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읽어야 하는 이유: 성경을 펼치고 첫 글자를 읽는 순간 머리 위에 말씀의 검이 나타난다. 머리 위에 원을 그리고 빛을 발하며 돌기 때문에 원수의 영이 근접하지 못한다. 말씀이 화염검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읽으며 잡생각을 하면 검의 회전이 느려진다. 말씀을 읽을 때는 온 정신을 집중하여 오직 온 마음과 뜻과 성품을 하나로 묶어서 영의 입으로 삼키도록 하라. 그러면 말씀이 두루마리가 되어 그대의 영의 입으로 들어간다. 그대의 입에는 그 맛이 송이꿀같이 다나 묵상하여 소화한 후에 실천할 때 배에서는 그 맛이 쓰리니라.(말씀 실천에는 희생과 수고가 따르기 때문) 묵상한 말씀은 양날의 잘 선 검이 되어서 언제든지 원수의 영을 선제공격할 수 있느니라. 원수의 심장을 처음 한 방으로 단번에 찌르지 않으면, 그대는 결코 그를 쫓아내지 못한다. 원수를 공격할 때 우유부단하거나 우물쭈물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대가 일단 선제공격을 하면 원수의 영은 그대를 피할 수밖에 없다. 이 싸움은 이미 내가 이긴 싸움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 검의 크기와 양날의 날카로움은 그대의 묵상 이후 실천하는 행동에 달려 있느니라. 또한 말씀 묵상을 통해 실천하는 행위는 하나하나 전사의 전통 안의 화살이 되어 쌓인다. 명궁의 화살은 죄악에 빠져 있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묶고 있는 사슬에 명중하여 죄악을 끊어주기도 한다. 그대가 말씀을 묵상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말은 듣는 자의 영혼을 향하여 화살을 쏘아 날리는 것과 같다. 그대 말씀을 듣는 많은 영혼의 죄악의 사슬이 그 화살로 말미암아 끊어지고 자유하는 일이 일어나리라.
교회: 내가(예수님) 피 값을 치르고 산 각 사람의 영혼 하나하나가 나의 성령의 전이다. 그 성령의 전인, 세상에서 구분되어 불러냄을 받은 자들이 모일 때, 이를 교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성전 된 영혼이 올리는 신령하고 진정한 삶 자체가 내게는 제사고 예배란다. 나는 천만인이 건축 자재 안에서 신령과 진정 없이 진행하는 예배보다 오히려 어둑한 들판에서 단 1명이 진정으로 울부짖는 통회자복을 원한다. 단 1명일지언정 신령으로 올리는 찬양의 노래를 원한다. 영의 세계는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제 목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단 1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오히려 내게는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성령에 순종하지도 않는 자들이, 내 말씀대로 살지도 않고 나를 떠난 자들이 죄의 연기 기둥 안에 누에고치처럼 싸여서 부르는 찬양은 그저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지나지 않으며 역겨운 악취만 풍길뿐이다. 그래서 내가 그 무리를 향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듣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선물: 누군가가 무엇을 주면 바로 받지 말고 반드시 내게 먼저 물어보아라. 주는 자가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선한 자인지,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아서 내가 받길 거부하는 악한 자인지 판단하여 알려주마. 아무리 내 나라를 위해 돕는 손길이라 할지라도 영을 잘 분별하지 않으면 아무런 덕을 끼치지 못한다. 돈은 원수의 영이 가장 흔히 쓰는, 사람을 변질시키는 무기이란다. 돈은 열려있는 과녁이다. 원수의 졸개들이 무작위로 쏘아대어 다치고 죽게 하는 그 과녁이란다.
영: 그대의 육신이 원하는 정반대로 영을 먹이면 된다. 그대의 육신이 싫어하는 결정을 하여라. 바로 그것이 그대의 영이 원하는 결정이다. 그대의 육신이 꺼리는 길로 가거라. 바로 그것이 그대의 영이 마땅히 가야만 하는 길이란다. 그대의 육신이 고단한 방법을 택해라. 바로 그것이 그대의 영이 취해야 할 방법이니라.
