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특수교사 정서인 쌤 Apr 20. 2021

비교당할 때 마음

     

어릴 때 쾌 오랫동안 아픈 몸으로 지냈다. 다리로 걸을 수 없었기에 쪼리고 앉아서 친구들과 놀이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2살 터울인 언니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어떤 날은 내가 따라가는 것이 귀찮아서 몰래 친구 집으로 가 있었는데 결국 내가 찾아왔었다고 후에 언니가 이야기해 준 기억이 난다. 언니가 친구 이름만 대면 지금도 누구인지 알 정도로 언니 친구를 많이 알고 있다. 언니랑 동네로 나가면 어른들이 몸에 이상한 쇠(보조기)로 된 것을 착용하고 다닌다고 불쌍하게 여기시면서 "아이고, 츳츳"하며 혀를 차기도 하셨다. 

그러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한 말씀하셨다.

 “아휴! 불쌍한 거. 이 일을 어째? 얼굴은 언니가 더 예쁘네. 그런데 공부는 동생이 잘한다며?”    

정말 자주 들었던 말이다.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낮은 이유가 어릴 때부터 이런 말을 동네 어른들에게서 너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후에 알았다. 공부는 잘한다고 했지만 결국 얼굴이 안 이쁘다는 말이 더 크게 들리다 보니 기분이 나빴다. 아마 언니 역시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 거로 생각한다. 얼굴은 이쁘다고 칭찬은 받았지만, 공부를 동생이 더 잘한다는 말을 더 크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언니가 시골에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와 같은 말을 들었으니 나름 싫고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왜 어른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나가고 있던 언니와 나를 서로 비교해서 우리의 기분을 언짢게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때는 기분이 나쁘니까 다음부터 그런 말씀을 하지 말아 달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였다. 어른의 말에 대꾸하는 것은 예의가 없는 사람이 하는 행동으로 여기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요즘 이런 일을 겪고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비교가 절대 좋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데 왜 서로 비교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옆집 아이와 비교하고, 친구의 자녀들과 비교하고, 반 친구들과 비교하고, 심지어는 조카들과도 비교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 종종 본다. 비교는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아이들을 존중해 주지 않는 마음에서 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시골에 살 때 내가 만났던 어른들은 20년대 태어나신 분들이니까 그렇다고 이해를 한다. 하지만 60년대 출생한 직장동료들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비교하는 말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좋은 모습을 답습하지 않고 우리 부모 세대들이 하는 말들을 과연 잘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고 그대로 답습하며 생활해 왔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 내가 사는 충주시가 발전하여 새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었다. 동료 교사들이 신혼 때 좀 적은 평수에 살고 있다가 시간이 좀 지났으니 좀 더 넓은 아파트에 입주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입사 동기 선생님들이 거의 대부분 이사를 갔다. 하지만 나는 이사할 상황이 아니었다.

 “선생님, 이번에 연수동에 있는 힐스테이트 아파트 잘 지었다네요. 선생님도 거기로 이사   하셔요?”

 “아, 그래요? 전 아직 이사 못 가요. 가면 저도 좋지요. 학교도 가깝고요”

  “왜 못 가요? 지금 아파트 팔고 융자 조금 내어서 가면 되잖아요.”    

 동료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까 자존심이 상하고 속이 상했다. 내 상황도 모르면서 이야기하는 직원이 얄미웠다. 물론 나에게 말한 동료는 나의 기분을 나쁘게 하려고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하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듯이 상대방은 별 뜻 없이 이야기한 것이라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비교당했다고 느끼게 되면 그런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비교를 알게 모르게 많이 한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대한다고 한다. 비교를 당하게 되면 강점을 생각하기 이전에 부족한 것에 마음을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다른 사람과 스스로 비교할 수도 있다.     

비교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어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언제 부모가 형제간에 차별 대우를 했는지, 서로 비교하며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는지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비교는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부모가 아이들을 존중해 주지 않는 마음에서 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비교당하면서 입은 상처는 아이의 온몸에 각인된다. 상인이 되어서까지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할 수 있다. 부모인 우리는 행여나 자녀를 누군가와 비교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그 행동을 멈출 필요가 있다. 비교를 당하는 자녀들의 마음속에 부모가 모르는 불행의 씨앗이 싹트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불행의 싹이 더 자라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할 책무가 있지 않을까?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존중하며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부모인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서 답을 찾아 당장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실패는 또 다른 성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