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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키옥 Dec 02. 2020

10. 불가촉천민


“왜 자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소금을 뿌리는 거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하루에 적게는 두 번에서 많게는 세 번씩 상담을 받는데 그 당시 의사 선생님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이었는데 남편의 외도는 나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상간녀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했을 때나, 복수를 하겠다는 내 계획을 말했을 때마다 번번이 말리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전혀 듣지 않았다.

소송도 진행했고, 내 나름대로의 복수도 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물론 나쁜 일에 대해 빨리 벗어나고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남편의 외도를 극복하기 위해선 충분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수년이 흐른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남편의 외도를 아는 순간부터 지옥의 문이 열린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과 분노, 슬픔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루속히 빨리 나오는 방법은 내 안에 감정을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분출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복수는 가장 큰 무기이며, 회복을 위한 가장 빠른 수단이다.


물론 막무가내로 복수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복수에도 격이 있다. 우린 상간녀와는 달리 우아한 존재이며 남의 것을 탐하는 그런 못된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아주 어렵거나 커다란 계획도 아니다.


처음 상간녀의 연락처를 내 휴대전화에 저장을 해야 할 때 이름에 대해서 고민했다.


불가촉천민.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상간녀 이름이었다. 상간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증거로 상간녀와의 대화 내용을 캡처하여 내기도 하는데 법원 증거자료에 쓰인 저 말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모른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상간녀도 내가 자신을 뭐라 저장했는지 봤을 것이다.

실제로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아내들은 재판 과정에서 상간녀에 대한 이름 그대로 증거자료로 올라가는 것에 묘한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상간녀’에서 부터 ‘쓰레기, xx받이, 멍멍이 같은 x 등등’ 입으로 담기 힘든 욕까지 아주 다양하게 저장되어 있다. 이 내용 그대로 증거자료로 사용되며 판결까지 가는 것이다.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상간녀가 제출한 증거자료를 통해 뜻하지 않게 그 여자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게 된다.

가령 미혼이며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애인이 있다던지, 외동딸에 부모님은 어디에서 장사를 하고 계시다던지, 어느 회사를 다닌다던지 말이다.


가끔 미혼인 상간녀 결혼식 장에 가서 예비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판결문을 뿌리고 결혼식을 망쳤다는 기사를 접해 보았을 것이다. 나도 숱하게 그런 상상들을 하며 힘든 시간을 버텨내 왔다. 저렇게 막무가내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폭로 아닌 폭로를 하게 되면 명예훼손죄(그들에게 명예란 게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로 처벌받을 수 있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실제로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 애인, 직장 상사(인사 담당) 등과 같은 사람은 전파 가능성이 낮아 명예훼손죄로 성립이 어렵다고 한다.


부모가 내 자식의 불륜 사실을 만 천하에 떠들고 다니지 않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행하진 않았어도 계획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감정이 해소되었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난 나의 계획들을 다는 아니지만 말을 하였다.


“요즘 무슨 생각을 하세요?”


란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난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러지 말라는 것이 대다수였다.


의사 선생님이 말린 나의 계획들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상간녀 부모에게 알린다.

증거도 없이 들이밀면 내 말을 안 믿으실 테니까 판결문이 나오는 순간, 그걸 들고 부모님이 하시는 가게로 가서 알린다.


둘째, 애인에게 알린다.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 이 결혼하지 말라며 한 남자의 인생을 구원해 준다. 물론 헤어지고 말고는 그 남자의 선택이지만...


셋째, 직장 상사에게 알린다.

내가 둘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상간녀는 수개월 전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00 시청에 9급 공무원으로 들어갔다. 내가 소송을 진행했을 때, 회사에서 잘릴 것을 가장 걱정하기도 하였다.


넷째, 두 번째 애인이 상간녀 곁에 남기로 선택한 경우, 결혼식장에 가서 예비 시부모님에게 알리고 결혼식을 망친다.


다섯 번째, 명예훼손이고 뭐고 폭행 죄고 뭐고 일하는 회사에 가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 여자를 마구 두들겨 팬다.

그 여자의 불륜 사실을 만 천하에 알린다. 친구들에게도 메시지를 보낸다. 실제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아 많은 다수에게 폭로를 하였을 경우도 명예훼손죄로 신고되어도 정상참작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아내들 편이지 상간녀를 위하지 않는 다고 한다.


이 중에서 내가 실제 실행한 것은 세 번째 계획이었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뜻하지 않게 상간녀 애인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상간녀 곁에 남기로 결정하였다. 그에겐 아무런 감정이 없기에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나 또한 내 남편과 이혼하지 않기로 선택하였기에...

소송이 진행되면서 상간녀는 자신의 밑바닥 인성을 드러내 보였다.


나에게 죄송하다는 사과가 아닌 역으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한 것이다.


‘당신 회사랑 남편 회사 찾아가서 다 폭로해버릴 거야. 왜 나만 당해야 해. 당신 남편도 잘리게 만들 거야.’


‘당신 자식들 유치원 찾아가서 아빠란 사람에 대해 다 폭로할 거야. 그 동네 얼굴 들고 다니지도 못하게 할 테니 두고 봐.’


남편에 대한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있었지만, 내 자식들까지 건드리면 안 되었다. 그 사실에 난 너무도 화가 났다. 감히 어디서 감히!

난 상간녀가 일하는 00 시청 인사과에 민원을 제기하였다.


불륜에 협박까지 일삼는 사람이 나라의 일꾼으로 일하게 둘 순 없다고...


민원을 제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 담당자가 연락을 해 왔고 상간녀는 자신의 치부가 회사에 알려져 괴로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인사 담당자는 당사자를 불러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때 난 알았다. 회사는 직원 개개인의 사생활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불륜에 대해서는 너무도 관대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꼭 칼로 찔러야만 살인죄는 아닌데 불륜은 그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살인죄인데도 말이다.


불륜은 민사 사건이라 자를 수는 없지만, 협박에 대한 소송을 내가 진행하게 되면 형사사건으로 처벌이 불가피해진다.  

인사 담당자는 형사 고소는 피하려 중간에서 애를 많이 썼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내 직원 교육을 철저히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협박 아닌 진실된 사과라고 말하자 상간녀는 직장상사의 권유 때문이었는지 처음으로 자신이 잘못했다며 긴 장문의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물론 그 사과가 온전히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관대한 마음으로 난 그 일을 그 정도 선에서 덮어두었다.


다만, 후회되는 한 가지는 그 여자에게 사과를 들으러 직접 시청으로 찾아가지 못한 것이다.

그때 난 시청으로 찾아가 인사 담당자가 보는 앞에서 상간녀 무릎을 꿇리고 제대로 사과받고 뺨 한대 후려치는 것이 최종 계획이었다. 그것을 하지 못한 게 끝끝내 후회로 남는다.

후회든 미련이든 남지 않으려면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한다.


그리고 상간녀에게 내가 언제든 이 사실을 당신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알릴 수 있음을 살짝 인지해 두었고 그로 인해 늘 불안해 떨며 살 그 여자를 생각하니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나머지 계획은 아직 실행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실행할 수 있는 계획들이다. 이렇게 키를 내가 쥐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 졌다.


분노든 슬픔이든 감정은 모두 표출해내야만 한다. 참는다고 다는 아니다.

하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듣지 않았지만, 분명 효과는 있었다. 그 당시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겪이더라도... 고통은 심할지언정 덧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소금이 아닌 소독약을 뿌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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