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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밭농부 Dec 07. 2021

귀농의 첫 결실

수확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참 빠르기도 하다. 남편이 하던 농사 준비를 바통터치로 이어받아 내가 본격적으로 농사에 뛰어든 건 올봄부터였다. 4300평이란 크기가 여자 혼자의 몸으론 버거워 친정엄마와 함께 시작했다.


 그렇게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그저 힘들 줄만 알았던 농사는 나름 재미있었고 확실히 보람 있었으며 매 순간이 새로웠다. 나름 잘 해내고 있는 내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남편은 회사를 다니며 쉬지도 못하고 주말마다 12시간씩 농장일을 해왔다. 엄마도 나도 남편도... 농장에서 잘 놀아주던 세 아이들도 모두 잘 해내고 있었다.

 드디어 수확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정말 많은걸 준비했다. 농장 브랜딩을 시작했고 귀농과정을 기록했으며 매일매일 감사함으로 SNS에 우리의 모습을 남겼다. 귀농이란 게 그리도 특별한 일이던가 싶게 주변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보내주었다. 새삼 문득문득 귀농이란 게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한 일인지를 실감한다.


 두 달에서 한 달, 수확시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크게 동요하고 있는 듯하진 않았지만 내심 초조했던 것 같다. 브런치에 글을 쓸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블로그에 홍보글을 하나라도 더 써야 할 것 같았다. 나무에 열린 샐 수 없이 많은 열매들을 볼 때마다 이제 뭘 더 할 수 있을까만을 고민했다.


 판매가 될 것 같은 여러 플랫폼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펀딩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타 플랫폼에서의 온라인판매가 금지된다는 말을 듣고 접었다. 판매기간이 무척 짧은 사과대추는  최대한 많은곳에 한꺼번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찌는 듯한 더위에, 타는 듯한 햇살을 받고 농장에서 일을 하고 들어와서도 어김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초조함을 조금씩 자신감으로 바꾸어 나갔다.


 1년 동안 준비해온 여러 일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뭐든지 쉬운 건 하나도 없었지만, 어려운 일도 하나도 없었다.


 나는 차근차근 문을 열고 찬찬히 걸어 나갔을 뿐이다. 내가 다다를 수 있는 곳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 하나 해낼 때마다 뿌듯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한참 건조해야 할 가을에 때늦은 장마가 연이었다. 낙과율이 높아졌지만  낙담하진 않았다.  있는 것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우리의 열매를 기다리고 있을 고객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9월의 어느 날, 미리 예약주문을 받았다. 한순간 한꺼번에 익어 쏟아질 사과대추 열매를 빠르게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공동구매를 시작으로 주문이 물밀듯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농원은 올해 첫해 수확이다. 먹어본 이들의 후기가 있을 리도 없는데,  많은 분들이 우리 이름만 믿고 선주문을 해주기 시작했다.  감격스러웠고, 그저 감사했다. 빨리 보내드리고 싶었지만, 대체 공휴일이 앞뒤로 끼어 있다니... 야속하다.



 주말 새 따놓고 월요일에 보내자니 저장창고 안에 있어야 할 열매들이 걱정이었다. 처음 수확한 열매들은 잘 모르고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저장창고에는 딱 한번 넣어보고 그 후부턴 무조건 바로 따서 포장을 하고 바로 보냈다. 정말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열매를 따는 일도 힘든데 가지고 와서 선별하는 작업까지 만만치 않다. 팩과 박스에 담아 택배 포장을 하고 송장을 붙이는 일까지, 초보 농부 부부는 계속 우왕좌왕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아까웠으며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일이다. 시간은 또 어찌나 빠르게 가는지 매일매일 보내야 할 택배 송장을 들고 한 장 한 장 도장깨기를 해나갔다.


 "좀더 자. 어차피 아직 캄캄해서 농장가도 안보여 "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눈을 뜨자마자 옷부터 입는 나를 보며 남편은 잠이 덜깬 목소로 말했다.


 " 오빠야 말로 좀더 자 , 난 뽑아야할 송장이 한가득이라 일단 나갈게."


올려놓은 플랫폼이 워낙많았다.  일일이 확인하고 송장취합을 하는 일도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양손가득 송장을 들고 나와 업체별로 순서대로 쌓아놓은 후, 상자들을 꺼내 밖에다 쌓아놓다보면 알바생부터 하나 둘 출근하기 시작했다.


