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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용할 양식 Nov 08. 2020

11. GO GIRL

가끔은 내가 나인 것이 부끄럽고 불편했습니다. 무거운 퇴비를 거뜬히 들지 못하는 나, 기계를 운전하지 못하는 나, 소똥 냄새를 싫어하는 나, 벌레를 혐오하는 나, 예초기가 무서운 나, 이웃의 참견에 살갑게 대꾸하지 않는 나, 이장의 말이 거슬리는 나, 거슬리면서도 어색하게 맞장구치는 나, 그리고 서서 싸지 못하는 나조차도요.     



“저… 형, 화장실은 어디로 가면 돼요?”  

품앗이를 하러 모인 인간들이 모두 초면인데다 그중 여성이 나 혼자라면, 화장실을 묻는 것이 유독 번거롭고 민망할 때가 있었습니다. 잠깐 동안은 나도 그들처 럼 하우스 뒤편에서 볼일을 볼까도 싶었지만, 음, 하우스 비닐이라면 살의 윤곽 정도는 아른하게 비칠 테니 역시 미친 생각 같았어요(그런 판단을 내릴 이성은 있었기에 다행입니다). 한참 다른 이들의 동태를 살펴도 하나같이 화장실이 아니라 하우스 뒤편, 덤불 곁에서 해결하기에 결국 물어봤을 겁니다.

“아, 맞다. 화장실, 저기 축사 뒤에 있어.”

왁자지껄한 그들을 뒤로 하고 멀리 있다는 화장실로 급히 걸어가는데 묘하게 거슬리더군요, ‘아, 맞다.’라니. 새삼 나만 여자인 게, 나만 화장실이 필요한 게 불쑥 도드라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흡연자 사이에 끼어 멀뚱히 담배 연기만 쳐다볼 때 느끼던 곤란함과 비슷한 것이 찾아들었죠. 여기 내가 있어도 되나. 옆으로 빠져 있을까. 아님 불편을 눈치 채지 못한 척 있을까. 종일 쓸데없는 고민을 나만 덤으로 할 걸 상상하니 한숨이 팍 나왔습니다. 그길로 곧장 우리 집 화장실로 귀가하고 싶었지만, 일당을 떠올리고 참았어요. 내가 당차게 굴면 되겠지, 뭐. 껄끄러운 기분을 떨치려 애썼습니다. 외국에는 여자도 서서 용변 볼 수 있는 도구가 있다던데 그걸 구비해야 하나…. 그런 쪽으로, 어떻게든 혼자 곤란함을 해결해보는 쪽으로 궁리하며 볼일을 봤습니다.       




출처 www.dhgate.com

레이첼. 우리는 독일의 한 농장에서 우퍼(wwoofer, 농가의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봉사자)로 만났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레이첼이 좋았어요. 그가 ‘고걸(go girl, 여성용 배뇨 제품)’을 쓰고 있었거든요. 처음 레이첼을 보았을 때, 그는 다른 우퍼들 앞에서 보라색 깔때기를 사타구니에 갖다 대며 설명하고 있었는데요. ‘고걸’이야말로 성 억압 해방을 실천하는 도구라고, 화장실 가는 일이 더 이상 무섭지도 불편하지도 않다고 열변을 토하는 중이었죠. 저게 말로만 듣던 그거구나 그의 고걸을 구경하며 좀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름도 ‘go girl’인 깔때기를 쓰는 것이나 그 깔때기를 거리낌 없이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나 참으로 ‘go girl’다운 당찬 모습이어서 몰래 반해버렸죠. 

이후로 레이첼과 고걸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길 바랐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아서 한동안은 시선으로 레이첼을 따라다녔습니다. 어떤 날에 레이첼은 헤드셋을 끼고 락앤롤을 들으며 삽질했고, 또 다른 날엔 아예 맨발로 밭에 나타나기도 했는데요. 특히 그가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 예초기를 휘두르는 모습을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제가 생각도 못 한 모습이었으니까요. 그럴 생각조차 못 했다는 사실이 가히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맞아, 저렇게 입어도 되지, 저렇게 일할 수도 있겠다. 복장과 태도를 아우르는 모든 면에서 레이첼은 그간 제가 생각한 농부의 모습을 산산조각 냈는데, 그래서 레이첼이 점점 좋았습니다. 레이첼이 환기하는 모든 새로운 생각들이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각자 다른 농장으로 떠나기 직전 마침내 레이첼과 나는 친해졌는데, 그건 고걸 때문이 아니라 둘 다 같은 지점에서 곤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목수지만, 톱을 다루는 것도 무섭고 나무의 거친 면도 싫거든. 그런데 목수라면 그런 건 개의치 않아야 할 것 같아서 괜찮은 척 해. 그때마다 내가 목수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져.” 

어느 쪽이 자신에 더 가까운지, 어떤 모습으로 일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레이첼의 고민은 나의 것과 빼닮은 구석이 있었죠. 농부라 하면 어쩐지 털털하고, 환경 친화적인 일상을 살고, 몸 쓰는 일을 겁내지 않을 것 같은 그 기대에 끼워 맞춰지질 않아서 저 역시 지독하게 애를 먹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부러 무거운 퇴비를 거뜬히 드는 척, 모든 벌레를 나의 작은 친구들이라 생각하는 척, 예민하지 않은 척했어요. 제가 그리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농부’가 되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실패했고, 그때마다 저는 자책했죠. 내가 좀 더 당차게, 열심히 했으면 됐을 텐데.      


내 것과 닮은 타인의 고민을 만나서야 레이첼과 나는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졌습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자신을 두둔하기로 했죠. 무얼 입고 어떻게 일하든 직업의 틀은 따로 없는 거예요. 있다 하더라도 나를 끼워 맞출 게 아니라 그 틀을 녹여 나에게 꼭 맞게 바꿀 수도 있겠죠. 나는 무엇이 되든 나를 남겨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든 우리가 원하는 모양으로 일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아마 고민은 내일 또 태어나겠지만요. 내가 나를 지우지 않기로, 내가 나인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하고 레이첼과 나는 다시 떠났습니다. 지금도 레이첼을 떠올리면 보라색 ‘go girl’이 둥실거리는데요. 레이첼은 아직 쓰고 있을까요, 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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