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기 큰 위로가 되었던 영화
스포주의!!
이 영화를 읽어내는 데에는 여러 방식이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함축하고 있는,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는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감상은 의미 없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현대인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영화가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습과 수업으로 많이 힘들어하던, 특히 몸관리를 하지 못해 점점 더 악화되는 나의 몸 상태로 인해 더 고통스럽고 괴로워하던 때에 우연히 접하게 되어 많은 위로를 받은 영화이다.
이 영화를 거의 7번은 본 것 같다. 이 영화를 볼 당시 나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본과 실습 생활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실습 과정은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고 손재주는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망가진 나의 몸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무릎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릎이 나아질 만하면 과격한 운동으로 망가뜨렸다. 변명을 하자면 내가 원래 가지고 있는 발달 장애(disorder)로 인해 운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발은 이따금 다시 급격히 아파왔다. 걸을 때마다 악화되는 무릎은 걷는 것조차 두렵게 만들었다. 너무 과거가 그리웠다. 정확히는 내가 부상을 제때 관리했다면 겪지 않았을 이 최악의 상황을 원망했다. 힘듦에 힘듦이 겹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 버거웠다. 실습실에서는 숨이 막혀오는 듯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에블린(양자경)은 여러 다중 우주의 에블린 중에 가장 최악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루지 못한 꿈이 너무도 많다. 아직 펼치지 못한 가능성을 그냥 흘려보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남편을 만나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그 미국에서 운영하는 세탁소는 망해가고 있다. 하나뿐인 딸 조이는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을뿐더러 동성 애인과 연애 중이다. 에블린의 입장에서 딸의 동성연애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조부 투바키와 알파 우주의 전쟁에 연루되어 큰 곤혹과 사건들을 겪는다. 조부 투바키, 알파 우주의 조이는 알파 우주의 에블린에 의해 과한 훈련을 받고 모든 다중 우주와 정신이 연결된 괴물이다. 초자연적인 힘을 구사할 수 있으며, 모든 다중 우주를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다. 조부 투바키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것이 덧없다는 부정적 허무주의이다. 모든 가능성을 겪어 보았기에 모든 것이 덧없음을 인식하고 극심한 허무주의에 빠진다. 극심한 허무주의에 빠진 조부 투바키의 선택은 자신과 함께 모든 것을 담은 베이글 속으로 사라질 수 있는 동료, 즉 에블린을 구하는 것이었다.
영화 중후반에 조부 투바키에 의해 에블린 또한 모든 다중 우주에 연결된다. 에블린 또한 극심한 허무주의에 빠진다. 세금 처리를 해야 했던 우주에서는 디어드리에게 폭언을 날리고 세탁소의 신년 파티장을 망친다. 요리사의 우주에서는 라따구리를 고발한다. 배우로서 성공한 우주에서는 전 애인에게 잔인하게 키스를 날린다. 손이 핫도그인 우주에서는 애인 디어드리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늘 한심하다고만 여긴 에블린의 남편이 세금 처리를 해야 했던 우주에서 일을 현명하게 처리한 것이다. 국세청 직원인 디어드리는 경비원을 데리고 세탁소를 압수하러 온다. 에블린은 체포된다. 그리고 세탁소는 초유의 위기를 맞는다. 남편은 디어드리와 대화를 한다. 에블린은 내 한심한 남편이 또 일을 망치고 있을 거라며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디어드리는 한숨을 쉬면서 일주일의 시간을 더 주겠다고 한다.
에블린이 말한다.
"어떻게? 불가능해?"
조부 투바키는 말한다.
"통계적 필연성일 뿐이야"
어리둥절해하는 에블린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나도 몰라. 그냥 얘기만 했어.
그리고 감정을 억누르면 휘파람을 불며 에블린이 어지럽힌 세탁소를 청소한다.
에블린이 디어드리에게 물어본다.
내 한심한 남편이 뭐라고 했길래요?
디어드리가 대답한다.
당신의 상황을 말해주더군요. 남편에게 이혼 신청서를 받았을 때가 떠올랐어요.
남편의 기아 포르테로 옆집 부엌으로 돌진했죠.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던 상황을 해결한 것은 공감과 대화였다. 따뜻함이었다.
다른 우주에서 결국 결혼하지 못하고 서로 성공한 채로 만나는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나약하다 생각하지? 옛날에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아버님은 내가 순진해 빠졌다고 하셨어. 그 말씀이 맞았는지도 몰라. 당신이 그랬지 세상은 잔인하고 우린 쳇바퀴 돌듯 살 뿐이라고. 나도 알아. 나도 당신만큼 살 만큼 살았어. 내가 늘 세상을 밝게만 보는 건 순진해서가 아니야. 전략적으로도 필요하기 때문이지. 난 그런 방법으로 살아남았어. 당신은 자신을 투사로 여기잖아. 나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 이게 내가 싸우는 방식이야.
세상을 밝게만 보는 것은 순진해서가 아니다. 난 그런 방법으로 살아남았다. 이것이 내가 싸우는 방식이다. 이 대목에서 거의 울 뻔했다. 나는 울음이 정말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울먹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때로 내가 너무 순진하고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 나름대로 이 삶이라는 고통과 투쟁하는 나의 방식인 것이다. 그 투쟁의 방식은 세상을 밝게 보고 다정함을 무기로 삼는 것.
조부 투바키와 그의 추종자들과 에블린이 싸우기 직전의 우주에서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제발요! 제발! 우리... 그만 싸우면 안 될까요. 다들 무섭고 혼란스러워서 싸우려는 거 알아요. 나도 혼란스러워요. 하루 종일...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왠지... 다 내 잘못 같아요.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거라곤 다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제발 다정함을 보여줘.
이에 에블린은 과거를 회상하며 다정했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앞으로 돌아와서 성공한 남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이 또다시 내게 상처를 준대도 이 말은 하고 싶어. 다른 생에선... 당신과 함께 빨래방도 하고 세금도 내며 살고 싶어.
허무주의를 느끼고 모든 것을 부정하고 회의주의에 빠질 뻔한 에블린은 여러 다중우주에서 각기 다르게 살아가는 남편의 다정함을 느낀다. 그리고 허무주의를 극복해 낸다. 그는 조부 투바키의 허무주의를 택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취한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허무주의를 상징하는 베이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베이글을 향해 걸어가는 조이를 막기 위해 에블린은 조이를 뒤쫓는다. 나아가는 에블린은 그 길을 막는 조이의 추종자들을 각자의 사랑스러운 면을 강조해 주며 그들을 감화시킨다. 그리고 결국 조부 투바키를 구출한다. 다른 우주에서는 조이와 화해를 한다.
디어드리에게 에블린이 한 말로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사랑스러운 점들은 언제나 있어요. 손가락이 핫도그인 황당한 우주에서도 발을 능숙하게 잘 쓰게 돼요.
어떤 인생을 살아가든 아쉬움은 남는다. 중요한 것은 이 인생을 어떻게 투쟁하며 오늘을 살아가느냐에 대한 것이다. 힘든 일이 있고 삶이 나를 배신하더라도 나에게 남아있는 사랑스러운 점들에 집중하며 '의미 없는' 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평점 : ★★★★☆
정말 오랜만에 가슴에 큰 울림을 준 인생 영화, 마지막 하나 뺀 별 반개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영화 자체는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