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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헬 Aug 26. 2021

억척 고양이의 이름은

아이들이 어미에게 밥을 줄 수 있게 될 무렵 겨울 방학이 시작됐고, 나와 아이들은 남편을 두고 셋이 여행을 갔다.

아침 일찍 나갔다 밤 늦게 돌아오는 남편은 대체 어떤 고양이한테 밥을 주라는 건지 몰라서 혼자 있는 동안 집에 오는 모든 고양이한테 밥을 줬다(그 사이 우리 집은 고양이 급식소가 된 모양이었다). 우리는 남편이 묘사하는 고양이의 생김새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걔가 걔가 아닌데. 


한 달 뒤 돌아오니 어미는 새끼들을 독립시킨 뒤였다. 아이들은 아쉬워했다.

고양이는 폐경이 없다던데, 나는 내심 우리 집 마당에서 새끼들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단한 길고양이 생활에 죽을 때까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야 한다니 너무 잔인한 묘생 같았다.

추위도, 더위도, 비도, 바람도 온몸으로 맞으며 그 많은 아기들을 쥐어짜 먹이며 살아가야 하는 야생의 생활이라니.


어미한테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로 했다. 정확히는 포획해서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가 다시 살던 자리에 방사하는 "TNR"을 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시청 축산과에 전화해서 포획틀을 받아와서 지인이 계시는 동물 병원에 미리 연락해 두었다가 이른 아침에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억척을 부리지 않고는 살아남지 않을 수 없었을 억척 고양이라고 생각했는데, 틀 안에 갇힌 어미는 어떤 운명을 예감한 건지 구슬픈 소리를 낼 뿐 저항하지 않았다. 


담요로 겉을 덮어 차에 싣고 병원에 데려가니 '아이'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그때까지 어미의 이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길냥이.라고 적었다. 

나이는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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