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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May 08. 2024

리부셰와 비셰흐라트 언덕


1.


그때가 언제였는지, 얼마나 오래 전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아무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멀고도 먼 옛날이었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아주 험하고 거칠고 높은 산악지대의 오두막에 레흐, 체흐, 루스 삼형제가 살았다. 


일찌감치 부모를 잃은 삼형제는 어릴 때부터 산속에서 살며 매일 함께 사냥을 하러 다녔다. 셋 다 타고난 사냥기술이 출중했기 때문에 산짐승을 잡는 데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냥을 잘해서 늘 고기가 넘쳐났고, 숲에서 나는 과일이나 뿌리열매도 지천이어서 먹는 걸 두고 싸울 필요도 없었다. 


“오늘은 작은 샘이 세 개 있는 북쪽 삼나무 숲으로 가 보도록 할까? 며칠 전에 사슴을 잡을 때 그곳에서 멧돼지 여러 마리가 지나가는 걸 봤어.”

“좋은 생각이야. 멧돼지 고기는 질기기는 하지만 고소해서 맛이 뛰어나지.”


삼형제는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까지만 해도 정말 우애 깊게 행복하게 살았다. 그들에게는 부모는 물론 일가친척도 없어서 누가 형인지, 누가 동생인지, 나이는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했다. 셋은 ‘그렇게 사소한’ 일에 굳이 얽매이려 하지 않았다. 


“나이에 무슨 의미가 있어? 그냥 형제끼리 싸우지 않고 뜻을 모아 사냥을 잘하면 그만이지!”

“네 말이 맞아. 형이라고 불리는 것이나 동생이라고 불리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어.”


하지만 그들의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정은 조금씩 달라졌다. 발단은 삼형제가 지내던 산 아래 마을에 살던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눈부실 정도로 훌륭한 풍모를 가진 삼형제를 보고 감탄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한 청년들이야. 지금은 산속에 처박혀 사냥만 하지만 다들 나중에는 한 나라의 왕이 될 게 분명해. 삼형제가 다스리는 나라에서 사는 백성은 정말 행복할 거야.”


주민들은 그때부터 삼형제가 사냥을 나갈 때마다 늘 따라다녔다. 레흐를 좋아한 사람들은 레흐만, 체흐를 존경한 사람들은 체흐만, 루스를 사랑한 사람들은 루스만 따라다녔다. 삼형제는 처음에는 뒤를 따라다니는 주민들을 부담스럽게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마치 대장이라도 된 것 같아 기분이 좋고 즐거웠다. 


주민들이 삼형제를 따라다닌 게 1년쯤 됐을 때 삼형제 사이에 은근한 반목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게 삼형제를 질투한 악마의 장난이었거나, 아니면 삼형제가 더 큰일을 할 수 있게 하려는 신의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아주 튼튼하게 보였던 셋의 사이에 서서히 틈이 생긴 것만은 분명했다.


‘오늘은 레흐를 따라간 사람들이 나를 따라온 사람들보다 한 명 더 많아 보였어. 기분이 별로 좋지 않군.’

‘체흐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늘 집에서 맛있는 빵을 만들어 오더군. 왜 내게는 저런 사람들이 따라다니지 않는 거지?’

‘레흐와 체흐만  없으면 마을 주민 모두가 나를 따라다닐 텐데 아쉬운 일이야.’


삼형제는 이전에는 매일 사냥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밤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형제끼리 어울리지 않고 각각 뒤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만나 저녁 시간을 따로 보내게 됐다. 아침에 다시 만날 때에는 환하게 웃으며 반기기는커녕 싫은 사람을 본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거나 짜증을 내기도 했다.


삼형제 사이에서 반목이 조금씩 커져 갔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깊은 형제애와 세상을 보는 지혜가 있었다. 그들은 계속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구름이 달을 가려 아주 어두운 어느 날 저녁 삼형제는 오랜만에 오두막에 모여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끼리만 사냥을 할 때가 더 좋았어. 그때는 늘 함께 지냈고 언제나 즐거웠지.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요즘 들어서는 너희 둘을 두들겨 패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잦아.”

“나도 그럴 때가 많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 것 같아. 셋 다 이제는 코흘리개 어린아이가 아니잖아? 더 이상 함께 지낼 수는 없어. 그랬다가는 언젠가 큰 비극이 벌어질 거야. 이제 갈라서서 각자의 길을 찾아가야 해.”

