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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성 Feb 21. 2022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이 책에 대한 나의 단상을 기술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담이다. 샌델은 한국 사회에서 철학과 지성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책뿐 아니라 샌델은 한국을 최소 두 번이나(내가 아는 것은 두 번이다) 방문할 만큼 그의 인기는 실로 대단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샌델의 사상을(이 책에 한해서) 싫어한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 공동체주의 역시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의 화법도 싫다. 

나는 크게 두 지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비판할 것이다. 하나는 그의 철학의 형식 혹은 화법이다. 다른 하나는 그의 사상이다. 샌델이 말하는 방법의 핵심은 모호성이다. 그는 분명하게 혹은 선명하게 자신의 사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아, 정의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렵다. 많은 문제와 예시를 던지고는 있지만 정작 공허하게 본질에 맴돌이만 한다. 나는 자기 사상이 분명한 학자가 좋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학자들은 자기 철학이 분명하고 그 선명성을 바탕으로 자기 철학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투쟁했던 자들이다. 키에르케고르가 그러했고 헤겔도 막스도 그러했다. 더 올라가면 소크라테스도 그렇다. 그래서 난 그들을 너무나 사랑한다. 한 인간이 자기의 사상으로 삶 속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에서 존재자의 위대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샌델은 아니다. 그의 화법은 언제나 논란을 피해 간다. 이러한 그의 화법을 칭송하는 학자도 있다. 그의 화법이 똘레랑스(관용)적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다. 뭐 그것도 자기 생각이니 인정은 한다만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것은 샌델의 사상이 반관용적이기 때문이다. 형식논리가 관용적이고 참여적인데 내용이 불관용적이고 비참여적이라면 그 형식논리는 똘레랑스가 아닌 모호함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모호한 사상가의 사상의 구체적 내용이 뭘까?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크게 세 축으로 기술되어 있다. 세 축은 덕, 자유, 공리다. 그리고 샌델이 정의에 부여하는 가치는 덕이다. 샌델이 말하는 덕은 그리스어의 아레테(arete)다. 샌델이 말하는 덕은 목적성의 덕이다. 사회 공동체의 목적성이 가지는 목적성이 잘 돌아가는 일종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주의라는 개념을 샌델은 말하고 있다. 샌델이 비판하는 지점은 왜 약자를 돌보아야 하느냐이다. 대학이 대학으로서 잘 돌아가려면(아레테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며 이것이 샌델이 말하는 덕이다) 대학에 학문적 우수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돈 많고 실력이 있는 사람만 하버드대학에 입학해야 한다. 그런데 왜 소수자 우대 정책이나 복지 따위 (소수자 우대 정책, 인종 커터제, 한국으로 치면 농어촌 입시 전용) 따위를 해서 대학을 망치냐는 것이다.

가난하고 못 배웠으면 평생 그렇게 살면 되지 왜 배움의 기회를 얻길 원하냐고 그는 말한다. 한 예로 장애인 치어리더 이야기가 있다. 장애인이 치어리딩을 하는 것이 문제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가 말하는 덕은 그런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덕은 그런 것이다. 그는 공동체를 기능주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말한다. 그리고 이 기능주의는 철저히 엘리트주의에 입각한 사고 체계이다. 

그는 하버드의 엘리트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이제 인종 커터 제도 없어요. 흑인은 이제 하버드대에 없습니다. 그들과 같이 학교 다녀서 싫으셨죠. 이제 걱정 마세요. 그 넘들 이제는 못 들어와요. 그리고 엘리트인 그대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지도자가 되어서 저들을 지배하세요. 그게 덕입니다" 

샌델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연고의 자아"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샌델의 연고의 자아 개념은 인간은 탈연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그의 공동체주의다. 이런 개념에서 사유할 때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는 반공동체적 존재가 된다. 그는 분명 민주당 지지자이지만 그의 사상은 철저한 미국 중심주의이며 반똘레랑스다. 그런 그의 책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엄청나게 판매되고 또 최고의 교양서인 양 소비되고 있다. 그래서 참 화가 난다. 

샌델 이전 롤스의 "무연고의 자아"를 사랑하고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상과 칸트의 세계시민의식을 사랑하는 나로선 이 열풍이 거북하기 그지없다. 하버드라는 명성에 기죽지 말고 그의 책을 비판적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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