" 오늘은 몇개야 ?얼마나 되? "  

" 어, 일단 많아 ~~어제꺼부터 밀려있으니 최대한 빠르게 많이 싸면  되 "


 물마시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빠르게 작업을 시작했지만  손놀림에도  한계가 있었다. 개인적인 주문문의와 인삿말 , 이런저런 문자들이 끊임없이 오기시작했지만 최대한 놓치지 않고 그때그때 대응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수북하게 쌓였던 송장을 한 장 한 장 붙여내고 택배박스를 모두 보낸 후에도 우리 부부는 농장에 남아 늦도록 일을 했다.

  일을 도와주는 아르바이트생들과 친정엄마는 하교한 삼 남매와 함께 집으로 먼저 돌려보냈다.


 쉴 수가 없었다.  다음날도 수많은 택배 송장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남편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따다 놓은 사과대추 열매들을 늦은 밤 어두운 농막에서 눈을 부릅뜬 채 선별해야만 했다.


 전등을 켠다지만 주변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흑같이 캄캄한 농막은 전등의 그림자로 보이는 곳과 안 보이는 곳이 명확하다.  매일 새벽에 출근하는 일상이었다. 잠이 부족하고 피곤했지만 후기도 없는 열매를 주문해 놓고 기다려주고 계신 고객님들을 생각하면 새벽마다 저절로 눈이 번쩍 떠졌다.


 새벽 수확에 당일 포장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게다가 앞뒤로 대체공휴일이라니... 어쩌란 말인가. 일을 더 몰아서 해야만 하는 거였다. 10월 한 달 3주면 다 따내야 하는데, 택배를 보낼 수 있는 날짜가 길지 않다.


 도대체 언제 보내주냐는 문자를 볼 때면 내 마음도 조급해진다. 발을 동동 구르며 쉬지 않고 겨우 겨우 수북한 송장들을 클리어 해나 갔다.


캄캄하게 늦은 밤이 되어서야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퇴근했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속상하고 당혹스러웠을지...  많은 열매들을 모두 어떻게 했을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처음엔 선주문 공동구매로 주문이 몰렸었지만, 둘째 주부턴 빠르게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먹어보신 분들의 재주문, 선물 받으신 분들의 주문 문의가 늘면서 , 입소문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느꼈다.


 블로그와 인스타 후기들이 퍼지고,  플랫폼 판매처에도 후기글이 달리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주문이 늘었다. 급기야 물량이 딸리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일가친척에 친구들까지 모두 달려와 일을 도와주었다.  정말이지,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뿌듯하고 감사했다. 맛있다는 칭찬 후기들이 쏟아졌다. 문자에 전화까지 주시고 직접 찾아오시는 고객님들도 많았다.  생전 처음 이렇게 온라인으로 판매를 해보았고 1년의 농사 결실을 최고의 찬사로 받았다. 그 순간순간의 감격스러움은 언제까지고 초심으로 간직하고 싶다.


 배송을 재촉하는 고객님도 있었지만,  농부님 고생할게 걱정이라며 먹고 싶지만 참을 테니 천천히 보내달라는 문자를 볼 때면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일부러 돈을 더 입금해 주시고 핸드크림을 사 바르라고 해주신 고객님도 잊지 못한다.

 블로그와 인스타로 인연을 맺은 분들도 꽤 있었는데, 거의 닉네임을 쓰다 보니 본명으로 주문을 해주시면 누가 누구인지 잘 알아보지 못하곤 했다. 아는 척하며 인사라도 고 싶었지만 사진 후기가 올라온 후에야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 농부 부부를  걱정해주고 지지해주며, 제 돈 주고 주문해 주면서도 발송 문자에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보내주셨던 고객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지금껏 먹어본 사과대추 중에 최고였다는 평'은 여러 번 받았지만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수확 종료가 예고되자 아쉬워하시는 고객님들과 판매 종료 후에도 따로 전화를 주시어 나무에 몇 개 남지 않은 열매까지 탈탈 털어 보내드리기도 했다.


" 우리 꺼 진짜 맛있나 봐."

" 맛있다니 너무 다행이다. "

" 내년엔 더 잘해야지  "


 늦은 밤 퇴근해 저녁을 먹으며, 올라온 후기들을 보면서 하루의 피곤을 날려 보냈다.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이 기쁜 순간이다. 

이런 게 농부의 보람인가 싶다.


 가을장마가 연이어 계속되는 통에 수확량은 예상보다 적었지만, 고객님들이 인정해주는 맛있는 사과대추를 수확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부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값비싼 경험을 얻었다.


 내 평생 잊지 못할 10월이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한뼘자랐고, 이제 문을 열고 세상을 향한 첫발을 내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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