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노키옥 Nov 16. 2020

8. 폭로

이 전 글들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고 겪은 어려움과 고통에 관한 것이 었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이혼이 아닌 결혼 생활을 지속하기로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지금까지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부딪히고 좌절하고, 또다시 깨달음을 얻고 일어서고 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약이다란 말이 있는 것처럼 끝날 것 같지 않던 고통의 시간도 반드시 끝이 있으며, 지나고 보니 그 고통도 견딜만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부부 사이는 그 일이 있기 전보다 훨씬 더 두터워졌으며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서 재미있는 구경은 두 가지가 있다. 싸움과 불구경. 그중에서 남의 부부 싸움, 특히나 불륜이 소재가 된다면 그 얼마나 재밌는 구경이 될까. 앞에서는 걱정하는 척, 위로하는 척하겠지만 뒤에서는 우리 부부 얘기를 안주삼아 얘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때에는 현재의 이 상황을 의도하고 선택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지나고 보니 내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폭로를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남편의 치부는 곧 나의 치부가 될 수 있다. 부부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가정한다면 배우자의 불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을수록 걸림돌이 될 것이다.


“00 엄마 얘기 들었어요? 바람피운 남편이랑 결국 다시 잘해보기로 했데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난 바람난 남편이랑은 절대 못 살 것 같은데...”

“아, 정말? 잘 생각했어. 그래,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이혼은 답이 아니지. 정말 큰 결심 했네.”


반대로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상황은 별 반 다를 게 없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어. 남편이 바람 폈는데 부부관계가 온전할 리 없지.”

“소식 들었어요? 00 엄마 결국엔 이혼했데. 남편이 바람 펴서 죽네 마네 하더니 결국 갈라서기로 했다지 뭐예요.”

“저 여자 남편이 바람 펴서 홀로 아이를 키운다지 뭐예요. 어특해, 너무 안쓰러워... 아이들은 또 무슨 죄고...”


남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고 사는 강단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처럼 남에 말에 잘 휘둘리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에겐 어려운 일이다. 배우자의 외도로 고통받은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아진다. 나는 특히나 더 그랬다. 우연히 저 멀리서 날 바라보며 귓속말을 하는 동네 엄마들을 보았다면 난 그들이 우리 부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착각 아닌 착각을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귓속말이 다 내 얘기를 하는 것 만 같고 동정할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더 견딜 수가 없었다.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친정 엄마와 한 집에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지금까지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신다. 내가 남편이랑 매일 밤 싸우고 그 난리통을 쳤을 때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셨다. 평소 내가 앓던 불면증이 심해져 극심한 우울증이 온 것으로만 아셨다. 남편과 큰 소리로 대화해야 할 때에는 집이 아닌 바깥에서 (주로 호텔이나 자동차 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울음이 터져 나올 때도 주먹으로 입을 막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나에겐 두 살 터울의 언니가 있었지만 언니에게도 난 아무런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언니가 의지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난 가족에게 말하는 것도 내 자존심이 상해 말하기가 싫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나의 이야기에 같이 아파해주고 위로해주겠지만, 결국엔 그들에게도 남에 일인 것이다. 내가 돌아가고 나면 그날 밤 자신의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우리 부부 사이를 이야기할 것이다. 걱정으로 시작된 이야기도 결국엔 그냥 재밌는 이야깃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행복을 시기하지 않고 불행을 기뻐하지 않는 진실된 친구가 있다면 그 한 명에게 쯤은 고통을 털어놓으면 어느 정도 마음에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상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며 혼자서 감내하기엔 너무나 크나큰 고통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최대한 나를, 우리 부부를 모르는 제삼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내가 이혼을 하든 다시 결혼 생활을 유지하든 살면서 잘 만나 지지 않을 그런 사람. 내게는 변호사, 법률사무소 사무장, 병원 의사 선생님, 부부 심리치료사 등이 그 대상이었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안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고장 난 회로처럼 머릿속은 복잡하고 더러운 생각들로 뒤엉켜 꼭 멀미를 심하게 하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먹든 토해내기 바빴다. 단 기간 내에 급속도로 살이 빠졌고 잠도 제대로 청할 수가 없었다. 가슴속은 무겁고 단단한 무언가로 짓누른 것 같은 고통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특히 밤에 증상이 더 심해졌다. 툭하면 오는 과호흡에 정신이상에 하루도 멀쩡한 날이 없었다. 그때의 시간은 아직도 명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남편은 그런 나를 데리고 매주 용하다는 병원 이곳저곳을 함께 다녔다.

불면증과 극심한 감정 기복으로 처음에 방문한 곳은 신경정신과였다.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잠은 잘 잤지만, 하루 종일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몽롱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싫어 약을 거부했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한의원이었다. 난 그때 처음 알았다. 배우자의 외도로 마음에 병을 얻은 사람들을 위한 전문 한의원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유명하다는 곳에 가서 상담을 받고 긴급 처방으로 침을 맞았다. 침을 맞으니 거짓말 같게도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려 숨이 제대로 쉬어지기 시작했다. 한약까지 지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침 치료도 그때뿐이었다. 하루가 지나니 가슴은 다시 예전처럼 꽉 막혀 숨을 쉬기가 힘이 들었다.

수많은 병원을 다니면서 우리 부부는 그때마다 내가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를, 그 간의 상황을 설명해야만 했다. 어느 의사 선생님은 내 부모 대신 못난 남편을 혼내주기도 하고, 내 형제 대신 나를 다독여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속이 많이 풀렸던 것 같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던 내게 괜찮다며,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며, 이 고통을 겪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너무도 잘 지내기도 한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었다.

그 당시엔 내 자존심에 가족과 친구들에겐 말하지 못해 기댈 곳이 없어 조금 힘들었을진 몰라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단, 시부모님은 예외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실제로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 대부분 며느리에게 호의적이었던 시부모님까지도 중요한 순간엔 자신의 아들 편을 들며 며느리에게 책임을 전가해 더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이 많았다. 반면, 시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사이가 안 좋은 며느리들은 이번 일로 시댁에 며느리 노릇 할 필요 없어 더 속이 편하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그 후자에 가까웠다. 물론 그것도 다 지나간 이야기로 지금은 시부모님과 웃는 얼굴로 마주하고,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한다.  

모두가 처한 상황이 달라 이게 꼭 정답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겐 도움이 되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기쁨을 말하면 시기, 질투가 되고 슬픔을 말하면 약점이 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의 슬픔이 누군가에겐 약점이 되고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다. 비록 그때에는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남편은 아직도 내 부모에게는 좋은 사위이고, 아이들에겐 좋은 아빠이다. 부부 모임도 그 누구 하나 눈치 보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다. 그러한 현실이 부부 위기를 극복하는데 내겐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7. 명예훼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