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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Mar 13. 2024

하이퍼시, 수퍼비니언스, 시뮬라크르

문덕수의 시를 중심으로(2023. 12.4 심산재단 포럼 강연발표문)

신박한 모더니스트 문덕수 시인

심산문학진흥회 문덕수 문학상 1부 포럼 발표 김신영     

문덕수 시인의 시의 세계를 최근의 이론을 통해서 접근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문덕수 시인이 평소에 주창한 모더니즘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의 시를 통해서 더욱 모더니스트 적인 이론으로 전개하고자 한다.

그는 생전에 12권의 시집과 1권의 장시집 등 총 14권의 시집을 발행하며 왕성하게 활동하였으며 다수의 시선집이 있다. 문덕수 시인이 문학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할 것이다. 특히 1973년 월간 시문학을 인수하여 결호 없이 50년의 성상을 쌓은 공적이 크다.

    문덕수 시인은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1028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 195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고 수많은 시집과 평론집, 문학이론서를 출간하였다. 홍익대 교수를 지냈고, 한국 현대시인협회 회장, 국제 펜 한국본부장, 문예진흥원 원장 등 굵직한 보임을 거쳤으며,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였다.      

모더니스트를 자처하면서 신박한 문학 이론들을 펼치며 시단 활동을 하였다.

그의 이론을 중심으로 시의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이퍼 Hiper

과도하거나 과다한의 의미와 초월하다 또는 넘어선다는 의미가 있는 하이퍼는 틈이 있는 두 세계의 연속 연결되는 형식에 있다 할 것이다. 이는 비 인과이자 비선형이며 비고정 탈 중심 탈관념의 세계로 이어진다. 또한, 하이퍼는 쌍방향의 의미도 담고 있어 한 방향 일변도의 기존의 문학 세계에서 진일보한 상태다 할 것이다. 즉 돌멩이가 돌멩이를 넘어서 탄환이나 칼로 전환하는 것이 하이퍼 시의 형식이다. 다시 말해서 사물과 상상의 두 이미지의 초월성을 연결하는 것이다.      


트럭이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내게도 그런 빈자리 있으리//하늘이 기다란 파초처럼 한 잎 한 잎 내려오는 빈 도시의 골목에/바람의 입자들이 꼭대기까지 꽉꽉 채워져서/굳은 입체로 흐른/고층빌딩들도 좌우로 비켜서서 감히 범할 수 없다.//단절과 연속의 불꽃을 뿜는/너와 나 사이에도/탄도 彈道들이 비켜가는 무너뜨릴 수 없는 빈 골목이 있다./코소보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그리고 DMZ의 철조망 속에도/죽음이 비켜서 가는 빈 길이 있다.//사람은 제 빈자리에서/앉고 눕고 서고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손을 흔든다/그 여백이 그대로 무덤이 될지라도.                                                      -「빈자리」     


트럭이 사라진다는 것은 있으나 없어진 것을 의미한다. 같은 공간임에도 하나는 채워져 있던 공간이었으나    시간의 차이로 인하여 비어 있는 공간인 것이다. 이 공간은 더욱 극대화되어 ‘내게도 그런 빈자리 있으리’라고 하며 채워져 있었으나 비워진 자리를 지목한다. 그것은 허무의 의미이자 존재의 의미이다. 빈 도시이고 빈 골목에 분명 무언가 꽉꽉 차 있는데도 그 공간은 인간의 시각으로는 비어 있다. 그러나 시인은 채워진 공간을 본다. 그것은 감히 아무도 범할 수 없는 공간이라 할 것이다. 즉, 단절과 연속의 불꽃이 공존하는 세계이다. 그곳은 전쟁터이기도 하다.