“내일 아침에 해가 뜨면 오두막을 떠나도록 하자. 각자 뒤를 따라가는 주민을 데리고 가는 거야. 물론 그렇게 되면 우리 셋은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것이야말로 하늘이 우리에게 정해 준 운명이야.”


삼형제는 다음날 아침 일찍 창고에 보관한 모든 사냥무기를 골고루 나눠 집을 나섰다. 세 사람은 마을로 내려가서 주민들에게 차분하게 일렀다.


“우리는 이제 이곳을 떠날 겁니다. 각각 먼 곳으로 흩어져서 새로운 마을을 꾸릴 겁니다. 여러분은 이곳에 남으셔도 되고, 우리를 따라 길을 떠나셔도 됩니다. 누구를 따라가든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아무도 어느 것도 강요하지 않을 겁니다.”


삼형제는 마을을 떠나 한참동안 아무런 말없이 걷다 세 가닥으로 갈라지는 길에서 걸음을 멈췄다. 셋은 그곳에서 입을 굳게 다문 채 진하게 포옹을 하고 악수를 나눈 뒤 서로 다른 길로 갈라섰다. 침통한 표정의 루스는 동쪽 길을 따라 갔고, 슬픈 얼굴을 한 체흐는 서쪽 길로 걸어갔고, 고개를 푹 숙인 레흐는 북쪽 길로 올라갔다. 


삼형제는 고향의 오두막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는 게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각각 도착한 곳에 마을을 세웠다. 레흐가 사람들을 모아 세운 마을은 오늘날의 폴란드가 됐다. 루스가 정착한 마을은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로 나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체흐가 세운 마을은 그의 이름 그대로 체코가 됐다.



2.


체흐는 산악지대 아래의 마을에서 데려간 사람들과 함께 며칠 밤낮을 걸은 끝에 낯선 평원에 도착했다. 강이 흐르는 너른 들판 한가운데에는 아주 신성하게 느껴지는 산 하나가 있었다. 고향의 산처럼 험하지 않고 적당히 높아 오르내리기도 편할 것 같았다. 그는 산꼭대기에 혼자 올라가 주변을 멀리까지 두루 살펴보았다. 


“우리가 정착할 장소는 바로 여기입니다. 강이 흐르고 평원이 넓은 데다 주변에 숲도 있습니다. 야생동물과 새, 물고기가 넘쳐 나는 곳입니다. 강이 흐르고 있어 농사를 짓기에도 좋겠군요. 집을 높은 언덕에 지으면 적들의 침입을 막기도 어렵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 이 곳을 ‘높은 산’이라는 뜻인 집산으로 부르겠습니다.”


체흐는 믿음 하나만 갖고 먼 길을 따라온 일행과 함께 집산 중턱에 정착했다. 그들은 집을 짓고 밭을 갈아 곡식을 키웠고, 낚시와 사냥도 하면서 소박하게 살았다. 술을 마시지 않았고 개인재산도 챙기지 않았고, 사냥용 외에는 무기도 만들지 않았다. 체흐의 말대로 토지는 비옥했고 숲은 아름다웠고 강물은 마시기에 좋았기 때문에 그들이 일군 마을은 언제나 평화롭고 풍요로웠다.


체흐는 나라를 다스린 지 20년 만에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는 자식이 없어 백성 중에서 가장 현명했던 크록이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았다. 체흐가 살아 있을 때 깊은 신임을 받았던 크록은 지혜롭고 용감하게 나라를 다스렸다. 그는 학교를 세워 사람들에게 글자는 물론 종교와 음악을 가르쳤다. 그의 노력 덕분에 많은 백성 중에서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거나, 노래를 부를 줄 모르고 신을 모실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크록은 수시로 혼자 집산 정상에 올라가 한참이나 은둔했다. 그곳에서 신을 만나 나라를 영원히 평화롭고 풍요롭게 다스릴 길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고 읍소했다. 날씨가 매우 흐렸던 어느 날 정상에 올라간 크록 앞에 신이 나타나 계시를 전했다.


“집산의 신성한 기운은 모두 사라졌다. 여기에 계속 머무르면 위기를 맞을 것이다. 서둘러 나라를 옮기도록 해라.”


