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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헬 May 25. 2021

이럴 때 잠깐 눈 좀 붙이면 좋을 텐데

먹을 것이 보이자 어미는 오후에도 몇 번 더 마당에 나타났다. 그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이유는 고양이 가족이 우리 가족을 피해 뒷마당으로만 움직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고기와 사람, 사람이 사는 집, 거기서 나는 소리를 어떻게 연결시킨 건지 몰라도, 이튿날 아침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설거지를 외면한 채 실없이 피아노를 치고 있으니 어미가 꼬부라진 꼬리를 세우고 거실 문 앞으로 다가왔다. 거실 피아노 자리와 고양이들의 보금자리는 벽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다음 날에는 파블로프의 개를 떠올리며 미리 고기를 해동해 뒀다가, 피아노 소리에 어미가 나타나자 문을 열고 고기를 내놨다. 어미는 화들짝 놀라 내빼는 듯하다가 고기 냄새를 맡고 돌아와서 고기를 받아갔다. 받아갔다, 라고 한 건 내 앞에서 고기를 먹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 번에 입에 담을 수 있는 만큼 고기를 입에 물고 뒤로 돌아갔다가 먹고 다시 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하며 한 그릇을 비웠다. 이렇게 맛난 걸 뺏어 먹기라도 할까 봐 그런 건지, 주는 척하고 잡아가기라도 할까 봐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목구멍이 포도청인 건 분명했다.


파블로프의 개 이후 길고양이의 조건반사를 확인해 보겠다는 포부가 무색하게, 며칠 사이에 어미는 피아노 소리와 관계없이 수시로 앞마당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계속 쇠고기를 먹일 수는 없어서 동네 마트에서 작은 사료 한 봉지를 사 왔다.


마당에 해가 제일 많이 드는 정오 전후로는 새끼들이 나들이를 나왔다. 왼쪽 어깨가 간질간질하다 싶어 마당으로 고개를 돌리면, 거실 유리문은 음소거한 텔레비전 화면이 되어 있었다. 볼륨만 높이면 왁자지껄해질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처럼, 새끼 고양이들의 한때는 소리 없이 요란했다. 화단 한쪽 물확으로 달려가 물 마시는 놈, 잔디에서 그림자놀이하는 놈, 그림자놀이하는 놈 구경하는 놈, 엄마 꽁무니에 매달려 있는 놈, 빈 화분들 속을 탐색하는 놈. 햇빛 아래 고양이는 자는 법인데, 아기들은 역시 자는 것보다 노는 게 좋은 모양이었다.


어미는 그 다섯 마리를 한눈에 살피느라 수유 시간만큼 놀이 시간도 고단해 보였다. 이럴 때 잠깐 눈 좀 붙이면 좋을 텐데. 세 시간만 연달아 자면 소원이 없을 것 같던 내 두 번의 수유기가 생각났다. 사람의 발달 과정은 고양이의 발달 과정과 달라서 젖 먹는 아기가 뒹굴며 노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지만, 어쨌든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수유하며 졸고, 노는 아이를 앞에 두고 졸기가 다반사였다. 이럴 때 잠깐 눈 좀 붙이면 좋을 텐데, 는 그 시절을 지낸 엄마가 그 시절을 지내는 중인 엄마를 보면 조건반사처럼 내뱉는 말이었다. 나의 엄마가 나를 보고 그랬듯.


고양이 가족을 처음 본 지 일주일쯤 지나서 지진이 일어났다. 아홉 살 작은율과 열한 살 큰율은 세상이 흔들린 초현실적인 상황에서 학교에 안 간다는 사실만으로 들떠 있었다. 학교에 안 가도 되게 땅이 자주 흔들렸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집에 새끼 고양이'들'이 있다고 하자, 녀석들은 지진보다 더 신나는 일이 있느냐는 얼굴로 고양이들이 나와 있었을 법한 장소들을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율들에게는 새끼 고양이도 지진처럼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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