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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Dec 22. 2023

신앙고백


"찬송가 안 들어요. 와이프 성당 다녀요."

재작년에 살던 집 아래층에는 소음에 민감한 가족들이 살았다.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쫓아오는 바람에 긴장상태였다. 조심에 최선을 다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 집 소음이 아닌 것도 다 우리 집으로 따지는 거였다. 우리도 들리는 이웃소음이 있는 순간이면 영락없이 벨이 울리곤 했으니까. 아무래도 집에 더 많이 있는 내가 그분들을 상대하곤 했는데, 하루는 남편이 같이 있을 때 그 집 최장 어른으로 보이는 60대 아저씨가 올라왔다. 마침 그때 소음은 우리도 들은 다른 집의 가구 끄는 소리였고, 나와 달리 (싸가지없게 보일지언정) 냉정하게 할 말 잘하고 뒤끝도 없는 (나는 착한척하다 말도 못 하고 정작 뒤끝 있음) 남편이 문을 나섰다. 아저씨는 매번 저자세인 나를 보다, '적당히 좀 하시라'는 느낌의 남편을 보더니 태세를 바꾸어 억울하단 식으읊조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중엔 화장실 찬송가도 있었다. 화장실에서 찬송가 좀 안 부르면 안 되겠냐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니요, 저희 와이프 성당 다녀요' 한 것이었다 남편이. 니까 찬송가 안 부른다고. (찬송가=교회(개신교), 성가=성당 느낌이 있다.) 나름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몰래 듣고 있던 나는 킥킥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가리느라 애썼다. 성당 다니길 잘했다는 순간을 이렇게 맞이하고 싶진 않았는데.

신앙고백이란 제목에 나는 왜 저 일이 생각났을까.
  

나는 크리스천이다. 한국식으로 천주교인이라고도 한다. 한때 성당활동을 열심히 했었으니까 아는  성당사람이 많은데, 가만 보면 요즘은 교회언니들이랑 가깝게 지낸다. 급기야 최근엔 교회사람들이 불러주는 CCM도 듣는다.
  
그리고 12월이다. 1월 아니고 2월 아니고 1과 2가 만난 12월이란 말이다. 가만보니 올해는 큰맘 먹고 1월 1일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었다. 새로운 1월이 코앞인 지금 지난 1월을 앞두고 성경을 읽으려던 마음이 떠올랐다. '순전히 복을 구하는 마음'이었다. 지혜를 얻겠다는, 말씀을 가까이하겠다는 건 두 번째였다. 분명 복을 구하려 함이 영순위였다. 예수님의 착한 언행을, 하느님 말씀, 가르침을 가까이하고, 알게 되니까 당연히 실행할 것이고, 그렇게 나는 지혜와 가까이 될 것이고, 그럼 나와 우리 가족은 복을 얻고야 말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불안의 속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리라. 그 마음이었다.

성경을 읽은 날들이 꼭, 꼼꼼히도 매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수의 날에 성경글씨들을 읽긴 해보니 확실히 조금 친숙하는 진 기분이다. 그래서 결과는? 복을 받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명백한 건 영순위 목적은 '온전히 어그러졌음'이었다. 어쩐지 나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괴로워했다. 위안을 얻으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평안정도는 느낄 수 있는 거 아니었나? 평안은커녕, 때마다 슬프고 억울하고 피곤함. 그 끝은 괴로움이었다. 어쩐지 성경구절도 그전에는 위안과 용기를 주는 말들에만 머물렀으면, 지금은 그것보다도 그냥 인간의 고뇌, 비루함, 비겁함, 신약에서는 그 사람들 무리에 섞여 괴로워했을 예수님의 발로에 마음이 주로 머문 탓이기도 겠다.

용기를 주는 말은 성경을 쓴 '인간'이 한 말 같았고, 인간의 만행들 중에서도 큰 뜻을 향하는 예수님의 행적만이 신의 음성 같았다.

