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이렇게 늙고 싶다
나이를 먹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거울 속 모습이 매일 똑같아 보여도, 미묘하게 나이 들고 있음을 의심한다. 그러다 눈치 없는 스마트폰이 신명 나게 “과거의 오늘”을 띄워주면 새삼스럽게 실감한다. 그래, 산다는 건 결국 죽음을 향해 걷는 일이다. 당장 1초 뒤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늙는다. 앞으로 숨 쉴 모든 순간 중에 지금이 가장 어리다.
그러니까 또 이 확신의 계획형 인간은 어떤 할머니로 늙을지 곰곰이 생각한다. 아무래도 사람은 본 대로 배우는 법이라, 오며 가며 마주친 어르신을 주의 깊게 보게 되더라.
길에서 마주치는 어른 중에 닮고 싶은 언행을 보이는 분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나이 많은 어른을 존중하고, 그분이 살아오신 시간과 이룩하신 삶의 이력을 존경한다. 하지만 나이가 완장인 양 거들먹거리며 보여주시는 이기적 행태까지 이해할 수는 없다. 그냥 나이만 먹은 늙은 사람과 시간에 맞게 지혜와 덕을 갖춘 어른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래서 어떤 어른은 반면교사로 삼고, 어떤 어른은 롤모델 삼아 미래 모습을 그려봤다.
결론적으로 나는 ‘알잘딱깔센’ 할머니가 되고 싶다.
알잘딱깔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에서 살짝 변형해서 ‘알고 싶고 잘 살고 딱 필요한 말만 하고 깔끔하고 센스 있는’ 할머니.
‘알’고 싶다는 건 결국 이 사람과 대화를 지속하고 싶은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전히 읽고 쓰는 할머니이고 싶다는 뜻이다. 눈이 흐려지고, 귀도 멀어지겠지만, 닿는 데까지는 말이다. 나이 들어서도 새로운 걸 배우고, 지적 갈증을 느끼는 삶. 내 안에 담긴 것들을 풀어놓고 나누며 늙고 싶다.
‘잘’ 사는 게 가장 중요한 덕목 아닌가? 늙어서 자식이나 나라에 아쉬운 소리는 하기 싫다. 물론 내가 젊어서 저장한 몫은 정당하게 돌려받아야겠지만. 한 푼 두 푼에 목을 매는 할머니는 되기 싫다. 집안일이 적성에 안 맞으니 더더욱 젊어서 열심히 벌어야지. 늙어서 잘 나가야 하니까…
‘딱’ 필요한 말만 하는 건 정말 반면교사로 배웠다. 조곤조곤, 너무 시끄럽지 않고 차분하게. 말이 많으면 실수가 생기고 허점이 보인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세상 이치를 통달할 리 만무하니 필요한 만큼의 말만 딱 할 수 있어야겠다. 남의 집 제사상 기웃거리며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노인은 정말 딱 밥맛이라서.
‘깔’끔은 젊어서나 늙어서나 중요한 요소다. ‘학생 때는 교복이 제일 예뻐!’하는 뭇 어른들 말씀처럼, 노인은 깔끔하고 정갈할 때 가장 아름답다. 할머니, 할아버지 패피들은 물론 멋있다! 하지만 지금도 베이식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내가 늙어서 갑자기 패션 감각이 폭발할 일은 없다. 휘황찬란하고 요란한 차림보다 깔끔하게, 군더더기를 싹 뺀 어른의 모습을 갖추고 싶다.
‘센’스 있는 할머니는 다정하고 따듯할 거다. 가령 버스에서 젊은이 앞에 서서 헛기침하지 않는 것, 자리를 양보하는 이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는 것, 피곤에 지쳐 잠든 이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든 ‘할머니~’하고 정겹게 부를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자, 그럼 알잘딱깔센 할머니를 향하여 젊은 날을 열심히 살아보자. 오늘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