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쓸실 Oct 13. 2020

제로 웨이스트하면 뭐가 좋은데? 환경말고 나한테?

제로웨이스트 101 - #2

친환경 라이프 스타일이 환경에 진짜 도움이되면 됐지, 사람한테까지 도움이 될 필요가 있나?


네 저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환경문제는 소수의 악인이 저지른 결과가 아니라 다수의 흐름이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노력은 다수의 변화를 이끄는 정말 중요한 시작이지만, 다수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눈에 당장 보이지 않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행동하는 분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혜택이 있어야만 움직이는 분도 있습니다.


따라서 제로웨이스트 라이프가 가진 '우리에게도 좋은 측면'이 '환경에게 좋은 측면'과 동시에 강조되어야 합니다.


위 문장을 한 번 더 읽어보시겠어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홍보하기 위해 억지로 '좋은 점'이 있다고 강조하는게 아닙니다. 제로웨이스트는 환경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정말 좋습니다. 그게 덜 강조되었을 뿐이지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 5년 동안 제가 환경에 한 일은 미미한데, 이 생활이 나에게 준 것은 너무나 큽니다.



1. 지혜로워집니다.


제로웨이스트를 한다는 건 단순히 '앗, 이게 필요하네 - 검색 - 구매 ㄱㄱ'의 사고 흐름에서 벗어나 본질에 대해 질문하게 합니다.


이 물건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진짜 이유는?
이 필요를 채우기 위해 정말 이 물건이 필요할까? 아니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 물건은 어떻게 포장되어있나?
이 물건은 누가 만들었을까?
이 물건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 물건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이 물건이 만들어져서 우리집까지 오는데 환경, 이웃(이웃국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 물건을 만든 재료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물건의 재료를 만드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 걸까?
...


이런 질문을 하다보면 종적, 횡적으로 폭 넓은 사고를 훈련하게 됩니다. 같은 시대에 사는 다른 지역에 내가 미치는 영향을 이해한다는 것을 횡적 사고라고 하고,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을 종적 사고라고 합니다. 방구석에서 천리안을 보는 것 처럼 넓게 사고하게 됩니다.


교과서에서 누가 가르쳐서 이런 사고를 하기 어렵습니다. 철학 배워도 그 때 뿐 아닌가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면 내 삶과 끈끈하게 연결된 펄떡펄떡 뛰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2. 효율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효율적인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효율은 최소 자원의 투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입니다. 싼 값으로 아이팟과 비슷한 성능의 기기를 구매하면 '가성비'가 쩔게 되는 거죠. 근데 효율은 '결과'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집니다.


옷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요? 청결을 유지하고, 보호하고, 입은 사람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목적을 최소한의 자원으로 이루면 '가성비 쩌는', 효율적인 삶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최대의 투입으로 미미한 효과를 내는데 집중합니다. 나를 멋지게 만들어 줄 것 같아 하나 둘 씩 산 옷이 옷장에 그득그득 합니다. 어느 정도 까지는 청결 유지, 몸 보호, 아름다움에 기여했겠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비효율로 전환됩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책 내용을 제 식대로 표현했습니다.)


옷을 만드는데 들어간 환경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아도, '더 많이 소유하는 것 = 행복'이라는 공식은 진짜 행복을 추구하는데 비효율적입니다.


환경적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이미 집에 티셔츠가 있는데 길거리 지나가다가 이뻐보여서 비유기농 티셔츠 한 장을 사는 건 완전 마이너스지요. 


한 번 계산해 보시겠어요?


(티셔츠 하나로 얻는 즐거움/아름다움/청결유지/몸보호) - (목화 생산국의 물과 토양 오염, 농부의 건강 악화, 염색공장 국가의 물오염, 공장노동자의 건강 악화, 탄소배출, 봉제노동자의 인권침해 등)


제로웨이스트를 하는 건 본질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본질을 알면 굳이 돌아갈 필요없이 그 본질을 바로 추구할 수 있게 됩니다. 가장 효율적인 삶이 됩니다.



3. 관계성이 회복됩니다. (정신이 건강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문제로 힘들어 합니다. 저도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로 5년 정도 고생했습니다.


모두가 나를 무시하고, 나는 아무 쓸모 없다고 느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자동문 앞에 섰는데, 자동문이 열렸습니다. 엄청 눈물이 났습니다. 저를 사람으로 인식하고 문을 열어주었으니까요. 저를 사람답게 대해준, 내 존재에 응답해준 것이 자동문 뿐이었으니까요. 어떤 커리어, 얼마의 재산, 어떤 능력 때문에 나를 인정해준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인정해 준 것이었으니까요.


우울한 얘기를 쓰니 그 때의 감정이 떠올라서 우울해지네요. 완전히 극복한지는 2년 정도 되었습니다.