크록은 머리를 조아리며 신에게 물어보았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블타바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보거라. 멀지 않은 곳에 가파른 언덕이 나타날 것이다. 그곳이 바로 너희가 살아야 할 장소다.”


크록은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평소에 신뢰하던 인물 여럿을 뽑아 신의 계시를 일러 주면서 블타바강을 따라 내려가 언덕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신의 뜻대로 강을 따라간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기에 충분한 공간을 가진 가파른 언덕을 발견했다. 


“여기는 도읍을 이루기에 집산보다 더 훌륭한 장소로구나. 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언덕인 데다 올라가는 길이 한 곳뿐이야. 안전을 확보하는 데 이렇게 좋은 곳이 있을 수는 없어. 게다가 깨끗한 물이 나오는 샘도 있고 언덕 아래에는 넓은 목초지와 평원이 펼쳐져 있어. 새 도읍 장소로는 안성맞춤이야.”


블타바 강을 살펴보고 돌아온 사람들에게서 보고를 받은 크록은 바로 결단을 내렸다. 위기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새로 발견한 언덕에 성을 짓고 마을을 만들어 모든 백성을 이주시켰다. 


“우리는 앞으로 이곳에서 수백 년 동안 살게 될 것이다. 새 보금자리가 된 이 언덕에 비셰흐라트(비셰흐라트), 즉 ‘높은 성’ 또는 ‘높은 언덕’이라는 이름을 붙이도록 하자.”



3.


크록은 결혼했지만 아들은 하나도 얻지 못했고 딸만 셋을 낳았다. 세 딸의 이름은 태어난 순서대로 카지, 테타, 리부셰였다. 세 딸은 모두 아름답고 현명하고 선량했다. 큰딸 카지는 아버지에게서 의술을 배워 약초와 식물의 치료 능력을 잘 알게 됐다. 그녀는 평생 의사로 일하면서 나라 안은 물론 멀리서도 찾아온 환자를 치료해 주었다. 둘째딸 테타는 점술과 마법을 배워 사제가 돼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 주고 어루만져 주었다. 지혜로웠던 막내딸 리부셰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처럼 미래를 보는 예지력을 가졌다. 가끔 혼자 숲속에 들어가 은둔하다 모두를 놀라게 하는 예언을 내놓곤 했다. 크록은 막내딸에게 지도자가 돼서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술을 가르쳐 주었다. 


크록은 50년간 나라를 다스린 뒤 세상을 떠나면서 막내딸에게 왕 자리를 물려주었다. 자리에 욕심이 없는 두 언니는 막내 동생의 왕위 계승에 불만을 품기는커녕 동생이 나라를 잘 다스리도록 힘을 보탰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세 자매 사이에 갈등이 생기거나 불화가 일어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문제는 여자인 세 자매가 아니라 남자인 부족 원로들이었다. 그들은 여자인 리부셰의 지배를 받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남자인 크록이 아들을 낳지 못했으면 전례에 따라 백성 중에서 가장 현명한 남자를 골라 권력을 넘겨줬어야 했다고 투덜거렸다. 그들은 리부셰 앞에서는 말을 못 하면서 늘 뒤에서 불평을 터뜨렸다.


부족 원로들이 속에 담았던 불만은 어느 날 우연한 사건 때문에 폭발하고 말았다. 땅 문제 때문에 다툼을 벌이던 두 이웃이 판결을 내려 달라며 리부셰를 찾아간 게 발단이었다. 리부셰는 비셰흐라트 궁전의 정원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 최대한 공정하게 심판하려고 노력하다 둘 중에서 젊은 사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나이가 많은 사람이 화를 내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여자에게서 어떤 정의를 기대할 수 있겠어? 여자는 머리카락은 길지만 뇌는 작은 동물에 불과해. 그들은 바느질이나 하고 실이나 잣는 게 어울려. 지도자나 재판관은 맞지 않아. 우리나라 말고 어떤 나라에서 여자가 남자를 다스려? 더 이상 이런 상황을 참을 수는 없어.”


비셰흐라트 궁전에 모인 사람들은 난데없는 상황에 모두 당혹스러워했지만 아무도 리부셰를 편들고 나서지 않았다. 뜻밖의 궁지에 몰린 데다 믿었던 사람들까지 도와주려 하지 않자 그녀는 수치심과 분노 때문에 얼굴이 벌게졌다.


