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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Feb 13. 2024

다정한 고향, 쓸쓸해지다.

사촌동생 부고

다정한 고향, 몹시 쓸쓸해지다.     


명절이 되어 고향에 가면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따뜻하고 다정합니다. 포근한 느낌과 더불어 사람들의 어떤 말도 다 알아들을 것 같고 어떤 오해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몹시 쓸쓸합니다. 현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주식과 비트코인, 그 찬란한 이름 때문입니다. 자본과 금융은 찬란하나 개인은 모두 희생자가 된 설날 아침입니다.


설날인 10일 아침부터 우리는 모두 그를 찾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떡국에 만둣국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촌 동생이 며칠째 오리무중이란 것이었습니다. 전날 밤에서야 실종신고를 내고 우리는 닥쳐올 소식에 모두 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우리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엄청난 일을 겪었던 것이 틀림없으며 그것이 가져올 파급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충주는 말이 어눌하고 느립니다. 사람들의 행동이 빠르지 않고 우회하는 말하기를 합니다. 절대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상처받을 것이라 생각되면 더욱더 직접 말하지 않고 심지어 며칠씩 끙끙 앓으며 어떻게 말할지 고민합니다. 따라서 충주 사람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는 상당히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한 번 신의를 얻으면 인심이 그렇게 후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후한 인심을 가졌습니다. 다만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면서 설레발을 치지 않습니다. 어떤 큰일이 닥쳐도 인내하면서 참아냅니다. 우회적인 말하기를 하므로 그 사람이 정말 슬퍼하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우리는 모두 말없이 새벽 강가로 갔습니다. 남한강은 수량이 풍부하고, 특히 충주는 댐이 있어 더욱 수량이 풍부하고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바람은 맑고 다채로우며 사람들은 조용조용합니다. 삼면이 바다로 싸여 있는 반도 국가이지만 충청북도는 바다를 만나는 길이 없습니다. 대신에 웅대한 강을 품고 지류가 사방에서 흘러들어 한강으로 갑니다. 그 품이 바다처럼 넓고 풍부합니다. 바다처럼 강물은 잔잔하고 넓고 푸르고 깊습니다.


강가에서 핸드폰 신호가 잡힌다고 합니다. 모두 화들짝 놀라서 강가로 갔습니다. 수색대원들은 이미 그를 발견했다고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손짓했습니다. 강가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익숙한 조카의 차가 보입니다.


번개탄의 본래 용도는 불을 빨리 피워 주변을 데우고 추위를 몰아내는 것이지만 때로는 살인 가스를 뿜어 사람을 다른 세상으로 보냅니다. 많은 사람이 살인 가스를 이용해 유명을 달리하여 번개탄에는 다른 용도로 쓰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붙었습니다. 그는 번개탄을 피우고 차의 창문을 꼭꼭 닫고 다른 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얼굴은 검게 변했고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의 누이는 슬픔에 복받쳐 너무나 큰 충격에 휩싸여서  울음을 그칠 줄 모르고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너무나 슬퍼서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례 기간 내내 그의 울음소리가 공간을 메웠습니다. 동생이 그렇게 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거기 모인 우리는 모두 자본의 무식하고 거대하고 음흉한 검은 그림자를 느꼈습니다. 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그저 슬프게 꺼이꺼이 우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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