문덕수 시인은 전쟁의 상흔을 곳곳에서 노래한다. 분명 전쟁이 사라진 공간이나 그의 의식은 불꽃을 뿜어대는 전쟁터에 있는 것이다. 지금은 빈 곳이나 그곳은 분명 트럭이 있고, 탄도가 불을 뿜던 곳이다. 또한, 그 길은 죽음이 공존하면서도 죽음이 비켜 가는 길이다. 포탄이 날아오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시인의 의식은 그 치열한 현장의 시간에 선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간극이 멀지 않고 가깝던 그곳에서, 앉고 눕고 서고 눈을 뜨고 귀를 열어 손을 흔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쟁의 비극 상은 극대화되어 드러난다. 그것은 무덤과도 가까운 곳이며, 어떤 여백은 그대로 무덤이 되는 상태다.


          

슈퍼 비니언스 Suprvenience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물리적인 것으로 명명한다. 다시 말해서, 언어는 보이지 않으나 언어가 실행되는 순간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는 물리성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언어는 사고와 개념을 이데올로기나 사상을 물리적인 것에 얹어서 따라가거나 운반한다고 본다. 자신이 체험하고 인식한 물체와 관념을 표현하는 형태인 것이다. 그것이 슈퍼비니언스의 개념이다.

    슈퍼비니언스는 ‘실려 운반된다’는 말로 관념이 물리적인 존재에 부수된다는 것이며 또는, 관념이 물리적인 것에 붙어서 따라간다는 것이다. 종래의 비유나 상징도 이 범주에 속하나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시인은 사물이나 대상을 상상하고 생각하며 언어로 표현하는데 이때 사물이나 대상의 의미는 과거에 체험하고 인식한 물체, 또는 사건이나 관념이다.

즉, 언어에 실려서 운반된다는 것은 ‘물리성’이라 할 수 있다. 즉 언어가 어떤 물체를 지향하여 그 물체를 표상할 수 있음은 언어의 물리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때의 사물 이미지는 언어의 외재적인 특징과 더불어 그 물리성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문덕수 시인은 말한 바 있다. (슈퍼비니언스의 원리, 문덕수, 2009, 시문학아카데미 강연 중)

이러한 언어의 물리성은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그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는가 하는 용법이나 용도, 또는 기능을 통해서 물리성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유리 상자 속에 다리를 포개고 서서

유행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은 마네킹은

아침저녁 출퇴근 길의 내 거울이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고

너를 인형이라고 생각하는 나를

실은 비웃고 있다.

오늘은 선글라스를 끼고

새 스타일의 투피스를 갈아입었으나

저같이 유리 상자 속에 갇혀

시종 변함없이 꼼짝하지 않고

마치 영원인 양 그대로 앉아 있는 모습이

실은 내 삶의 결산이리

오 마네킹이여 마네킹이여

시들어 굳어가는 내 영혼이여

                                                   -「마네킹에게」   

  

마네킹의 물리성은, 백화점 같은 진열장에 세워놓고 유행복이나 장신구를 입혀, 사고 싶은 욕망을 유발하는 인체모형이다. 마네킹의 용도나 기능에서 알 수 있듯이 백화점에서 욕망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라이터나 TV, 휴대전화나 종이 등의 물리성도 용도나 기능에 따라 그 물리성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물체의 물리성은 기존의 관념을 그대로 갖기보다는 본래의 관념에서 벗어난 탈관념의 물리성, 또는 날것의 물리성이 중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물의 외재적 특징과 물리성은 정확한 사물의 언어를 벗어나 이미지즘의 모호한 개념을 어떤 관점에서든 분명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시에서 모든 관념은 어떤 형태든 물리적 존재에 실려 운반되어야 한다는 슈퍼비니언스의 원리에서 물리적 존재나 그것에 실려 운반되어야 할 관념은 가급적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이면 좋겠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였다. 즉, 슈퍼비니언스의 개념은 이미지즘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의 일환이기도 하다.   