“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여자예요. 그래서 여자처럼 다스리지요. 무기가 아니라 사랑으로 통치하지요. 당신은 그걸 보고 약하다고 말하는군요. 더 혹독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군요. 그렇게 해 드리지요. 당신들을 다스릴 왕을 구해 오시오. 그와 결혼하리다.”


리부셰는 분노의 말을 모두 쏟아낸 뒤 궁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아무나 갈 수 없는 비밀의 정원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신에게 기도만 드렸다. 신에게서 일의 해법을 상세히 들은 그녀는 다음날 아침 일찍 원로들을 불러 모았다. 그녀의 얼굴은 굳었고 목소리는 딱딱했으며 손은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 때문에 덜덜 떨렸다.


“나는 여러분에게 자유를 주었어요. 아무도 그걸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군요. 당신들은 남자를 원하고 있어요. 아이를 끌고 가 종으로 부리고, 가축을 세금으로 빼앗아 갈 사람인데도 말이지요. 원한다면 남자 지배자를 갖게 해 드리지요. 앞으로 여자 지배자를 모시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조심하세요. 여러분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니까요. 누군가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건 쉽지만 돌려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랍니다. 언덕을 여러 개 넘어가면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을 거예요. 그 근처에 스타디체라는 마을이 있답니다. 거기서 120걸음 정도 떨어진 작은 계곡에 프셰미슬이라는 사내가 살고 있어요. 그는 소 두 마리를 끌고 있을 거예요. 그를 데리고 와서 왕으로 삼도록 하세요. 앞으로 그의 후손이 당신들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랍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어요. 말이 그곳으로 안내할 것이니 그냥 따라 가면 될 거예요. 말이 쟁기를 끄는 사람 옆에 서서 울음을 터뜨리면 그가 프셰미슬이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원로들은 리부셰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불평을 터뜨리면서도 왕의 명령이니 할 수 없이 병사들을 강 건너로 보냈다. 병사들은 리부셰가 앞장세운 말이 인도하는 쪽으로 말없이 따라갔다. 그곳에는 정말 찢어진 신발을 한쪽 발에 신고 묵묵히 쟁기를 끄는 사내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농부’라는 뜻인 오라츠라고 불렀다. 병사들은 농부를 정중하게 궁으로 모셔 갔다. 농부는 병사들이 데리러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미리 챙겨둔 짐을 집에서 가지고 나와 길을 나섰다. 리부셰는 병사들을 따라 궁에 들어온 농부의 손에 입을 맞췄다.


“이분이 이제부터 저의 남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 왕조를 열고 왕이 될 것입니다. 새 왕조의 이름은 남편의 이름을 따서 프셰미슬이 될 겁니다.”


원로들은 다들 놀랐지만 드러내 놓고 반대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무지렁이 농부로만 생각했던 프셰미슬의 풍채와 인상이 보통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대들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결혼한 뒤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렸다. 


프셰미슬이 왕이 된 이후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그가 다스리던 나라의 인구가 날로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비셰흐라트의 공간이 부족해져 새로운 영토가 필요하게 됐다. 남편과 함께 매일 땅 문제로 고민하던 리부셰는 어느 날 밤 블타바강 건너편의 언덕 위에 건설된 도시가 크게 번성하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남편과 원로들을 데리고 블타바 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끝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꿈에서 본 대로 예언을 내놓았다.


“나는 위대한 도시를 보았노라. 그 영광은 하늘의 별에까지 닿는구나. 숲에 땅이 있으니 사냥감 30마리를 잡을 시간만큼 떨어진 곳이로다. 블타바 강이 땅을 휘감아 도는구나. 브루스니체 개울은 한밤중에는 깊고 둥근 땅을, 한낮에는 바위산을 에워싸노라. 그곳에서 문지방을 깎는 사내를 만날 것이다. 거기에 짓는 성을 프라하라고 부르게 되리라. 왕자와 부족장들은 문지방을 넘을 때 머리를 숙여 나의 도시에 경배하리라. 프라하는 명예와 칭송을 누리고 위대한 도시로 발전하리라.”



