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나는 키보드 한 대를 구입했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것은 휴대용으로 쓰기로 용도를 정하고 새로 산 제품은 오롯이 직장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구입을 결정했다.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해서 이미 쓰는 것보다 조금 더 좋은 사양의 것을 구입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키보드의 가장 큰 장점인 페어링이 점점 느려지더니 결국 아무것도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샀던 터라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이 컸다. 이 분야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큰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문의 전화를 걸면서 여러 가지 불편이 느껴졌다. 홈페이지에 제대로 된 전화번호가 없었고, 각 지역별로 있다는 서비스 접수 센터 위치 및 정보도 찾기 어려웠다(사이트맵을 몇 번을 들락날락거렸는지 모른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조치법을 듣고 시험해보았으나 매뉴얼대로 해도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두 달여 만에 새로 장만한 키보드는 자리만 차지하는 쓸모없는 제품이 되어버렸다. 팔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어서 곤란하다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우리 지역 서비스센터에 교환 접수를 맡겼다. 보증 기간(구입 후 1년)이 남아있으면 대부분 바로 새 제품이랑 교환해준다는 지식인의 글을 보고 용기를 내서 서비스센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너무 야속하고 억울하게도 접수 직원의 컴퓨터와 핸드폰에서는 페어링이 잘 된다고 하는 것이다. 오기 전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확인하고 배터리도 바꿔보고 나름대로 테스트를 하고 왔는데 말이다.
처음 이 키보드를 샀을 때도 분명 구입 초기에는 속도나 연결에 문제가 없다가 점점 그 증상이 심해졌기 때문에 이상이 없다는 직원의 말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나의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고(딱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눈치였지만) 제품을 더 자세히 봐줄 것을 부탁했다. 2~3일 정도 후에 새 제품을 받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하며 직원이 건네준 접수증을 들고 돌아왔다.
이틀 뒤에 키보드를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고 나는 새 제품을 기대하고 센터에 도착했지만 별다른 이상증세를 찾을 수 없어 본사에 교환 신청을 할 수 없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 핸드폰에 설치되었던 키보드 설정을 지우고 다시 설정하는 과정을 거치니 얄밉게도 바로! 정말 즉시 연결이 되는 기적 같은 장면을 보았다. 분명 몇 달 전에 내가 했을 때는 잘 안되더니... 아 정말이지 황당했다.
다시 내게 돌아온 키보드를 안고 돌아오며 그런 생각을 해봤다. 이 녀석도 사람처럼 슬럼프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우스갯소리로 말하듯 어떤 주인장을 만나느냐에 따라 이 녀석도 태도를 바꾸는 것일까?
무생물로 취급하며 언제나 같은 결과값을 내놓기 때문에 신뢰를 주는 기계를 의인화시키는 것 외에는 이번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이 글을 정리하고 있다. 물론 키보드는 이제 아주 잘된다. 컴퓨터와 연결만 잘되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녀석으로 다시 인정받을 분위기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