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꾼 책 그러나...
처음 최진석 철학자님을 알게 된 것은 약 2, 3년 전 우연히 한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였다. 아마 예과 2학년쯤이었을 것이다. 한 언론사의 유튜브 인터뷰 영상에서 그분은 현 대한민국의 세태에 대해 차분한 어조로 날카로운 비판을 날리고 계셨다. 작금 대한민국이 정체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 산업화 -> 민주화'의 순서대로 나라를 상승시켜 왔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의 비전을 찾지 못한 대한민국의 정치권에 의해 한국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유튜브 영상을 처음 봤을 때는 별다른 감흥 없이 흘려 들었었다.
이후 인생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유년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인생을 갈아 넣었다. 그 결과 대학 입시에서 동년배가 이룩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성과를 이뤄내었다. 하지만 대학 입학 후 내 인생은 끊임없는 좌절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신입생의 책임 없는 자유와 행복을 맘껏 누린 것은 맞았다. 예과생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으로 만끽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겼다. 누가 보아도 부러운 삶이었다. 하지만 나의 내면의 상황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서울대 치의학과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한 노력은 낮은 자존감, 불안정한 정신 상태 등 피폐한 내면을 남겨 주었다. 본과에 진입하면 다시 시작될 불행과 고통의 인생이 너무도 두려웠다.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여러 도전들도 나를 고통의 수렁에 빠뜨렸다. 공부만 하며 살아오며 자신이 대단한 거 마냥 믿고 있던 나에게 대학 이후의 도전들은 내가 얼마나 온실 속 화초였는지 여실히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누구보다도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많은 분야에서 무능한 사람이었다. 운이 좋게도 대한민국의 교육 입시형 문제 풀이에 재능이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와 함께 내 정신 건강은 더더욱 피폐해져 갔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순전한 우연이었다. 당시는 코로나가 극성이던 시기였다.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해서 몇 주간의 자가격리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자가격리 동안 너무 심심해서 당시 구독 중이던 밀리의 서재를 뒤적이고 있었다. 밀리의 서재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때까지의 나의 세계관, 사고관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의 개념을 바꾸어버렸다. '장자'를 읽고 감명을 받은 사람은 흔히 장자처럼 살아보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큰 철학자들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닮기 위해서 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시선으로 자기처럼만 산 사람들이다. 노자도 공자도 칸트도 헤겔도 모두 '자기처럼' 산 사람들일 뿐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으로 세계에 철학적으로 접근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저자는 조선의 많은 철학자들이 사실 철학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대부분 주희(주자)를 닮으려고 안달인 사람이었으며 조선의 종속성은 이와 같은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철학자처럼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위대한 철학자가 남긴 이론을 습득하고 암기하는 일이 아니다. 그 철학자가 철학적 사유를 할 때 이용한 높이의 시선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공부할 때 도덕경의 내용을 진리처럼 받드는 것은 잘못 공부하는 것이다. 노자가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무슨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세계를 그와 같은 시선으로 마주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철학이 국가 발전의 기초다'
저자가 중국의 어느 도사에게 들은 말이다. 한국에서는 철학이 국가 발전의 기초라고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과 사뭇 대조적인 풍경이다. 적어도 아직까지 한 번도 철학과 국가 발전을 연결시킨 언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철학과 국가 발전이 어떻게 관련되는지 책의 앞부분에서 중국의 근대사를 소개하며 설명한다. 1840년에 발발한 아편전쟁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완전 승리'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1840년에 시작된 1차 아편전쟁에서 1860년에 끝난 2차 아편전쟁은 서양의 완전 승리와 중국의 완전 패배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후 중국은 어떻게 서양을 이겨서 실추된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할 것인가에 온 역량을 집중한다. 아편 전쟁이 끝나자마자 중국에서는 '오랑캐들의 좋은 기술을 배워서 오랑캐들을 제압하자'는 구호를 내세우며 '양무운동'을 일으킨다. 왜 서양에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가. 가장 구체적으로 먼저 떠오른 것이 대포와 군함이었다. 그래서 중국은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을 따라잡기 위해 30년 동안 양무운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양무운동은 큰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에서 청나라의 강력한 북양 함대가 참패한 것이다 이에 중국인들은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을 가능하게 해주는 더 큰 힘이 그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배후의 그 힘은 무엇인가? 바로 정치제도이다. 이때부터 중국인들은 과학기술을 넘어 서양의 제도를 배우려는 노력에 집중하며 1898년부터 '변법자강운동'을 일으킨다. 과거 시험이 폐지되고 학교가 설립되었다. 서양의 힘으로 인식한 입헌제도와 대의제도를 추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존 기득권의 반발로 변법운동은 103일 만에 끝이 나며 단기간에 실패한다. 하지만 그 실패에 머무르지 않고 제도 너머의 더 심층적인 힘을 찾는데 주력한다. 중국인들은 그것을 문화, 윤리, 사상, 철학으로 보았다. 새로운 문화, 사상, 철학을 가져야만 건강한 정치 제도가 가능하고, 건강한 정치 제도가 가능해야 과학 기술 문명이 발전하게 된다고 본 것이다. 1917년 시작된 신문화운동은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건립으로 결실을 맺는다. 중국인들은 혁명을 통해 세운 새로운 이 나라를 스스로 '신중국'이라고 부른다. 신중국은 결국 철학적인 혁명이었다. 중국의 중심 철학이 유교에서 서양의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이동한 것이다.