지구: 지구는 사람의 선택이 이루어지는 장소란다. 경건함과 사악함은 사람 자신의 결정에 달렸다. 그 둘은 사람이 태어난 후 스스로 선택한 행위의 열매이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스스로 한 선택의 결과 위에 서 있다. 결국 각자가 만들어낸 그 소산에 의해 영원히 거할 장소가 결정된다.
나는 사람을 네 가지는 천사를 닮게 만들고, 네 가지는 짐승을 닮게 창조했다. 천사에게는 말하는 능력, 분별하는 지능, 일어서서 걷는 능력, 눈의 시선(흘기는 눈, 사악한 눈, 사랑스러운 눈등의 감정을 실은 눈길을 뜻한다)이 있다. 나는 이 네 가지를 사람이 닮게 만들었다. 짐승은 먹고 마시고, 노폐물을 배설하고, 종족을 번식하고, 때가 되면 죽는다. 나는 이 네 가지를 사람이 닮게 만들었다. 천상의 존재는 번식하지 않으나 영원히 죽지 않는다. 반면에 지상의 존재는 번식하지만 죽는다. 나는 이 두 가지를 결합하려고 사람을 창조한 것이다. 즉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짐승같이 행동하니 죽음이 사람을 지배할 것이고 , 죄를 짓지 않으면 천사같이 행동하니 영원히 살 것이다.
믿음의 사람 각자에게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영의 세계의 보물이 있다. 물론 보물의 본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나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분의 왕국 확장을 위해 허락하신 보물은 각자 다르다. 모든 것을 팔아 밭의 값을 치르지 않은 자는 아직 보물을 사지 않은 자이다. 반대로 보물을 산 자는 삶 속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그 보물의 참 가치를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 보물을 지키기 위해 달음질도 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문서사역, 성경공부 리더, 구제사역 등등) 원수의 영은 이 보물을 빼앗기 위해 공격한다. 이 보물이 천국의 면류관이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을 다스리고 환경에 요동하지 않는 것이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한다. 주님의 신부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 원하는 것을 지우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이는 좁은 길이고 힘든 길이다. 빨리 가려고 서두르지 말거라. 천천히 한 발짝씩만 내디디면 된다. 그 누구도 보지 말고 마음에 두지 말거라. 영원을 향한 걸음이다. 내가 인도하는 길이다. 흔들리지 말거라. 경솔하고 망령되이 굴지 말거라. 이는 원수의 영이 기뻐하는 태도이다. 선한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하면 영의 얼굴이 아름다운 꽃과 같이 된단다. 주위 사람을 섬기고 품고 사랑하면 영의 자태가 단아한 달과 같이 된다. 내 신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내 모든 명령에 순종할 때 기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길 원한다. 세상 신이 다스리는 육의 세계에서 죄의 압제 아래 고통 중에 울부짖는 사람들을 데리고 영의 세계로 들어가거라. 그들에게 내가 다스리는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어라. 인생은 단 한 번이다. 신부는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런데 좁은 길은 아무나 가는 것이 아니다.
첫째, 사람이 먼저 좁은 길을 선택한다.
둘째, 하나님께 생명을 걸고 좁은 길을 간구한다.
셋째, 주님께서 그 영혼을 좁은 길에 합당한 지 저울에 달아보신다.
넷째, 좁은 길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에 합격하거나 미달한다.
다섯째, 하나님의 저울에 합격한 후에 좁은 길을 향한 서막이 오른다.
믿음이 모두의 것이 아닌 것처럼, 좁은 길도 모두의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영의 세계에서 먼저 일어나고, 후에 육의 세계로 도입된다. 이는 인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주위에 베풀고, 덮어주고, 감싸주어라
인색하지 말고 근면하며 물질을 뿌리지 말고 흩어 나누어라.
