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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Dec 28. 2020

왜 우리는 불법 공유에 관대한가

저작권, 노동, 그리고 동료 의식

1998,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가 대한민국에서 출시되었다. 아이리버가 특허권을 이어받고 본격적으로 상용화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Mp3 파일 형식이 대중에게 널리 퍼지게 되면서, 시간, 장소의 제한에서 벗어나 정보를 빠르게 공유할  있는 시대가 열렸다.

소리바다는 2000 즈음에 인터넷을 사용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프로그램 이름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공유할  있는 P2P(Peer-to-Peer) 플랫폼의 등장이었다.

누구나 제약 없이 자료를 공유할  있었기 때문에 금세 불법 공유의 온상이 되었으며 많은 음악가들과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현재는 ‘토렌트라는 파일공유 플랫폼이 유명해지면서 OS, 소프트웨어,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저작물들이 불법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법 공유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이유는 인터넷이 가지는 ‘익명성때문이다. 이진법으로 표현된 가상의 세계에서 나의 신분을 철저히 감춘 채로 어떠한 활동을   있다는 것이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이기심 키우기에 충분한 환경이  것이다.

또한 국가에서 모든 불법 공유 행위를 단속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불법 공유에 더욱 죄책감을 느끼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교육기관인 고등학교에서 토렌트로 다운로드한 영화를 수업자료로 사용하는 경우, 대학교에서 크랙 소프트웨어를 교수의 주도하에 설치하고 수업하는 경우,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토렌트로 다운로드한 음악을 식당에서 트는 경우  이러한 예시를 찾는 것이 매우 쉽다.

 현상은 이전 글에서도 썼던 ‘동료 의식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어떤 재화나 서비스는 나와 같은 누군가가 많은 고민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결과물이다.  결과물을 소비할  누군가가 그렇게 고생을 해서 만들어낸 것이라는 의식이 우리들에게 상당히 결핍되어있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결과물을 홍보하거나 서비스할 때도  노력의 존재를 부인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를 테면 비싼 공연의 티켓값에는 수십 명이 노력한  개월의 시간은  빼고 스포트라이트만 받는 주인공만 이야기하는  말이다.

결국 문제는 ‘교육이다. 길거리의 청소부나 학교의 교사나 공장의 노동자나 기업의 총수나 모두  사회를 위해  필요한 존재며 모두 신성한 노동을 하고 있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는 공부 안 하면 더울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추운 곳에서 일한다는 소리를 하며 직업의 귀천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영국에  공연장을 갔을  일이다. 한창 무대를 설치하는 중이었는데, 어느 나이가 지긋한 어셔(안내원)  분이 눈에 띄었다. 관객들의 티켓을 확인하고 좌석을 안내하는 일을 하였는데, 누군가 보면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역할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일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었다. 내가 관객들을  안내하는 덕분에 공연을   있고 그들의 행복한 저녁시간을 만들  있으니 얼마나 보람된 일이냐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나라는 낮은 지위로 인식되는 곳에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자부심을 갖고 일할  있는 사회인가? 나는 누군가의 노동을 무시하지 않는가?

물론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누구도 불법 공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적어도 자신이 전문적으로 생산활동을 하는 영역에서 만큼은 합법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하자. 그들이 만든 노력의 결과물이 당신의 월급에 기여하는 바가 분명 크기 때문이다.

모두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하나씩 노력의 대가를 지불할 , 회사가 성장하고, 산업이 성장하고, 결국 나에게도 이득이 돌아올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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