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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키옥 Nov 13. 2020

7. 명예훼손

상간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낯선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받지 않았을 텐데 왠지 모를 느낌에 그 전화는 꼭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전화기 너머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하지만 00 씨 되시나요?”


“네. 누구시죠?”


“전 000 씨 남자 친구입니다. 아니, 결혼을 앞두고 있는 000이라고 합니다.”


 아뿔싸. 상간녀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니 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남자 친구란 말에서 굳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며 강조하다니. 그 남자의 다짐이 느껴졌다.

내가 아무 말 않자 그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요 근래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무슨 큰일이 생긴 것 같았는데 물어봐도 아무 말 없고 답답한 마음에 휴대전화를 몰래 보았다는 것이다. 거기서 나와 주고받은 내용을 보게 되었고 이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나에게 연락하는 것은 자신의 여자 친구는 절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였다. 복수를 꿈꾸면서 결혼을 앞둔 그 사람에게 폭로를 해볼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이렇게 빨리 알게 되리란 건 상상조차 못 했다. 그는 아무런 잘못은 없었지만 난 적대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요?”


“금전적인 보상이든 뭐든 원하시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제발 소송만 취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쪽이 상관할 바 아닙니다.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계속 울리는 전화에도 받지 않았다. 그 남자는 그 뒤로도 몇 번 장문의 문자를 보내며 자신이 무엇이든 대신하겠다며 소송만은 취하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자신의 죄도 아닌데 자신이 지은 죄처럼 읊조렸다. 정작 나에게 잘못을 한 상간녀는 단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 여자는 복도 많지. 자신의 과오를 다 알면서도 헤어지기는커녕 대신 사죄하는 애인이라니. 아무리 남자 친구라고 해도 금전적인 보상을 대신하겠다니 꼭 나를 속물 취급하는 것만 같아 화가 났다.  


“뭐라고요?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요? 제삼자에게 누설을 했는데도요?”


변호사를 찾아가 상간녀를 상대로 명예훼손죄로 추가 고발할 수 있는지를 물었으나 그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남자 친구의 경우 그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외부로 발설할 일이 현저하게 낮기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속적이며 일방적인 연락으로 내가 피해를 보았는데도 말이다. 반대로 내가 상간녀의 회사 사람이나 지인들에게 그 사실을 누설 시 나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법이란 것이 누굴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 여자로 인해 나의 삶은 처참히 짓밟히고 망가졌는데 그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주변에서는 그 여자를 좋은 직장 동료, 착한 언니, 동생, 좋은 친구로 알고 지내겠지. 가정 있는 남자와 그렇고 그런 몹쓸 짓을 저지른 사람이란 걸 아무도 모를 테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더욱더 소송은 취하해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소송을 준비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상간녀의 남자 친구가 아니더라도 소송을 취하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변호사를 만나 상담을 하는 것부터가 자존심 상하고 힘든 일이었다. 그들은 최대한 사무적으로 때론 나를 이해한다는 심정으로 따뜻하게 상담을 해주었지만,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다 나는 울기만 했다. 내가 이런 일로 변호사를 만나고 상담을 할 줄은 정말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었다. 승소할지도 모르는 희박한 승률에 변호사 비용까지... 모든 것이 부담이고 짐이었다. 겨우 소송하기로 마음먹은 후에도 소송을 위한 증거자료를 모으면서 이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남편과 그 여자의 일들을 눈으로 직접 본다는 건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처음 남편에게 사실을 들은 날로 돌아간 것처럼 계속 되돌이되었다. 놀람, 슬픔, 분노, 배신, 패배감, 무기력함...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나쁜 감정들이 하루에도 몇십 번씩 왔다 갔다 하며 소용돌이칠 때마다 소송을 끝내고 싶었다.


지속적인 무기력함과 우울감, 불면증에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었고 의사 선생님께서도 굳이 소송까지 해야겠냐고 하셨다. 최대한 그 일에서 내가 빨리 벗어나는 것이 회복에 더 좋을 것이라고 하셨다. 소송을 하면서 다시 마주하게 될 사실들과 그로 인해 걸리는 시간 동안 마치 상처 난 곳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아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덧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데로 모든 것을 해야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소송을 취하했다면 더 큰 후회로 남았을 것 같다. 승소를 하고 판결문을 받았을 때의 그 쾌감... 정말 십 년 묵은 체증이 한 번에 내려가는 것 같은 그 시원한 느낌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혹시 지금 그때의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배우자들이 상간녀 혹은 상간남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면 난 분명하게 말해주고 싶다. 외도를 저지른 배우자와 이혼을 하든 나와 같이 다시 잘 살아보기로 하든 그 어떠한 결정을 하든 간에 상간녀, 상간남을 상대로 한 소송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이다.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변호사 말을 듣고는 처음에는 화가 났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이로울 수 있는 법이었다. 판결문을 가지고 내가 상간녀의 부모나 형제, 나중에 결혼하게 될 남자와 시부모에게 까지 알려도 법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이 자신의 딸의 자신의 아내의 자신의 며느리의 치부를 외부로 발설할 일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의 팁을 더 주자면 회사의 직속 상사나 인사과에 얘기하는 것도 명예훼손 대상에 포함돼지 않는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이 내겐 아주 커다란 무기가 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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