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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라기 Dec 26. 2020

거칠고 매력적인 근미래의 상상력

넷플릭스 <러브, 데스+로봇> 꼭 봐야 하는 네 가지 에피소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유토피아’라고 하고, 인류가 아무리 오래 살아 봤자 세계 평화 같은 건 오지 않을 거라는 자조 섞인 시각 아래 탄생한 암울한 미래 세계는 ‘디스토피아’라고 불리며, 핵전쟁이든 좀비든 감염병이든 뭔가가 원인이 되어 멸망한 뒤의 세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불린다.

즉 우리가 상상하던 ‘미래’가 가까워짐에 따라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은 점점 더 부정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인데, 나는 이것이 연말과 연초에 사주팔자와 타로를 부지런히 보러 다니는 심리 상태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안 좋은 얘기는 ‘원래 나 사주같은거 잘 안 맞아’라며 한 귀로 흘리고, 몇 달 안에 인연을 만난다든지 고민하던 일이 풀릴 것 같다는 좋은 얘기를 들으면 일기장에 적어 놓고 철썩같이 믿는 그런 마음 말이다.

누구나 다가올 미래는 지금보다 나았으면 하고 바라지만, 현재를 살아가다 보면 희망은 점차 빛이 바랜다. 때문에 ’이런 일은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며 최악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가장 큰 공포는, 코로나19가 그랬듯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러브, 데스+로봇>을 감상하다 보면 아마 여러분도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러브, 데스+로봇>은 <나를 찾아줘>의 감독이기도 한 데이비드 핀처가 제작에 참여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다. 10분 내외의 짤막한 18개의 에피소드는 모두 로봇이나 인공지능 같은 첨단기술과 인간이 얽혀 있는 소재를 다루는데, 각자 매우 뚜렷한 연출을 가지고 있어 서로간의 접점은 전혀 없다. 전형적인 2D 애니메이션 그림체가 있는가 하면 깜짝 놀랄 만큼 섬세한 CG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포스터에는 ‘NSFW’라는 단어를 낙서처럼 연출해 놨는데 이는 ‘Not safe for work’의 줄임말로 한국에서 ‘엄빠주의’처럼 쓰이는 영어권의 신조어다. 실제로 꽤 난폭하고 강렬하며 거친 컨셉을 유지하고 있는데 유저들의 반응이 매우 좋아 시즌2 제작이 확정됐다.


<러브, 데스+로봇> 또한 결국은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이런 미래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할수 있을까라는 것. 다양한 맥주를 즐기고 싶을 때 주문하는 샘플러처럼, 미래에 대한 신선한 단상을 감상하고 싶다면 추천하는 작품이다. 특히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네 가지를 골라 봤다.






#지마 블루
비주얼보다는 그 안의 메시지가 좋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작품을 발표하기로 유명한 ‘지마’라는 천재 화가가 은퇴 기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스토리인데 사실 이 지마는 로봇이다. 로봇이 어떻게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유명세를 얻었으며, 무슨 이유로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것인지를 다루고 있다. 천천히 감상하며 줄거리를 곱씹어 보기 좋은 에피소드다.

#슈트로 무장하고
  보면  좋은 작품이다. 처음 볼 때는 해충을 물리치는 농부들의 전투를 흡입력 있게 표현한 영상미를 즐기면 된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다음 화 자동재생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에 재빨리 스크롤을 처음으로 돌리시게 될 것이다. 이후 등장 인물들의 표정과 대사에 주목해 보자. 1회차와 달리 가슴을 때리는 뭔가가 새겨지게 된다.

#무적의 소니
짧고 자극적이다. 중요한 것은 재밌다는 . 초반부가 약간 루즈할 수 있는데 전체 분량이 17분 남짓이니 초반이라고 해봤자 1~2분 정도다. 주인공인 ‘소니’는 뇌파를 통해 텔레파시마냥 괴수를 조종해 싸우는 지하 투기장에서 괴수 ‘카니보어’와 함께 연승을 거두고 있다. 거액의 판돈이 오가는 곳이다 보니 당연히 그를 시기하거나 이용하려는 세력들도 많다. 무적의 신화를 쌓고 있는 소니가 카니보어 없는 투기장 바깥에서도 최강이 될 수 있을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어설프게 기술력만 보여주다 끝난 다른 몇몇 에피소드와 달리 줄거리에 안정감이 있고 연출도 나쁘지 않다.

#독수리자리 너머
앞에서도 말했지만 일부 에피소드의 경우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줄거리의 몸통 부분을 뚝 떼 온 것처럼 완성도가 부족한데, ‘독수리자리 너머’는 이해가 쉬운 기승전결을 잘 담아낸다. 이는 알래스테어 레이놀즈의 단편집 <Zima blue and Other stories>에 실린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마 블루’ 또한 이 소설이 원작이다. 지구로 복귀하려는 우주선이 독수리자리 근처에서 불시착하며 승무원들이 깨어나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SF 호러 장르를 좋아하신다면  보시기 바란다. 특히 실사에 101%이상으로 가까운 인물 그래픽이 매우 놀랍다.


<환상특급>이나 <기묘한 이야기>류의 짤막하고 신선한 소재들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적극 추천이다. 특이한 점은 시청자마다 에피소드 순서가 랜덤하다는 것이다. 정주행과 역주행, 몰아보기와 1.5배속 건너뛰기가 난무하는 춘추전국 스트리밍의 세상 속에서 시청자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한 넷플릭스의 시도 중 하나라고 한다.


필자의 경우 ‘독수리자리 너머’는 두 번째, ‘무적의 소니’는 네 번째, ‘슈트로 무장하고’는 아홉 번째, ‘지마 블루’는 맨 마지막 순서였다. 이 리뷰에서는 추천도를 기준으로 나열해봤는데 만약 위와 같은 순서로 에피소드가 배치돼 있으면 운명이라고 생각하시고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다만 작품마다 폭력성과 선정성이 꽤 높은 점은 감안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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