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초연 Jan 09. 2024

감각을 경외시하며

깊은 윤리관과 고독한 염세주의의 합작

감각할  수 있음에 인간이 애잔한 날이 있곤 하다.

각자의 사정이란 걸 알게 된 이상, 이해받지 못할 인간이란 이 세상에는 없는 듯하다. 눈의 깜빡임과 같이 능수능란하게 이성적인 삶을 사는 와중에도, 뇌리를 스치는 인간의 말의 힘은 대단하다. 한 사람이 뱉은 단어와 문장들이 홀연하게 떠나지 않고, 묵직하게 나의 머리를 쳐버린다. 그게 단순히 나쁜 말들만이 아니다. 한 사람의 한숨, 웃음, 조소, 땡깡 …

아침은 어머니의 걱정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 단순히 일찍 잠에 들어 전화를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셨다 하신다. 어머니의 걱정은 나로 비롯되어 그 사연에 마음이 무거웠다기보다, 인간이 지녀야 할 자식에 대한 남다른 부모의 사랑으로 마음이 요란해진다.

회사에서 오전 중, 한 사람의 한숨이 그대로 공기를 타고 와, 나의 코로 흡입된 것만 같았다. 유치원에서 아이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은 어머니인 그녀는, 마치지 못한 일로 인해 분주하면서도, 마음까지 성치 않았다. 나는 그 사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감이 오늘까지인 우리를 위해 침묵하였다.

어머니의 나를 향한 사랑, 또 아이에 대한 사랑을 무릅쓰고 오늘의 일을 완수해야 하는 의무. 모두 나를 한 번쯤은 통과해 가는 사정들. 감각할 수 있음에 아파하고, 감각들로 인해 그들에게 진 빚들이 내 마음에 벽돌처럼 하나둘씩 들어와 앉아 집을 만든다. 그 집이 지어지면, 감각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들어가서 숨어있어야 하나. 인간은 한낱 흙먼지에 불과하여, 시간이 지나면 황폐화되기 마련인데, 그 찰나에 갖는 감각으로 인해, 인간은 안고, 담고, 가져야 할 것들이 많다. 언제쯤 감각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를 자유롭게 만들까.

나의 깊은 윤리관과 고독한 염세주의가

인간의 감각을 경외하게 만든다.

나는 이로써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2023년의 소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