중국은 아편 전쟁 이후 서양에게 당한 굴욕을 회복, 보복, 극복하기 위해 철저하게 민족적 상황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 상황에 맞는 도전들을 꾸준히 추진하였다. 그리고 그 개혁의 최종적인 선택은 문화, 사상, 철학이었다.
왜 한국에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으며, 왜 한국은 정체를 겪고 있는가. 그것은 한국이 중진국 패러다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수준은 보통 후진국, 중진국 그리고 선진국으로 나눈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서는 난이도가 '5' 정도 된다면,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난이도는 '5만' 정도다. 왜 그런가. 중진국 수준까지는 선진국에서 열어놓은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중진국까지의 수준은 있는 길을 가는 단계인 것이다. 선진국이 이미 열어 놓은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중진국 상위 수준에 도달한 이후 더 높은 단계로 상승하지 못하고 거기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거의 모든 분야가 선진국 수준으로 진입하느냐 진입하지 못하느냐 하는 경계선에 있다.
우리나라가 1945년에 해방을 맞았을 때 가장 시급한 최고의 국가적 목표는 건국(정부수립)이었다. 허용된 제반 조건들과 투쟁하고 소화하면서 대한민국은 건국(정부수립)이라는 목표를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가장 중요한 일은 빈 창고를 채우는 일이었다. 당시의 현실적 상황에서 독립국가로서 물적 토대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국가적 비전이 세워진 것이다. 바로 산업화이다. 농촌이 도시로 바뀌고, 농업이 공업으로 이행되면서 산업화가 추진된다. 수없이 많은 소음과 소란이 있었지만 당시의 시대적 요구와 부합하는 것이었고 우리는 산업화를 이뤄냈다.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계급의 대체 현상이 나타난다.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농촌 경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던 계급이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공업경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계급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정치적 조정이 있었고 그것이 민주화이다.
건국, 산업화, 민주화
우리나라는 그때그때에 맞는 이상을 잘 설정하고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비교적 잘 완수하고 발전해 왔다. 건국에서부터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현실의 조건과 국가 목표가 일치하면서 전진해 온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누가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정체가 시작되었다. 나라를 끌고 갈 꿈과 이상이 설정되지 못했거나 설령 설정되었다고 해도 현실적인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건국-산업화-민주화 그다음 단계의 목표 설정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화 다음 단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바로 선진화이다. 문화적이고 철학적이며 예술적인 차원의 시선이 주도권을 발휘하는 단계 말이다. 그러나 선진화는 목표 자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어렵다. 누군가를 설득하기도 힘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 이런 연유로 민주화 이후의 벽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이 사회 갈등과 혼란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심지어는 건국 세력까지 뒤엉켜 있는 형국이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이미 낡은 건국, 산업화, 민주화의 틀을 벗어나 선진화라는 새로운 목표를 구축하고 이 시대를 건너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노자가 말했듯 '공을 이루었으면 그것을 차고앉아 거기에 머물려하지 마라(功成而不居)'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철학적인 단계로 진입하지 못한 단계에서는 이미 나와 있는 것들을 습득해 따라 한다고. 그렇다면 철학적인 높이로 상승한 단계의 사람들은 어떠할까? 바로 전면적인 부정을 이야기한다. 전면적인 부정이 새로운 생성을 기약한다. 새로운 생성은 전략적인 높이에서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자신이 직접 그 길을 여는 일이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고 온몸에 전율을 느끼는 듯했다. 내 인생이 왜 정체되고 발전하지 못하는지. 우울증, 불안 장애에 시달리며 왜 도리어 퇴행한다고 느끼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까지 지탱하고 견인해 온 나의 철학이 효력을 다한 것이다. 내가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다할 수 있고, 무엇을 하든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나의 삶의 시선이 이제 종말을 고할 때가 된 것이다. 철학이 시대의 아들이듯, 개인이 가진 비전과 가치관도 인생의 변화에 맞춰 새로이 세워져야 한다. 나는 이미 인생을 바쳐 서울대 치대에 입학했다.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 더 나아가서 꽤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최소한 그 능력을 입증해낸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보자면 산업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다음을 준비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나의 근본적인 철학의 변화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다. 운동, 교환학생, 언어 공부 등 기술적인 차원의 노력으로는 그 옛날의 중국처럼 본질적인 변화를 꾀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부정해야 새로운 삶이 생성될 수 있다. 새로운 성공적인 인생을 건설할 수 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내 인생의 주요 변곡점 중의 하나이다. 철학적 시선의 높이로 보자면 나의 인생은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탁월한 성공을 거두었던 나는 전면적으로 나를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다. 나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시대와 삶이 요구하는 정신에 맞춰 나의 생각을 개발하고 변화시킬 수 있었다.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생존'의 방식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른 글을 통해 써볼 예정이다.
하지만 이 책의 가독성에는 높은 평가를 주기는 어렵다. 날카로운 통찰력이 담긴 메시지에 비해 이 책은 읽기 편안하지 않다. 도리어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순간부터는 끔찍한 동어 반복의 연속이다. 중간중간 왜 굳이 이 이야기까지 써서 독서의 흐름을 방해할까라는 아쉬움마저 든다. 100점짜리 메시지이나, 가독성은 매우 아쉽다.. 인문대생 친구가 과제를 제출할 때 한 문장으로 설명할 내용을 2~3 문장으로 늘려서 쓰는 것을 읽는 기분이었다. 흐름성이 더 좋게 책을 구성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야기꾼은 아니신 걸로... 1/3 정도만 읽으면 이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도 내 인생 책임에는 변함이 없다. 방황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