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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키옥 Nov 20. 2021

12. 동병상련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많이 든 생각 중 하나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였다.

나를 뺀 주변 부부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생기는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세상엔 바람피운 남편과 안 들킨 남편만 있을 뿐이다란 어처구니없는 말을 믿고 싶을 정도였다.

온 세상 모든 아내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다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카페 두 곳이 있었다.

남편의 외도로 고통받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해주고 방법도 찾아주고 같이 성토하며 아파해준다.

생각보다 나와 같은 고통을 받는 이들이 많았다. 그게 위안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이럴 거면 왜 결혼해서 멀쩡한 한 여자의 인생을 망치는 것인지 남자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의 집착은 남편이 어디서 누굴 만나는지, 누구와 밥을 먹는지,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서 카페로 향하였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밤새 무슨 이야기들이 올라왔는지 정독했다. 낮에도 틈만 나면 들어가 보고 자기 전에도, 심지어 자다 깬 새벽에도 카페에 들어가 글들을 정독했다. 어떤 글은 너무 감정이 이입되어 불 같이 화내고, 같이 엉엉 울다가, 정말 개차반인 남편을 둔 아내를 위로하며 그래도 난 저 정도는 아니란 마음에 위안을 얻기도 했다.


카페 두 곳은 배우자의 외도로 상처 받은 아내들이 모였다는 것 외에 분위기는 상반되게 달랐다.

한 곳은 불륜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상간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어떻게 준비하는지, 바람난 남편을 되돌리는 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알려주고 있다. 나 또한 소송을 진행하기 전 카페지기님을 만나 상담을 하고 증거 수집, 소송 방법 등에 대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상간남, 상간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주로 담당하는 고문 변호사님도 계신다. 이곳에 아내들은 이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들을 서로 공유한다. 그래서 다소 감정이 격해지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반면에 다른 곳은 그저 상처 받은 이들을 서로 위로해주고 다독여주고 토닥여주는 따뜻한 곳이다. 앞 카페에서 이성적인 조언을 들었다면 여기선 감정을 달래주는 위로를 얻었다.


이 두 곳을 거의 숨 쉬듯이 들락날락 거리며 내가 느낀 것은 이런 일을 겪고도 정말 잘 살고 있는 부부가 있는지를 묻는 아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


안 핀 놈은 있어도 한 번만 핀 놈은 없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바람피운 놈은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다 등.


수없이 부정적인 말들이 가득한 곳에서 이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부부관계가 회복된 이야기는 듣기 힘들었다.

간혹 가뭄에 단비가 내리듯 ‘저흰 잘 살고 있어요. 남편도 예전보다 더 잘해주고... 평생 잊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죽을 것 같던 시간도 다 지나가고 살만해지네요.’ 란 댓글을 단 사람이 있기도 했다.


나 역시 남편과 이혼을 하지 않고 다시 노력해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매일 같은 의심이 들었다.

과연 정말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의 얼굴을 마주 보며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이혼하지 않은 걸 후회는 하지 않을까.

의심이 들 때마다 카페에 들러 지난 글들을 검색하고 댓글까지 모조리 읽고 또 읽었다.


그때, 나의 눈에 들어온 댓글이 하나 있었다. 이 말은 내 머릿속에 경종을 울려주었다.

“부부 사이좋아진 부부 분명 있을걸요, 저희도 그랬고요. ㅎㅎ. 그리고 부부 사이 회복하여 잘 사는 분들은 여기 안 올 것 같은데... 저도 정말 몇 년 만에 들어와 보네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이혼하지 마세요.”


그랬다. 위기를 극복하고 잘 이겨낸 아내가 다시 이 카페를 기웃거릴 일은 없을 것이다. 수년이 지난 나 또한 지금 그랬으니...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선 나도 몇 년 만에 카페를 다시 들어가 보았다.


서로 따뜻한 위로를 주고받던 카페는 그때보다 관리가 덜 되고 있는지 광고글로 도배가 되어있었지만, 그래도 매일 밤 잠 이루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는 아내들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카페는 여전히 포커페이스 유지하며 증거 찾기, 소송하는 방법, 바람난 남편을 응징하고 대하는 방법 등 현실적인 조언을 하며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다.


예전 그때의 나처럼 많은 글을 보고 글을 남기지도 않았지만, 난 분명 이 두 곳이 그 힘든 시기를 이기는데 어느 정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나의 엄마이자, 언니, 동생, 친구일 수 있는 그녀들과 함께 아파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응원하면서 지옥 같은 시간을 버텨냈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안 되는 법.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해야겠다는 목표가 분명히 생겼을 땐, 어느 정도 끊어냄도 필요하다. 애써 감정을 잘 추스르다가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내 감정이 같이 휘둘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최대한 도움을 받되 너무 목메어서는 안 된다.


나를 탓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고,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기다 보면 자연스레 건강한 부부관계는 따라오고 가족이 된다.


이겨내기로 마음먹은 순간 부정적인 기억과 감정들은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 빠른 회복을 위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지옥 같다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세상과 신이 원망스럽다면 카페를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슬프게도 나와 같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고, 그게 마음 아프면서도 위안이 되니 말이다.


카페 정보


1. 남편 바람에 대처하는 법 (https://m.cafe.daum.net/musoo​)​

2. 남편바람 용서 혹은 응징 (https://m.cafe.daum.net/twopairs?nil=caf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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