성경을 '읽기만' 한다면, 말씀을 '가까이만' 한다면. 왜 모든 상황에 지혜가 거저 펼쳐질 거라 믿었을까. 왜 '안 읽어서,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했을까. 알기만 한다면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은 어디서 나온 자만이었는가 말이다. 여전히 나는 예수님도, 성경도, 말씀도 잘 모르지만, 아주 조금 읽은 지금의 나는 이렇다. 알. 면. 서. 도 실천하지 못하는 내가 짜증 나고, 그나마 알게 된 것도 하기가 싫어서 괴롭고 부끄럽다.

근대철학의 한 대목에서는 기독교가 인간을 기본적으로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구석이 있다며 인간을 무능력하게 만드는 기저가 있음을 꼬집었다. 급기야 니체는 '신은 죽었다'했다. 기독교인이지만, 이 견해를 처음 들었던 고3 때부터 불과 며칠 전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러면서 니체는 인간인 '내'게 지니고 있는 가능성을 발휘하라며 사람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일리가 있었고, 그 뉘앙스는 지금까지도 여러 갈래로 통용되고 있으며 또한 변질되기도 했다. 니체의 논리를 읽으면 단순하고 좋은 자극이 많이 됐지만, 끝으로 갈수록 현대사회의 자기계발서 논리에 적용할 가장 유리한 인문학. 딱 거기까지로 보였다.

나도 나에 집중하고, 나를 찾아 헤맸으며 여전히 나의 온전한 것들에 많은 것을 집중하는 인간이었다. 뭐가 문젠지도 모르고, 그냥 공자가 나이 70이 돼서야 내가 하고픈 것이 도가 되었다고 했던 것처럼, 사사로운 것에 얽매이지 않고 지혜 덕망 있는 인간이 되려고만하며 살았다. 가끔만 멀리 보고 대부분의 순간에 눈앞의 과제들이나 해결하는 데 급급하며.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를 찾지 말고 부처님을 찾으세요'
저렴해서 큰 뜻 없이 구입해 읽었던 법정스님의 책 무소유에서 멈춰 선 말이었다.
부처님은 더 먼 분이니, 내게는 이글이 예수님을 찾으라는 거로 들렸다.
나로 일관이 되면 내가 완성이 된다 하여도, 끝에는 허무하리라. 큰 뜻을 보고 가면 허무할 길이 없다. 할 일이 너무 많다. 지금 내가 겪는 불안과 걱정, 고민들은 하찮기 전에도 교만하고 어리석은 것들이었다. 물론 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느끼게 하는 목적이나 주체가 나이냐 더 큰 것에서이냐에 따라 삶의 방향성은 굉장히 달라질 것이다.

고3 때 담임 선생님은, 졸업앨범에 실을 급훈 정하기를 자꾸 미루는 우리를 보고 살짝 짜증내시며 '너네 안 하면 내 맘대로 올린다.' 며 진짜로 맘대로 고 보여주셨다.
"배워서 남 주자."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급훈. 내 길은 여기였다. 이게 곧 신앙의 뜻이기도 하리라.

한편 어릴 적 주일학교를 다닐 때나, 조금 커서 교리교사를 할 때나 그 안에 있는 우리들은 모두가 이런 압박이 있었다. 성당 안에서 만큼은 착해져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교리교사를 한다고 절대 성경이나 교리를 더 잘 알던 것도 아니고, 나 같은 야매 야매신자가 없었는데, 착하게 굴어야 한다는 암묵적 목소리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성당은 그런 곳이었다. 착해져야 하는 곳.

