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마트팜 수업 주제는 식물공장이다. 역시 공부를 할 땐 맨 앞자리에 앉아야 하는 거였다. 뒷자리에 앉은 탓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서 인지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네이버 부동산으로 주변 토지를 검색하곤 남편과 카톡을 주고받는다. 옆에 앉은 청년 농부가 보내준 체험농장 블로그에도 들어가 보며 아이디어를 떠올려 본다.
강사님의 목소리가 작아 또렷이 들리지 않는 탓이라고 자기변명을 해본다. 다시 강의에 집중해보고자 애써 컬러 프린트된 자료를 훑어보지만 이내 집중력은 흐트러지고 스마트폰을 검색한다.
저분도 훌륭하신 분일 텐데, 먼 곳까지 와주신 강사님의 말을 한마디라도 더 들어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강사님 말씀에 다시 한번 귀 기울여 본다. 식물공장으로 박사논문을 쓰셨다고 한다. 원래 직업이 농부는 아니었을 텐데, 어떠한 계기로 스마트팜에 발을 담그게 되셨을까? 괜스레 궁금해진다.
농업에의 관심, 스마트팜으로의 관심이 시작된 건 나에게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강사님에 대한 궁금증도 잠시, 어느샌가 나의 지난 시간들에 대한 회상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제 겨우 귀농 2년 차 초보 농부다. 어느 날 갑자기 귀농을 한 것 같기도 한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제 스마트팜을 하고 있다. 정확히는 교육생이다. 농협에서 전국 최초로 시행하는 스마트팜 교육의 실습생이며 그중의 반장이다. 햇병아리 초보 농부이기에 열심히 나갔다. 반장이라는 감투가 뭐라고, 다른 교육생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나라도 더 보면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육을 받는 중 지원사업 공고가 떴다. 스마트팜이 뭔지도 모르면서 우리 부부는 지원서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영농 경력이 짧다. 스마트팜 관련 교육도 이번이 처음이다. 지원을 도와주는 교육원의 주체인 농협에서도 반응이 부정적이었다.
" 하반기에 다시 하셔야 할 것 같아요. "
농협 직원분이 보기에도 내가 불리해 보였던 것이다. 떨어질 것 같아 미안했는지, 이번에 떨어지면 하반기에 다시 신청을 해보라는 염려가 섞인 격려를 보내준다.
여러모로 점수가 많이 딸리는 건 나도 알고 남편도 안다. 남편마저도 큰 기대가 없는 눈치다.
" 이번엔 힘들겠는데... 교육점수는 청년 농부들을 따라갈 수 없어."
" 그런데... 스마트팜 하고 싶어? 생각은 있는 거야? "
나는 미리 포기하는 듯한 남편에게 되물었다.
" 하고 싶지, 농협 옥토 팜 브랜드 1호 농가가 되고 싶지. 지원금도 받고 싶고, 스마트팜도 시작하고 싶지."
" 그럼 해!! 지원서 쓰자! 왜 해보지도 않고 먼저 포기해?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래 맞아 , 우리 교육점수 없어. 그럼 사업계획서로 만점 받으면 되잖아!! "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뭘 믿은 건지, 우린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쳤다.
" 좋아. 영농경력, 교육이력이 부족하다면 우리가 가진 강점은 뭐지? "
우린 우리에게 불리한 점수를 뒤로하고 우리가 가진 장점과 강점을 최대한 살리기로 마음먹었다. 귀농 첫해에 적지 않은 물량의 사과대추를 온라인 판매로 성공시킨 이력을 증거서류로 첨부했다. 비록 점수 항목에는 없는 내용이었지만, 우리의 열정을 보여주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팜과는 다르겠지만 기계에 해박할 수밖에 없는 대기업 엔지니어 출신의 남편 이력도 넣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긴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천안시 농업에 해줄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열정적으로 적어냈다.
지금까지 해온 일 못지않게 앞으로 우리가 해내고자 하는 일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명이었던 걸까? 지원 공고가 나기 며칠 전 우린 땅을 계약했다. 스마트팜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을 때였는데, 첫 출시에 대박이 났던 사과 대추칩 공장을 차리고 싶은 마음에 지금 운영하고 있는 농장과 딱 붙어있는 땅을 구입한 것이다. 임대하고 있는 농장에 스마트팜 시설을 지을순 없는 노릇이며, 우리 소유의 땅이 없었다면 지원사업 선정이 어려웠을 것이다. 때마침 적당한 크기의 토지를 계약한 후였고, 우린 지원사업에 최종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합격 전화를 받고 남편에게 달려갔다. 남편은 농장에서 스프링클러를 손수 설치하고 있었다.
" 오빠!! 오빠! 내가 뭐라고 했어! 될 거라고 했잖아. "
"오~~ 대단한데? "
남편도 놀라는 눈치였는데 괜스레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말이야 그 사업계획서 내가 쓴 거다? ㅎㅎ "
"거봐! 세상일이 항상 그렇게 성적순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간절한 사람이 얻게 돼있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떨어지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말자고 했다. 난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스마트팜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해 주지 않는다. 아직 자리를 잡아가는 과도기의 사업이기 때문에 큰돈이 들어가면서도 성공하는 사람이 드물다. 알고 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질 스마트팜이라는 미래가 너무 불확실하다는 것을. 그렇다고 기회를 그냥 흘려버릴 순 없었다. 작게라도 시작하자! 멀리서 바라만 보는 것과 직접 발을 담가 시작해보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부러워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무모해 보일 것이란 걸 안다.
하지만 누군가가 미리 길을 다 만들어 놓을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안정적인 길을 가길 원했다면, 굳이 남편의 좋은 직장을 두고 귀농을 결심하지도 않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