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어요>
어쩌다 ‘엄마’가 되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했다. 부모가 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아들을 출산하면서 엄마가 되었다. 아들을 양육하면서 엄마로서 어떻게 자녀를 양육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의 부모님으로부터 부모가 알아야 할 지식이나 경험담을 전해 듣지 못했다. 살아오면서 이 부분이 아주 아쉽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나와 언니를 어떻게 키우셨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는지, 보람을 느끼신 것은 언제였는지 여쭈어보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다.
맞벌이 부부였던 나는 첫째 아들이 24개월 되면서부터 직장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에 보냈다. 부모랑 헤어지면 분명히 울면서 안 가려고 할 거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출근하면서 아들을 어린이집으로 처음 보내게 된다면 출근 시간 때문에 아들을 선생님에게 떠맡기듯 아들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될 거 같아서 그 상황은 적어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봄방학 때부터 어린이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아침에 어린이집 통학버스가 왔다. 품에 있는 아들을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안겨줄 때 품 안에서 안 떨어지려고 아들은 엉엉 울었다. 가슴이 아팠다. 아들이 보는 앞에서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고 아들을 태운 통학버스가 떠나면 힘없이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통학버스를 탈 때마다 우는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내가 우는 아들을 내 품에서 억지로 떨어지게 하면서까지 직장생활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수없이 했다. 다행히 2주일쯤 지나니까 아들이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지금은 육아 휴직제도가 잘 되어있지만, 사립학교에 근무하는 나로서는 휴직은 꿈도 꾸지 못했다.
내가 일방적으로 선택한 학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아이들 하교 시간이 빨라져 집에 일찍 오게 된다. 하교하고 아들이 집에 오면 돌봐 줄 사람이 없었다. 그 핑계로 학원을 보내야만 했다. 요즘에는 방과 후 학교도 있고 돌봄 교실도 있어서 맞벌이 부부들이 예전보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이 조금은 수월해졌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들을 맡길 곳이 학원밖에 없었다. 피아노 학원, 미술학원, 태권도 학원을 보냈고, 고학년이 되면서 독서 학원, 과외 학원을 보냈다. 아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에 가서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아들의 몫인데 내 마음대로 결정했다. 아들이 가기 싫다고 말하지 않고 학원을 잘 다니길래 좋아하나 보다 생각했다. 분명 아들이 더 재미있어하는 분야가 있었을 텐데 물어보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어떤 학원에 다닐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들이 어리기 때문에 학원 선택은 부모인 내가 당연히 선택해 주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나의 착각이었다. 막상 아들을 키우면서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야 아들이 다닐 학원을 내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는 자기가 흥미를 가지면 저절로 배우게 되어있다. 그걸 엄마의 흥미나 욕심에 맞추어 억지로 가르치려 든다면 역효과만 나게 마련이다. 문제는 지나친 욕심 때문에 중심을 잃는 것이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박혜란
아들이 원했던 삶은?
내 생각대로 아들을 키웠다. 아들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저 많은 경험을 하게 하면 경험을 하지 않은 것보다는 좋을 것 같았다. 누구나 다니게 되는 피아노 학원과 미술학원, 태권도 학원 정도는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소비 원에서 조사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초등학생들이 학원 다니는 이유 중 대다수가 '부모가 다니라고 시켜서'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부모의 강요 때문에 다니기 싫은 학원에 다니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자기의 선택과 관련 없는 학원, 부모가 선택해 준 학원에 다녔던 내 아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첫째 아들은 운동을 아주 좋아했다. 어릴 때 넓은 잔디밭에 가서 아빠랑 축구를 하며 즐겁게 놀았던 일을 청년이 된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서 좋아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남편은 사업으로 인해 저녁 늦게 귀가했다. 운동하고 싶은 아들은 나를 귀찮게 했다. 좀 쉬고 싶은데 밖에 나가서 같이 배드민턴을 치자고 했다. 그때부터 운동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만약 그 당시 아들에게
“아들, 지금 다니는 학원에서 배우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제일 재미있니?”, “다니기 싫은 학원 있니?”, “어떤 거 배우고 싶니?”