말씀은 제단에 제물의 피를 흩뿌리듯이 뿌리고,
재물의 떡을 떼듯이 흩어서 나누는 것이다.
내 믿음을 거스르지 말고, 사람의 모든 지식을 버려라.
사람의 모든 어쭙잖은 지식은
지옥불의 그을린 그림자에서 나와서
그 머리에 견고한 진이 되어, 나와 그들 사이를 막고 가린다.
그대는 나의 영으로 온전히 새로 빚어져야 한다.
이 땅의 것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말고 잊거라.
이 땅에서 마음에 가치를 두고 기억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좁은 길이야말로 인생이 갈 수 있는 최고의 길이란다.
사람의 지식으로 이해하고 생각하는 축복의 관념은 버려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내 왕국에서 장차 다스릴 자의 신분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빚어지는 과정이란다.
그날에 나와 함께 웃는 자가 이긴 자다.
이 땅에서 많이 낮아진 자가 많이 이긴 자다.
적게 낮아진 자는 적게 이긴 자다.
영의 세계는 완전한 세계이다.
내 나라의 모든 이긴 자에게는 계급이 있고, 계열과 반차가 있다.
많이 이긴 자는 많은 영토를 다스릴 것이고, 적게 이긴 자는 적은 영토를 다스릴 것이다.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의 기름은 성도의 마땅한 삶으로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 태워내는 행위에 들어가는 육신의 기름이다. 삶에서 흘리는 수많은 땀과 눈물이다.
육체의 소욕을 다스리고 심히 겸손하여라.
내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거라.
내가 계획한 만큼 낮아지면, 그대를 높여주마.
믿음은 사람이 깨달은 말씀을 육신으로 행할 때 완성된다.
결단코 삶의 뒤를 돌아보지 말거라. 협곡이 너무 가파르니 돌아보는 순간, 정신줄을 놓치고 미끄러질 것이다.
나와 합한 자는 나와 한 영이다. 나의 감정을 그대가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지나온 협곡을 그대도 가야 한다.
그대의 신분을 알고 그에 맞게 잘 처신하길 바란다.
다스리는 자답게 살거라.
군림하는 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열심히 훈련하여 세파가 칠 때 미동조차 없게 하여라.
거칠고 건방진 세파를 다스리는 자가 되거라.
그대는 결코 변질되지 말지어다.
모든 일의 결정 앞에서 내게 초점을 맞추고 내 아버지께 영광 올리는 일을 도모하여라.
그러면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단다.
세상으로부터 네 마음을 잘 지켜라.
악한 세상의 영이 주는 달콤함이나 유혹에 눈길을 주지 말거라.
그런 것들은 처음에는 네 눈을 호리고 너를 즐겁게 하나,
결국에는 단 한순간에 목을 무는 독사의 맹독과 같아서 네 마음을 둔하게 할 것이다.
마음이 둔하여지면 영이 졸기 시작하다가
결국은 죽음보다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단다.
영의 잠은 사람의 힘으로는 깨어나지 못한다.
오직 나만이 그 영을 깨울 수 있지.
내가 다시 숨을 불어넣어야 깨어난단다.
영의 잠을 자고 안 자고는 사람의 선택이다.
그 잠에서 깨고자 간구하는 것도 선택이다.
교회에 다니는 자들도 원수의 궤계로 말미암아 자신이 영의 죽은 잠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잘 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자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 이 길을 가거라.
내가 반드시 너를 마지막 날에 웃는 자로 만들어주마.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느니라.
비록 적은 무리라도 내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나는 '내 백성'이라고 칭한다.
그러니 그들 위에 내 눈이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
귀한 자의 신분에 맞게 처신하고, 낮추어 겸손히 행하며, 내가 보내는 자들의 발을 씻기는 마음으로 섬겨라. 그러나 모두에게는 아니니라.
물에 얼굴이 보이는 것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추어 볼 때, 그대와 같은 영을 알아볼 수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