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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각 Jan 25. 2021

억양이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뉴욕의 디자인 스쿨에서 배운 것들 – 2화 –

내가 다니던 뉴욕의 디자인 스쿨에는 한국 학생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처럼 한국에서 태어나 큰 결심을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온 학생들도 많았다.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착실하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수들은 한국 학생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교수들이 한국 학생들에 대해 종종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은 바로 그들의 수줍음이었다.


싸잡아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한국 학생들은 대체로 부끄러움이 많았다. 수업 시간에 대부분 조용했고 교수가 발표 기회를 주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는 경우도 많았다. 발표와 토론보다는 시험을 중시하는 한국의 학업 분위기뿐만 아니라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도 한국 학생들에게는 큰 장애물이었다. 남미 혹은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엉터리 영어를 쓰면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 학생들은 꽤나 소심했다. 특히 한국 학생들은 영어 발음이 엉성하면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 토박이로 근 삼십 년 가까이 한국에서만 살아온 나의 영어 실력도 좋을 리가 없었다. 어학연수는커녕 영어 유치원 조차 가 본 적이 없는 나의 영어 발음은 순 한국인 발음 그 자체였다. 다른 한국 학생들만큼이나 나도 영어를 하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교수들, 동료 학생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소통하고 싶었지만 온전한 대화가 불가능한 교실 안에서는 온몸이 결박되어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다만 나에게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한국에서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내 꿈을 실현해보겠다며 기합이 잔뜩 들어간 채로 뉴욕에 왔는데, 여기서 실패하면 돌아갈 곳이 없다는 각오를 매일 되뇌며 수업에 임했다. 같은 학년 동기들보다 열 살쯤 나이가 많았기에 나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나는 여전히 어렸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 위축되지 않기 위해 매 수업 시간마다 최소한 한 가지 질문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때로는 교수의 대답이 너무 길어져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질문을 하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답을 듣고 이해하는 것은 둘째 문제였다. 급하면 고개를 드는 나의 ‘에라 모르겠다’ 근성과 뻔뻔함이 큰 역할을 해주었다.


의외로 교수와 학생들은 나의 말을 잘 이해해 주었다. 특히 대부분의 교수들은 참을성 있게 내 질문이나 이야기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학생들도 대부분 내 영어 발음보다는 내가 하는 말의 의미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면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었다. 수업 시간 이외에도 내 딴에는 절박하게 영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나의 영어 실력은 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영어를 딱히 못하는 편도 아니었다. 입장을 바꾸어 한국의 대학 수업에 들어와 있는 브라질 학생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간다. 그 학생에게 한국 교수나 학생들이 유창한 한국어를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의사소통이 되면 ‘우와, 이 친구 한국어 잘하네’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언젠가 좀 더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영어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좋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상대방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도 여전히 남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에 내가 영어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나 말고는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던 한국과 미국 친구들 가운데 내 영어를 기억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알몸으로 홀딱 벗고 교실에서 영어로 난동을 피웠다면 누군가 희미하게나마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들 알다시피 타인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한국에서는 미국식 영어 발음을 구사하는 것이 영어를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한국을 방문해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친구들이 미국 물먹더니 발음에서 버터 냄새가 난다며 가끔 놀린다. 그런 말을 들으면 민망하지만 웃으며 ‘요 맨, 와썹!’ 정도로 대답해주는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소위 말해 영어 발음이 ‘구리다’ 혹은 ‘좋다’는 식의 평가와 희화화가 종종 이루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그 생각이 유효하지 않다. 뉴욕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은 그야말로 ‘인종의 용광로’ 같아서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제각각 ‘구린’ 발음의 영어를 구사한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등 유럽은 물론 나이지리아, 필리핀, 브라질, 인도, 사우디 아라비아, 한국, 중국 등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억양으로 서로 대화한다. ‘발음이 구리다’는 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만일 누군가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식 영어를 이상적 영어 발음으로 상정하고 그렇지 않은 발음을 ‘구린’ 것으로 평가한다면, 그 생각이야말로 그 사람의 폐쇄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음의 일화는 미국 사람들이 영어 억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이다.



얼마 전 버펄로 치즈 buffalo cheese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던 나는 옆에 있던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 버`펄로 치즈 어딨니?”


직원은 내가 무슨 치즈를 찾는지 못 알아듣고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되물었다.


“버`펄로 치즈 말이야. 도시 이름이랑 같은 거 말이야. (실제 버펄로라는 도시가 있다.)”


그는 그제야 ‘아하’ 하면서 내 말을 알아듣더니 치즈를 찾으러 갔다. 그를 기다리던 나는 순간 버펄로라는 단어는 ‘버’에 엑센트가 들어간 ‘`버펄로’라고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못 알아들을 만도 했다.


“생각해보니까 버`펄로 가 아니라 `버펄로라고 했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 말했구나. 방금 깨달았어.”


그가 치즈를 찾아 돌아왔을 때 나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그의 말이 걸작이었다.


“괜찮아, 전혀 문제없어. 나는 너처럼 발음하진 않지만 이건 단지 내 억양일 뿐이고, 너는 네 억양대로 말하면 되는 거야. 맞고 틀린 건 없어!”



십 년을 미국에 살았어도 나는 아직 멀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근 극우파들의 난동으로 의미가 꽤나 퇴색되긴 했지만, 미국 사람들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면 배우고 싶다는 존경심이 든다. 공자 말씀에,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중에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던가. 나보다 스무 살은 어려 보이는 슈퍼마켓 신입 알바생이었지만, 그가 내 스승 같았다.


지금 당신이 유학을 준비 중이거나 영어 혹은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데 자신감이 없다면 꼭 한 가지를 기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영어 발음, 아무 문제없다. 부끄러움이 문제일 뿐이다. 한국 사람의 영어 발음을 가장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어쩌면 주변의 다른 한국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영어가 절박하게 필요했던 이유에 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해 주세요:

너무너무 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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