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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억중 Feb 19. 2021

장식에 대하여 (1)



이사철이 되면 실내 곳곳을 새롭게 장식하거나 멋진 가구나 소품을 사들이느라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이는 집들이 많다. 기왕 그렇게 장식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우리 몸을 치장하는 경우에 견주어 한 번 쯤 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러스트 김억중


흔히들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화장과 말이 짙어진다.”는 속설이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청춘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려한 장식이라 할 수 있으니 젊은이야 굳이 지나치게 가꿀 필요는 없겠으나, 세월과 함께 덧없이 늙어 가는 이라면 몸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을 터. 특히나 고령기로 접어들면 뼈대마저 부실해져 한 때 강건했던 신체의 구조미도 서서히 허물어져 가는 것이 자연이치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수록 화장이라도 해서 몸이 폐허에 이르지 않도록 잘 가꾸어 자신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욕구를 비난할 수는 없다. 홍윤숙 시인의 ‘장식론’을 읽어보면, 한 밤에 자수정 반지를 어루만지는 여인의 애틋한 심정이 가슴에 와 닿는다.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 잃어가는 때문이다. ⌜씻은 무우⌟ 같다든가 ⌜뛰는 생선⌟ 같다든가 (진부한 말이지만)그렇게 젊은 날은 ⌜젊음⌟ 하나만도 빛나는 장식이었겠는가... 때로 거리를 걷다보면 쇼윈도우에 비치는 내 초라한 모습에 사뭇 놀란다 어디에 그 빛나는 장식들을 잃고 왔을까 이 피에로 같은 생활의 의상들은 무엇일까"


장식을 해야 한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사실만큼이나 안쓰럽고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말하는 장식은 불필요한 사치가 아니라 품위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심정에 맞닿아 있다. 그렇게 장식을 해서라도 젊음을 갈구하는 열망은 숭고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젊음과 맞먹을 만한 장식을 어떻게 잘 하느냐가 문제다. 어떻게든 품격에 맞게 장식을 잘 할 수만 있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이름을 날리던 연예인들 중에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화장도 잘하고 잘 어울리게 가꾸어 참으로 곱게 늙어간다는 평을 듣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개중에는 덕지덕지 바른 듯 짙은 화장을 하고 얼굴 스케일에 맞지 않게 주렁주렁 장식을 달아 결국 추하게 늙었다는 징표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이들도 있다. 어떤 장식물이든 몸의 소중한 일부로 잘 스며들 만큼 그 사람의 품격과 스타일에 맞게 제대로 가꾸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건축에서도 장식의 가치와 의미는 몸을 치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집이 낡아 여기저기 보수도 해야 하고 새로운 삶을 담아내기에 불편한 점이 있다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장식을 새로 해서라도 그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옳다. 다만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장식요소가 전체 공간속에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어, 집주인이 지녀야 할 품격에 걸맞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집은 집주인의 인품과 자존감을 가장 정직하게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꽤 오래 전부터 실내장식에 주로 쓰이는 소품들 중에는 바로크나 로코코처럼 지나간 시대의 서양고전 양식을 흉내 낸 복고풍이 각광을 받고 있는 듯하다. 그런가하면 서양 귀족들의 양식을 모방한 값비싼 가구들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간 속에 국적불명의 독버섯처럼 피어 있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마치 고전 양식을 중산층 진입의 '인증 기호’인양 스스럼없이 소비하는 데 익숙해 있을 뿐, '여기, 지금'의 상황에 잘 어울리는가에 대한 고민을 찾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게다가 집안 가득 가구나 장식물이 넘쳐나 집주인이 가구인지 사람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는 진풍경도 허다하다. 


그렇게 그 집에 꼭 맞게 잘 절제된 것이 아니라면 장식물은 결국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군더더기요, 언제든 갈아치워도 될 법한 껍데기 요소일 뿐이다. 그런 장식물들은 집주인이 바뀔 때마다 또다시 쉽게 내다 버려질 터이니, 헐고 짓는 인테리어 공사를 반복하며 헛되이 쓴 돈도 만만치 않은 문제지만 여기저기서 나오는 산업쓰레기 더미는 또 어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결코 가볍게 생각할 사안이 아니다. 


결국 이유 있는 장식, 꼭 필요한 장식만이 세월과 함께 오래 지속되는 법. 사람도 집도 아름답게 늙어가려면 그 집, 그 자리, 그 주인의 품격에 잘 어울리도록 ‘빛나는 장식’을 이루어낼 수 있는가가 관건인 셈이다. 장식, 그것은 곧 그대 영혼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이므로 최상의 선택을 위해 부디 뜸을 들여가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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