근본덕후라 또 근본적으로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뭘까?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생존에 꼭 필요한 것들이라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습니다. 이게 안채워지면 힘들어집니다. 식욕, 성욕, 수면욕 다 아시죠? 근데 몸의 욕구 말고 마음의 욕구도 있습니다. 바로 관계입니다. 사랑받고, 사랑주고, 돌보고, 돌봐주고, 기여하고, 도움받고, 주고 - 받고.


마음의 욕구가 충족되면 배고플 때 밥을 먹은 후 더 이상 배고프지 않듯이 편안해집니다. 마음이 충족됩니다.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는 기본적으로 관계성을 회복하는 활동입니다. 타인과 환경 속에 내 위치와 영향을 이해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합니다. 쓰고-버리는 소비가 아니라 들이고-돌보는 관계로 변화됩니다. 궁극적으로 마음의 욕구가 채워지고 덜 조급하고 덜 우울하고 덜 불안하게 됩니다.


 

4. 자기 존중과 자기 효능감이 생깁니다.


쓰고-버리는게 익숙한 사회에서 사람도 쓰고 버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제는 나도 나를 그렇게 본다는 것입니다. 그저 회사의 도구, 가족의 필요를 채워주기만 하는 도구로 자신을 바라봅니다. 언제 버려질지 몰라 불안합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정작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건지 모르게 되버립니다.


제로웨이스트로 사물, 환경,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작은 실천을 하게 되면 '주변환경이 변해도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삶의 효율이 최고도가 된 상태니까요. 적은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연습을 하다보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칭찬 & 존중하게 되고, 어떤 일이 생겨도 이겨낼 수 있겠다라는 효능감이 생깁니다.



5. 움직이는 명상을 하게 됩니다.


보통 명상을 하면 가만히 앉아서 명상 음악을 들으며 하는 활동을 상상합니다. 명상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복잡한 뇌를 멈추고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앞에서 말한 관계의 단절로 인한 불만족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너무 바쁘고, 소모적이고, 소비하는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족을 위해 소비하는데, 소비를 위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니 바쁘고, 제대로 돈을 못 벌어서 마음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제로웨이스트 활동는 최적의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때로는 그래서 몸을 쓰게 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진공청소기는 청소에 드는 피로를 줄여준 고마운 친구입니다.


근데 정말일까요? 좁은 집에서 진공청소기는 부피를 차지하고, 시끄럽고, 무겁고, 안 들어가는 곳이 많지 않나요? (이걸 다 해결해주는 건 엄청 비싸지 않나요?)


좀 더 과학적으로 말하면 진공청소기의 원리는 먼지를 빨아들이는 힘입니다. 한 번 실험을 해 보세요. 테이블 위에 휴지 한 장을 놓고, '흡'하고 빨아들여 보세요. 다 하셨으면, '후'하고 불어보세요. 어떤게 더 많이 움직이나요? 어떤게 더 힘드나요?


'후'하고 부는게 더 많이 움직이고 덜 힘들었을 겁니다. 물리적으로, 빨아들이는 것보다 부는 것이 먼지를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전기청소기보다 빗자루가 더 효율적이라는 말이지요.


남편/아내는 하나도 안 도와주고, 바빠 죽겠는데, 진공청소기도 못 쓰게 하는거냐!고 반발하실 분도 계실겁니다. 과학적으로 굳이 따져보지 않더라도, 의외로 진공청소기를 소유하고, 다루는데 에너지가 많이 쓰입니다. 동물털 같은 건 잘 치워지지도 않구요.


진공청소기를 쓰는 근본적인 목적과 거기에 드는 비용을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1번 효과. 지혜로워집니다)


가장 효율적이라 생각해서 선택한 비질.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하다보면 명상의 시간이 됩니다.



슥슥... 위이이이잉~~하는 모터 소리가 아닌 조용하고 반복되는 소리.

먼지와 머리카락이 모이는 쾌감.

하다보면 점점 아무생각이 안들고 현재에 집중하게 됩니다.


시계를 보니 10분도 채 안지났네요. (집 크기에 따라 차이 있음 주의.)


쓰레기를 처리하고 원래 자리에 빗자루를 걸어둡니다. 줄을 감거나, 배터리를 충전할 필요가 없네요.


제로웨이스트 활동을 하다보면 비질처럼 움직이면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면서, 명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소비적이지 않은 건강한 취미생활이 되기도 하구요.




너무 추상적이죠?

해 보신 분들은 끄덕이실 거고, 입문 전이라면 '뭔소리?'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배움은 해봐야만 알 수 있으니까요. 운전처럼.


제로웨이스트가 만병통치약이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만병통치약이 어디있겠어요.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해주는 많은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입니다. 다만, 병들어가는 환경을 지키며 삶을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좋은 거 아닌가요?



다음글: 실전형 제로웨이스트 플로우차트 대공개!


Stay Tuned!

작가의 이전글 제로 웨이스트 입문을 환영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