라고 물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직장에서 볼링동호회를 운영했었다. 매주 목요일 퇴근하면서 어린이집에서 5살인 아들을 데리고 볼링장에 함께 다녔다. 얼마 전 아들이 직장동료들과 볼링동호회에 가입했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볼링동호회 모임에 갔다 온 아들이
“엄마, 저 어렸을 때 볼링장 데리고 다니셨잖아요?”
“응, 네가 아주 어렸을 때 일인데 어떻게 그걸 기억하니?”
“그때 아주 큰 공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이 너무 신기했었어요. 그때 저한테 볼링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생각 왜 못하셨어요? 그때 저에게 볼링을 가르쳐줬으면 지금쯤 제가 볼링 선수가 되어있을지 누가 알아요?”
“그러게 말이야. 그땐 그런 생각 전혀 못 했단다.”
아들이 어릴 때 학원을 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은 점이 못내 미안하고 아쉽기만 했다.
첫째 아들과는 다르게 적용한 양육
4년 뒤에 둘째 아들을 낳았다. 같은 실수를 두 번 하고 싶지 않았다. 둘째 아들에게는 학원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싶어서 물었다.
“미술학원에 가 볼래?”
“싫어.”
“태권도 학원은 어때?”
“아니, 나는 운동도 싫어.”
“피아노 학원은 어때?”
“좋아요” 둘째 아들은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오로지 피아노 학원에만 다녔다. 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직감했다. 아! 오늘 시험 친 날이구나! 공부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피아노 치면서 날려 보낸다고 했다. 한때는 피아노 학원 다니기 싫다고 했다. 왜 싫은지 이유를 들어보니 학원에 가서 배우는 것이 번거롭고 귀찮다고 했다. 그래서 피아노 선생님이 집으로 와서 개인 지도하는 것으로 바꿔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꾸준히 배웠다.
고등학교 때에는 주말을 이용하여 바이올린과 비올라 개인지도를 받아서 교회 성가대 악기 팀으로 섬겼다. 아들이 배우고 싶어 한 것이 기타였는데 학원에 다니지 않고 독학했다. 기타를 아주 잘 치는 남편이 혼자서 배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학원에 가서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이 좋다고 권유했다. 하지만 혼자 다운로드하여 듣고 녹음하여 듣는 것을 반복하더니 학원 문턱에도 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기타를 잘 친다.
성가 발표제가 있는 날은 그동안 배운 기타 실력을 처음으로 독주한 적도 있다. 음악을 좋아하고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 아들은 음악 관련 악기를 배웠고, 작곡도 관심을 보이면서 서울로 강연을 들으러 가기도 했다. 아들의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역시 학원 선택은 부모의 몫이 아니고 자녀가 스스로 선택하게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임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현재는 음악전공자들과 함께 대학교회에서 찬양 팀원으로 섬기고 있다. 주말을 이용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과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아주 많이 행복해하며 지낸다.
“아이들에게 조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 그것을 하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해리 트루먼-
자녀에게 선택권을 준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 중에는 자녀 스스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부모가 결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을 수 있다. 부모는 자녀가 어릴 때는 적어도 어떤 학원만큼은 기본적으로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아무리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이라 하더라도 내 자녀가 다닐 학원을 부모가 선택해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대화한 후 자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자녀가 어떤 학원에 다니고 있다면 이 기회에 진심을 담아 대화를 해 보는 것이 좋다. 자녀가 하는 일이 자기가 원하지 않는데 부모에게 말하면 부모에게서 혼날까 봐 두려워서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녀의 의견을 무시하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녀를 이끌어간다면 자녀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부모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디까지나 자녀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고 선택은 자녀 스스로 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할 때 자녀는 스스로 선택한 것에 책임을 다할 것이며, 그로 인해 성취감도 느끼고 행복한 자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