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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Dec 25. 2023

개명의 변 그 후

본래의 내 이름과 개명한 이름이 같은 자 인지를 서류를 통해서 증명하라는 어이없는 사건 이후 결국은 나는 박사학위기와 개명사실이 들어 있는 초본을 보여주고 사건을 마무리하였다.  대표자격이 있는 두 사람이 동석하여 일을 마무리하라는 독촉에 마무리하였으나 나는 결코 그 서류들을 보여줄 의무도 책임도 없다. 아니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폭력이다.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궁금하면 물어보는 것이지 왜 그 인간에게 서류로 사실을 확인해줘야 하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아무튼 그날 이후 내게는 하나의 생각시계가 멈추어버렸다.  거짓증거를 사실처럼 포장하여 확신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옮겨 다니며 그 사실을 떠 벌렸을 그 인간에 대한 의문이 떠 올랐다. 나는 어쩐지 너무 억울하고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되갚아 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내가 뒷조사 다해봤어요-과도한 사생활 침해죄

개명은 사실일 수 있어요-확실한 오측으로 인한 오해발생유도, 명예훼손죄

박사학위가 사기래요-명예훼손죄 내지 모욕죄

그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사생활침해와 스토커


이런 말들을 함부로 해대면서 뒷조사를 했다는 것 아닌가. 이모든 것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범법행위다. 도대체 나에 대해 얼마나 조사를 했던지 내 이름의 한자를 말하면서 진위를 따지는 어처구니를 경험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학사학위도 변변히 없는 동네이니 박사학위는 넘사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질투심과 자격지심이 발동하였으리라 추측해본다. 거기에 동조하고 입을 맞추었을 여러 사람의 치졸함에 역겨움이 밀려온다. 이유야 어떻든 심각한 범죄행위다.


하여, 지역사회에 있으니 인간취급을 안 하면 되겠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뭔가 물리적인 비용을 물릴 수는 없을까. 그렇게 무례하게 폭군처럼 목소리를 높이며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고 남의 사생활에 대해 물고를 낼 만큼 헤집고 다녔으니 댓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하여 비용을 물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본다.


그냥 내버려 두기엔 아무래도 부족하다. 내가 그 인간을 소외시키고 상종하지 않는 것으로는 모자랐다. 아마도 그는 정의를 실행하다가 일어난 잘못일 뿐이라고 다시 누군가에게 떠들고 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언젠가 그렇게 누군가의 잘못인지(?)를 헤집어 성공한 적이 있다 했으니 그 일과 함께 떠벌리고 다닐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자신의 성공담을 내세우면서 우쭐대면서 아직도 그날에 자기가 사과를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며 내가 고집스럽게 보여주지 않아서 그리되었다고 뒤집어 씌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아서 일이 그리 된 것이라고 변명을 하면서 나를 고집스러운 사람이라 치부할 것이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생각지도 않고 억울하다고 할 것이다. 기막힌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가 언제 적 일을 가지고 무용담을 삼아 사람을 의심하고 추적하면서 성공을 했는지는 몰라도 또 그로 인해 많은 실수를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더불어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문제는 최근 몹시 강화되어 동사무소에서조차도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 상황이지 않는가. 개인의 일이 아무리 궁금해도 그건 추측이고 추상이어야지 추적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추적한 것의 진위여부도 모른채 그것으로 무기 삼아 사람을 공격하고 의심하는 것은 치졸한 범법행위이며, 처벌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런 행동을 지속한다면 자신만 실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설자리마저 잃게  것이다. 게다가 범죄행위이기에 언젠가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이런 때에 어머니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나는 생각했다. 그때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며 무너지지 않은 것은 어머니 덕분이다. 내가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가끔 있다.  전 남편의 소비적 경향은 영웅심리까지 가해져 가진 것에 비해 소비가 과했다. 벌지 못한다면 쓰지를 말아야 하지만 그는 나를 기대어 흥청거렸다. 그것은 내게는 큰 고통이었다. 가장이 되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데 남편이란 작자가 무책임하고 무례하니 말이다. 그는 곧잘 자책의 술버릇으로 이어졌다. 주사가 심해서 한말을 여러 번 하면서 강요하기에 이르고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려고 상대의 자존감을 내리 깎다가 잘 안되면 소리를 지르면서 들어보지도 못한 욕설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말없이 참아 주었으나 점점 증세가 심해져 다툼이 잦아지고 나는 큰소리를 내게 되었다.  전 남편은 종국에는 내 인격을 깎아내리고 짓누르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여자인 내가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고 오히려 잘못했다고 말할 것이라 기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 시대에 많은 여성들이 그렇게 살아야 했으니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당시의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잘못된 것에 대한 사리분별은 할 줄 안다. 세상의 많은 여자들이 그렇게 살 때, 어머니도 아버지로부터 그러한 일을 강요받을 때 끝까지 아닌 것은 아니라고 했던 것이다. 목소리는 차분하고 작지만 이긴 싸움을 하는 어머니를 보았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큰돈은 못주지만 돈을 줄 때마다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잘 살아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전남편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훤히 알고 계셨다. 전남편의 낭비벽과 더불어 한량으로 살아가는 살림살이를 모를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내게 무례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보통 사람, 아니 그보다 더 못난 옹졸하고 편협한 사람이다. 무례한 자들의 대부분이 편협하고 옹졸하다.


그 덕분에 나는 어머니로부터 옳은 것을 향해서는 꺾이지 않는 마음을 배웠다. 옳다면 외유내강의 약하더라도 끝까지 꺾이지 않는 정신을 보았던 것이다. 무례한 인간으로 부터오는 멈추어진 생각시계가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모르겠다. 혹시 무례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런 무지막지한 일을 벌인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 주변에 역겹도록 치졸하고 무례한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다. 


수많은 사람들과 거짓으로 점철된 모래를 쌓아 파당을 지으면서 입을 맞추고 폭력적 행동을 하는 치졸한 인간들에게  무례와 악의를 어떻게든 나는 되갚아 주고 싶었다.

사진-내가 강의중인 어느 강연장에서(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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