흔히들 신앙의 이미지는 위로와 힘을 주는 거던데, 내게 어쩐지 성당 = 신앙은 착해져야 하는 곳이었다. 왜 내가 여기 있는지 모르겠지만 눈떠보니 가톨릭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교리교사에 가톨릭동아리에 청년활동까지 하고 있던 나. 고3 때 수능을 치르고 제 발로 다시 찾은 성당은 배우는 마음이었다. 예수님의 아가페적 사랑 하나만큼은 진리였다고 생각했고, 그를 기반한 가르침을 얻겠다는 생각이었다. 심오한 마음으로 성당에 갔지만, 어느 순간 맹목적인 발걸음이 되어있었다. 성당에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강요한다고 믿을 사람들도 아니었을 테지만. 애초에 믿고 싶어서 간 게 아니어서 큰 기대도 없었는데, 나는 자주 흔들렸다. 나는 그분의 가르침대로 행동은 할 생각이 있었지만, 믿지 못했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끝내는 부정하고 성전에서 발길을 돌렸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동네 번화가나 명동거리를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이상한 예수교인들의 문구였다. 한편 초등학교 때 주일학교에서 천국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천국 가려면 --해야 해. 이런 식으로. 그런데 정작 성당에 다니면서 천국 가려고 말씀대로 살라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비단 이건 천주교인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에게 성당인보다 구체적인 지침을 잘 주는 교회언니들도 천국 가야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수도권과 멀어진 탓도 있겠지만 거리에서 예수천국불신지옥 문구를 보기도 드물어졌다. 크리스천들에게 천국이 목적이 되지 않은 지는 오래된 것 같았다. 이게 아마도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의 작은 의미에 포함되는 것은 아닐까. 저세상보단 이 세상에, 좁게는 지금 나에 집중하려는 의식도.

크리스천이라고 불리는 예수쟁이들은 대부분이 위로와 희망이 그 길을 가는 제1의 이유로 보였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은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 11:28)  이 문구는 성당 교회 어디든 친숙한 문구가 아니던가. 나도 그랬다. 위로받았고 인간에게서 위로받지 못한다면 마치 그분만은 나를 알고 있을 거란 믿음이 그나마 생기고는 했다. 과거에는 분명 그런 문구들만 눈에 들어왔다. 사랑, 위로, 희망에 관한 문구들. 고난 중에서도 사랑을 말하던 신의 존재가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이번 성경을 읽을 때 나는 놀랐다. 그전까지는 마치 내가 항상 약자인양, 얻으려는 자인양 좋은 말만 골라보았다. 실제 성경은 그렇게 달콤한 말들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몇백 년이 됐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된 이 책에는 말도 안 돼 보이는 모순과 갈등이 가득했다. 심지어 신의 섭리와 목소리그러했다. 반대로 성경의 긴 역사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지난 우리 모습은 그 안의 인간들보다 더 낫거나 사랑 평화가득한 같지도 않았다.

이번에 알게 된 나란 인간은, 예수님을 대놓고 모르쇠 하고 등 돌리며 배신하는 제자 같았다. 세상이 모두 유다만 최고의 나쁜 놈이라지만 실은 뒤에서 쉬쉬하는 그보다도 못난, 나쁨보다 '비겁한' 사람. 예전에 예수님은 대단한 신급의 역사적 위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지독히도 외롭고 힘든 길 위의 사람 같았다.

나는 나의 같잖은 자만과 무지와 응큼함 몸서리쳤다.

나를 괴롭게 하는 좁은 문, 좁은 길.

내가 그렇게 극복하려고 했던 불안.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성경을 폈고, 복을 구하려고 말씀을 읽으려고 했는데, 극복보다는 더 큰 괴로움으로 그것을 미세하게 좀 더 자주 잊게 되는 듯하다.

나의 불안의 크기는 그대로지만 축소된 건 아니고 그 불안을 하찮게 만드는 거대한 시선을 알게 됐다. 내 신앙의 이유는 정해졌다. 신은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우리 조상이 죽었다고 그의 역사가, 삶이, 우리역사가 없어지던가. 역사는 함께하고, 추억도 기억도 함께한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보일 때 잘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을 때 신뢰는 것들이 더 소중한 법이다. 신앙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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