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노키옥 Nov 12. 2020

6. 복수

남편의 외도를 알기 불과 수개월 전의 일이었다.

직장동료로 알고 지낸 지 일 년 남짓 되는 여직원이 근심 가득한 눈으로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 00 씨, 무슨 일 있어요? 안색이 안 좋네. 아프면 일찍 들어가서 쉬어요.”


“아, 아니에요. 저기... 오늘 퇴근하고 잠깐만 시간 내주실 수 있어요?”


평소엔 늘 에너지 넘치고 해맑던 사람이 무슨 일인지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일을 마치고 회사 근처 식당에서 여직원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남자 친구를 만난 지 6개월 남짓 되었으며, 나이도 나이인지라 결혼 얘기가 오가는 중이었다고 했다. 남자 친구 어머니와 그의 형, 형님까지 만나 뵈었다고 했다. 여직원은 결혼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지인인 웨딩플래너를 만나러 간 날 밤 황당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남자 친구가 수년 전 같은 웨딩플래너에게 결혼 준비를 맡겼다는 것이다. 여직원과 웨딩플래너는 언니, 동생으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기에 웨딩플래너는 고민 끝에 그 사실을 알렸다고 했다.


“분명 결혼식까지 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식까지 올리고 파혼한 건지 아니면 이혼한 건지는 저보고 다시 잘 알아보라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일이...”


“그래서 말인데...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알고 보니 남자 친구란 사람은 내가 아는 지인과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내 지인은 그 회사의 인사과 팀장이었고, 예전에 우연히 지인과 통화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난 흔쾌히 알아봐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일이었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개인정보보호나 개인의 사생활 침해보다 한 사람의 인생이 더 중요했으니 말이다. 지인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나를 한번 더 놀라게 했다. 회사 여직원과 결혼을 약속하고 어머니와 형제까지 소개한 그 남자는 아들까지 있는 유부남이었던 것이다. 내 주변에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지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여직원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난감했다. 깊은 트라우마로까지 남을 수 있는 상처였기에...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여직원은 깊은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질 못했다. 나중엔 어렵사리 그 남자 아내의 연락처까지 알아내어 모든 사실을 폭로하였다. 물론 그 자리엔 나도 함께 있었다. 남자의 아내를 만나러 가는 자리에 같이 가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난 애써 담담한 듯 이야기하는 여직원과 아내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여직원도 그 아내 되는 분도 모두 피해자였다.    


그 뒤로도 여직원이 힘들어할 때마다 나는 시간을 내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직원은 매일매일을 어떤 방법으로 복수할까만 생각했다. 나는 혼인 빙자 간음죄로 그 남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과 함께 변호사까지 소개해 주었다. 하지만 여직원은 아무런 것도 하지 않았다. 빨리 잊고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여직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다.


남편의 일을 겪고 갑자기 그 여직원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연락을 했지만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수개월이 지난 후였지만 아직도 그 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 같았다. 여전히 수척했고 밝고 예뻤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나를 만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내었다. 처음엔 꾀 담담하게 보였으나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지금 저를 제일 화나게 하는 게 뭔지 알아요? 다 같이 나를 속인 그 어머니와 형을 찾아가 따져 묻지 않은 거? 그 남자를 사기죄로 소송 안 한 거? 그 남자 회사로 찾아가 깽판 안친 거? 다 아니에요. 당장에라도 이혼할 줄 알았던 아내가 모든 것을 용서하고 아무렇지 않게 잘 산다는 거예요. 얼마 전 셋이서 일본으로 여행까지 다녀왔더라고요. 난 이렇게 망가져 가는데 그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정말 화가 나요.”


“00 씨, 그때는 이 일로 둘이 이혼하면 평생 마음 무거울 거라고 안 했어요?”


“그때는 그랬죠. 어린 아들도 있었으니까. 한데 차라리 이혼하길 바랄 걸 그랬나 봐요.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꼴을 보니 화딱지가 나서 미칠 것 같아요.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아요.”


순간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남편의 상간녀도 내게 같은 말을 했었다.


‘이 일로 이혼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어린 두 딸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생각해봐 주세요. 안 그럼 제가 정말 나쁜 년이 되는 것 같아요.’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며, 당신은 나에게서 남편만을 빼앗은 게 아니라 어린 두 아이들에게서 아빠란 존재도 빼앗은 것이다. 당신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아빠 없는 아이들로 자랄 것이고 난 이혼녀가 될 것이다. 평생 죄책감 가지며 살아라.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내가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에서 편견 어린 시선으로 고통을 받을 때마다 난 당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할 것이다. 평생 저주하며 살 테다.라고 답 문하진 않았지만 그때까지 나의 그런 생각은 확고하였다.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길 바랐다. 하지만 여직원을 만난 나는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그 여직원과 상간녀는 상황이 달랐지만, 내가 이혼한다고 해서 평생 죄책감을 가질 것 같지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 여자에게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복수를 할 수 있을까. 그건 어쩌면 내가 가려던 길과 정 반대의 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직원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내내 그 여직원의 말을 곱씹었다.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꼴을 보니 화딱지가 나서 미칠 것 같아요.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아요.’


내가 바라던 거였다. 분노이든 패배감이든 후회이든 상간녀인 그 여자가 평생 지우질 못할 감정을 갖고 살길 간절히 바랐다. 어떤 복수를 해줄까 고민하며 힘든 소송 기간을 버텨냈던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5. 공소시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