던 초코가 첫째가 손을 엊는순간 안정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첫째가 코를 들어 올렸다.

"엄마  초코 다리가 이상해..."


한쪽 다리가 비틀어졌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친 거야?? 그래서 앉아만 있었던 거야??"

" 엄마! 쵸코 등에서 피가 나..."


"어머...."


 ' 그래서... 떨고 있었구나....'

동생들을 찾겠다고 꺼내 주려던 아이를 다시 상자에 담았다. 덜덜 떨던 코는 자꾸 눈을 감았다.

설마.. 설마.. 하늘로 가려는 건 아니지??? 아니지??

다행이다. 건드리면 일어난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게, 기운이 없지만은 않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떨고 있었구나.. 무서웠구나...


그렇게 코는 동생들을 잃은 채 다시 집으로 왔다. 나의 무지와 실수로. 험한 일을 당해 상처를 입은 채 말이다.

가슴이 아팠다.


몰랐어.. 땅 밑으로도 무언가가 들어가 너네들을 헤칠 수 있다는 걸 몰랐어. 평화롭고 조용하기만 한 우리 농장에 너네들을 위협하는 무언가가 나타날 수 있다는 걸 난 정말 몰랐어. 그저 땅을 밟고 풀을 뜯고, 벌레를 잡아먹으며 살게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미안했다. 작은 엉덩이들을 뒤뚱거리며 여기저기 똥을 싸 대며 걸어 다니던 아기 병아리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기 세마리가 우리집에 들어오던날 , 먼저 와 있던 초코와



어쩌지... 이제 진짜 돌아오지 못하는 거야??? 가슴이 먹먹하다. 나의 작은 실수로 생명을 잃었다는 미안함이 컸다.




병아리는 병아리일 뿐이다. 우리가 가끔 시켜먹는 치킨.


그런 건 줄만 알았다. 학교에서 첫째가 병아리들을 들고 왔을 때에도,  귀엽지만 시끄럽고 귀찮은 것들!  그것뿐이었다.


"뭐하러 가져왔어.... 어디다 키우라고....ㅡㅡ"


" 귀엽잖아.. 엄마..."


거실 바닥을 걸어 다니는 모습이 아주 많이 귀엽긴 했다. 그래도 냄새가 심해 밖에 두고 싶었다. 그래서 더 농장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 망을 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평소 반려동물을 키우기를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었는데...


덜덜 떨던 초코가 첫째의 손길에 마음을 놓고 자꾸 잠들려 한 모습에서 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미물인 줄만 알았던 병아리가 우리 첫째를 알아본 순간!


그 순간부터 꼬는 이제 우리 가족이다.


코는 이번 일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집에 데리고 와서도 계속 눈이 간다. 보고 보고 또 보고.


잠에서 깼는지 살펴보고 모이는 먹는지 보고, 물은 마셨는지 확인하고.....



그래도, 다 잃지 않아 다행이다. 코만이라도 다시 데리고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 그래서 생명은 함부로 키우는 게 아니야. 아이들에게도 그 책임감을 확실히 가르쳐야 해 "




남편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시골에서 자란 남편은 어릴 적 기억으로 생명을 잃었을 때의 슬픔을 알고 있었다.



" 나도 아는데, 이번엔 아이들이 그 병아리들을 소홀히 해서 생긴 일은 아니야.  나의 실수지..."


남편도 병아리들을 내보내기엔 아직 이르다고 했었다. 아이들도 아직은 집에서 데리고 놀고 싶어 했다. 내가 내보낸 거다.


아직도 삼 남매는 잘 모른다.


농장 어딘가에서 언젠가는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요 작은 생명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 엄마!! 초코가 나랑 눈을 마주치더니 갑자기 일어섰어


다리를 다쳐 앉아만 있던 코였다. 일어설 수 있구나.


절뚝거리는 모습이 안쓰럽다.


갑자기 푸드덕 날아올랐다.  어머 어머 어머

다친다리로 힘내서  날아오르려던 초코

상자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한참을 균형을 잡는 듯 비틀거렸지만, 넘어지지 않고 앉을 수 있었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절뚝거리며 일어선 초코


아이들 모두가 기뻐했다.

첫째가 죠코를 잡아 다시 상자 안으로 넣어주었다.


" 떨어지면 다쳐... 아직은 안돼 " 애지중지 하는 첫째의 손길에 따뜻함이 전해진다.


가끔 우리가 시켜먹는 치킨이 요런 애라는 걸 알고 있니??

내가 키운 생명과 아닌 생명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생명은 다 소중한 거야...

이번 일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교훈이 되어주었다.


" 너의 닭 평생은 내가 지켜주마 "


첫째가 같은 반 친구와 통화를 했다.

둘이서 알을 받을 계획을 세운 듯하다.



" 코야 너 이제 연애도 해야 돼, 동우네 병아리랑 결혼시켜줄게,  이제 외롭지 않을 거야....


남편 말대로 생명은 함부로 키우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끝까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도 배워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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