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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담 Sep 01. 2023

미래 엿보기 주의사항

적당히 받아들이고 냉정하게 쳐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날은 사월 초파일로, 부처님이 오신 날이었다. 나는 천주교 날라리라서 절에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었지만 불교를 믿는 동생은 사찰 방문을 원했다. 그래서 동생의 종교 활동을 위해 모든 스케줄을 미루고 절에 가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은 동네 사찰이 아닌 현문사주 컨설팅을 택했다.


현문사주 컨설팅은 사주팔자를 풀이해 주는 명리학 사무소였다. 동생이 다니는 회사에 사수가 추천해 준 으로, 개인 사주를 1시간 반에서 2시간 동안 대학 강의처럼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사주 상담소였다. 그러니 찰떡같이 맞춘다나 어쩐다나. 어찌나 강력하게 추천했던지, 신점이나 사주팔자를 믿지 않는 동생이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내가 말할 때는 쓸데없이 돈 다며 심드렁하게 보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느닷없이 가자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나만 어이없었겠나, 부처님도 어이없었을 거다.


그래도 사주팔자는 궁금했다.  준비하는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고 싶었고 미리 세워둔 내년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지  엿보고 싶었다. 그래서 2주 전부터 예약 방문을 했다. 약속 시간은 오후 1시. 거리는 다행히 가까웠다. 나와 동생은 서현역 4번 출구로 나와 메가박스 옆을 지나쳐 건물 사이에 끼여 있는 텍스 타워로 향했다. 버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불안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현문사주 컨설팅이 있었다. 협소한 공간이었다. 기본 장비만 갖춰진 작은 사무실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화이트보드에 적힌 내 이름과 사주팔자였다.


내 사주는 정관격 사주로 공부를 하면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팔자였다. 높은 지위와 명예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주였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내게는 공부를 상징하는 토(정인)의 기운이 없었다. 즉, 공부할 머리통이 아니라는 거다. 어쩐지 주야장천 외워도 암기가 안 되더라. 어쨌든 선천적으로 공부할 머리가 없으니 후천적으로 공부를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걸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나는 직장인이지만 문예창작학과 학생이기도 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고 대학교를 바꾸어 다닌 지 어언 11년째. 죽을 때까지 글공부에 매진할 거라고 하니 뜻밖에 칭찬을 받았다. 아예 박사 학위까지 따라며 응원해 주셨다.


생각보다 내 사주는 좋았다. 내년 운부터 이후 30년까지 좋은 일이 많을 거란다. 나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동생은 아니었다. 1년 사이에 회사가 바뀌든 뭐든 이동수가 있을 거란다. 회사에 입사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정 붙이기가 어려워 스트레스를 받는 참이었는데 사주팔자도 그래버리니, 동생의 얼굴은 고민으로 가득했다. 현문사주 컨설팅에서 나오며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사주팔자가 그런다고 해서 정말 그렇게 행동하면 미래도 그렇게 되는 거야. 우리는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를 엿본 거야. 현재의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까 사주에 굴복하지 마."


신점을 많이 봐온 선배로서의 조언이었다. 하지만 동생은 몇 개월 동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어르고 달래고 타일러봐도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에는 포기 상태가 되어 그냥 관둬라, 관둬, 회사가 어디 그거 하나뿐이냐?라는 말도 나왔다. 지금은 자기 자신과 타협했는지 어찌어찌 버티는 중이다.


겨우 그런 말로 휘둘리다니, 쯧.

참다못해 쓴소리를 했지만, 사실 나는 동생보다 더한 일을 겪었었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무속인에게 1년 안에 신을 받지 않으면 팔병신, 다리병신이 되거나 정신을 놓을 거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한마디에 불안에 떨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결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몸과 정신은 멀쩡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사회초년생에게 돈을 뜯는 수법이었고, 받지 않아도 될 을 받게 하려는 선무당의 거짓말이었다. 그 일로 얻은 교훈이 있다. 미래를 엿보는 행위는 적당히 받아들이고 냉정하게 쳐내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과한 맹신은 독이 된다. 근본이 흔들리면 미래가 어두워진다. 좋은 말은 기분 좋게 흘려듣되, 안 좋은 말은 최대한 조심하면 된다. 물가에 사고수가 있다고 하면 최대한 물을 피하면 된다. 그런 식으로 지내다 보면 미래는 자연히 바뀌어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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