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사나 May 05. 2023

[산티아고 1] 피니스테라에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나의 첫 번째 까미노 이야기

바야흐로 2018년도 12월 춥고 매서운 바람이 일어나고 방 안에만 있었던 그때. 용기를 내서 심리 상담사님을 만나러 갔다. 그 당시의 나는 모든 것이 피폐해졌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의 에너지로 가득했었던 24살이었다. 원래는 도전적이고 쾌활하고 당당했는데 어쩌다 보니 학교 심리 상담사분이 내 앞에 있었다.


살은 쭉쭉 빠졌고 입맛은 없고 살기 위해 바나나를 먹었다. 한입 바나나를 먹었는데, '이 바나나는 왜 바나나이지?', '바나나인데 왜 맛이 없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콤하고 몸에 좋은 영양을 주는 과일이 아닌, 살기 위해 먹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바나나를 사도, 입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된 원인은 '원벽주의 성향'이었다.


24살 대학교 3학년의 나. 2018년도 1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21학점 전공, 원어강의 3개, 대외활동 멘토링, 알바까지 일주일 내내 쉬지 않았다. 영어도 입 벙긋하지 못했던 나는 샤워할 때, 걸을 때, 밥 먹을 때 '영어 공부'에만 몰두했다. 그때로 돌아가라면 다시는 돌아가기 싫을 정도로 했다. 전공서적을 달달 외운 덕분에 원어강의 1개는 A+을 맞았고, 교수님과 1:1 커피타임도 가지고, 3개월 만에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방학 동안은 대외활동 멘토링 활동을 했는데 캠프를 가는 도중에 숨이 막혔고, 어지러움증을 호소했다. 결국 화장실에 달려가 토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중학생 멘티들을 두고 프로그램을 먼저 끝낼 수밖에 없었다.


쓰러지거나 병원에 실려가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병이 생겼다. 또 실패했다는, 또 누군가에게 폐를 끼쳤다는 생각이 잠식했다. 2018년도 2학기는 결국 휴학을 했다. 그런데, 또 발진한 '완벽주의 성향'. 일주일만 쉬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목표를 정했다. '그래, 내가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건 목표가 없어서야!' 이 정도면 목표강박증이다. 쉬어야 할 타이밍에 오히려 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또 달린다...


그렇게 6개월 동안 500만 원을 모았다. 몸은 아는지 피부에 점점 붉은 기가 올라왔고, 따가울 때도 있었지만 참고 일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하는 일종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인 <디즈니 랜드 인턴십>을 지원했다.


'로사나야, 미안하지만 아빠를 생각해서 디즈니랜드 인턴십을 포기하는 건 어때?'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6개월을 달려왔는데 이만 포기하는 게 어떻겠냐니... 친언니의 조언에 무력해졌다. 그 이유는 즉슨, 아빠의 갑작스러운 병세로 금전적인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원래는 교환학생을 가려면 적게는 800만 원 크게는 1000만 원 이상이 나간다. 이것을 알고 있는 나는 500만 원도 턱없이 부족하기에 더 모으려고 했고, 여러 장학금도 검색했다. 하지만 돌아온 가족의 이야기는 미국은 그 이상의 돈이 더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족은 더 도와줄 수 없고 가더라도 스스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500만 원을 더 모으기에는 어렵다 판단하고, 목표를 포기했다. 그렇게 얻은 건 시중의 500만 원과 우울증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29살 사랑니를 뽑고 나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