4.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는 두 개의 높은 언덕이 있다. 블타바강 북서쪽 프라하성이 있는 오피슈 언덕과 남동쪽의 비셰흐라트 언덕이 그곳이다. 프라하성은 시내에서 접근하기가 쉬운 데다 볼 만한 곳이 많고, 프라하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까지 아름다워 외국인 관광객이 좋아하는 인기 관광 명소다. 반면 비셰흐라트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 불편할 뿐만 아니라 특별히 볼거리도 없고 전망도 프라하 성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저녁노을이 좋은 곳이라는 소문이 났지만 실제로 가서 보면 그렇게 훌륭한 석양은 아니라는 걸 알고 실망하기 일쑤다. 비셰흐라트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과는 달리 비셰흐라트가 체코인에게 주는 의미는 절대 얕지도, 약하지도 않다. 이곳은 다른 어느 곳보다 중요한 체코 민족주의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체코인은 이곳에 체코의 역사가 신화와 전설의 형태로 담겨 있다고 믿는다. 체코에서 민족주의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19세기 말 많은 민족주의 지식인과 예술인이 비셰흐라트를 노래하거나 찬양하고, 1989년 벨벳혁명 때 여러 차례에 걸쳐 반정부 시위 행렬이 이 언덕에서 출발한 것은 체코인이 비셰흐라트를 바라보는 시각을 잘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프라하성이 신라의 경주, 조선의 한양, 고구려의 평양 같은 곳이라면 비셰흐라트는 단군신화가 서린 백두산, 김수로왕의 전설이 전하는 구지봉처럼 신화와 전설의 기념비 같은 장소였다. 기록, 유적이라는 객관적 관점에서 본다면 체코와 프라하의 역사는 프라하성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게 옳지만 민족주의의 전설, 신화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비셰흐라트가 역사의 발상지이자 민족주의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더라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쉽게도 비셰흐라트의 객관적 역사를 밝혀 줄 문서나 고고학적 증거는 매우 부족하다. 과거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사실상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비세헤라트에서 기원전 시대에 사람이 살았던 주거지 흔적과 당시 사람이 만들었던 원시 수준의 공예품이 발견됐지만 역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유적, 유물이었다. 하지만 비셰흐라트 전체 구역 중에서 겨우 17% 정도에서만 고고학적 조사가 마무리됐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더 조사를 진행하면 새로운 역사적 유물이 발견되고, 전설로 치부됐던 게 엄연한 역사로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체흐가 집산에 마을을 차렸다는 전설과 리부셰가 프라하 창도를 예언했다는 전설은 11~12세기 성직자이자 역사학자였던 코스마스가 1120~25년에 쓴 <보헤미아 연대기>에 처음 등장한다. 이 책은 체코 최초의 역사책이었다. 객관적인 사실도 포함됐지만 신빙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전설도 많았다. 이 책에 실린 전설 덕분에 대다수 체코인은 ‘체코라는 이름은 체흐에게서, 프라하라는 이름은 리부셰가 예언한 대로 문지방에서 나왔다’고 믿는다. 실제로 체코어에서 문지방을 뜻하는 단어는 ‘프라흐(prah)’다. 


체흐와 리부셰 전설은 교사이자 작가였던 알로이스 이라섹이 민족주의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1894년에 쓴 <고대 보헤미아의 전설>에 실린 덕분에 체코 전역에 퍼져 나갔다. 


체코의 건국 전설에는 체코인의 간절한 민족주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설이 말하고 싶어 하는 핵심은 ‘체흐는 용감했고, 크록은 지혜로웠으며, 리부셰는 신비하고 성스러운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수백 년 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기는 했지만 체코인은 어느 민족 못지않게 용감하고 지혜롭고 성스러운 조상에게서 출발한 훌륭한 민족이라는 게 건국 전설에 숨겨진 본래의 의미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폴란드, 러시아의 건국 전설에도 체코처럼 레흐, 체흐, 루스 삼형제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물론 두 나라의 전설은 체코와는 약간 다르다. 각 나라에 유리하게 각색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왜 세 나라에 삼형제 전설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 왔다. 삼형제가 헤어진 시기를 6~7세기 정도로 보는 데에는 대체로 견해가 일치한다. 물론 그 시기를 더 앞당기는 학자도 있다. 훈족에 쫓긴 게르만족이 대이동한 게 4~6세기였다고 하니 삼형제의 이동은 그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삼형제가 같은 언어를 사용했고 같은 땅에서 살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3개국 학자의 생각은 비슷하다. 앞으로 연구가 더 이어지고 각종 발굴조사를 통해 더 많은 자료가 출토되면 세 나라에 얽혀 있는 삼형제 전설의 기원이 밝혀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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