       

시뮬라크르 Simulacre         

시뮬라크르에 대하여 논한 사람은 많다. 그중 대표적으로 플라톤과 질 들뢰즈, 장 보드리야르의 견해를 빌어 문덕수 시인의 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시뮬라크르는 여러 의미로 해석된다. 모방과 모사의 의미가 있으나 들뢰즈와 보드리야르는 다르게 본다. 즉, 모방과 모사를 넘어서 가상을 현실로 느끼는 것이며 실재를 모사한 파생 실제로 보고 이를 새로운 세계의 창조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플라톤은 시뮬라크르를 모방과 모사로 보고 이를 부정적으로 여겼으며 예술가는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데아는 원형이며 시뮬라크르는 이를 모사한 모방이기에 거기에 본성이 없다고 본 까닭이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고 20세기에 들어서야 시뮬라크르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시작된다.

새롭게 조명한 사람으로 먼저 들뢰즈를 꼽는다. 그는 푸코가 극찬하였듯이 폭풍을 몰고 오는 철학자로 유명하다. 그의 <차이와 반복>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변화의 주역이 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시뮬라크르는 단순히 사본이 아니라 원형 물마저 전복시키는 것이다. 모든 사본을 전복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새 포도주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면서 시뮬라크르는 새로운 원본이자, 새로운 의미로 보고 기존의 위계질서를 전복시킨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서 만화영화의 주인공인 미키마우스의 경우 본래 사람들이 혐오하는 동물로 지저분하고 병을 옮기는 대명사였으나 만화영화의 주인공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로 전복되었다. 미키마우스는 새로운 의미를 지니며 무한한 역동성을 갖고 사람들과 친근한 대상이 된 것이다. 어린이와 사람들에게 미키마우스는 꿈을 갖게 하고 재미를 주는 요소로 전복되며 탈바꿈한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를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만든 대체물로 보고 이전과는 관계없는 독자적인 원본이라고 하였다. 즉, 그것은 새로운 원본이자 독립적인 존재인 것이다. 용에 관한 설화나 역사적 드라마의 간극을 메우는 일은 수많은 전설과 신화와 더불어 작가의 창작에 의해 새로운 원본이 된다. 이때, 실제보다 더 실제가 되며 사실로서의 역사보다 더 설득력 있는 역사가 되어 연구가치가 있는 새로운 역사가 된다. 그러한 새로운 원본들에 올더스 헉슬리의 <놀라운 신세계>나 영화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파친코> 등이 있다. 이들은 새로운 원본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명저들이다.     


선이/한 가닥 달아난다/실뱀처럼,

또 한 가닥 선이/뒤쫓는다

어둠 속에서 빛살처럼 쏟아져 나오는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선이/꽃잎을/문다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피어 나오는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꽃이

//찢어진다/ 떨어진다/거미줄처럼 짜인

무변(武弁)의 망사(網紗)

찬란한 꽃 망사 위에

동그란 우주가/달걀처럼

고요히 내려앉다.

                                                   -「선에 대한 소묘. 1」     


이 시는 질 들뢰즈와 장 보드리야르에 의해 새로운 원본의 탄생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즉, 선을 통하여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여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루어 볼 때 문학은 대개 새로운 원본의 탄생을 의미하는 바가 많다. 특히 판타지 세계를 그린 작품이 그러하다. 또한, 판타지의 세계는 최근 시와 소설과 영화계를 이끌어가기도 한다. 그 작품들로 수많은 상상력이 넘치는 시와 이미예의 <달러 구트 꿈 백화점>과 영화 <나니아 연대기> 등도 더불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의 의미로 대두된 것은 입체적인 세계다. 입체적인 것과 단선적인 것의 세계는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으나 시인은 이를 형상화하면서 입체적인 세계로 전환한다. 이것이 문덕수 시인의 시뮬라크르라고 할 수 있다. 선의 연결 선상에서 선이 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세계로 재탄생한다. 이것은 선의 세계에서는 만날 수 없는 것이며 입체화된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신박한 이미지라 할 것이다.

선 한 가닥이 달아나고 그는 실뱀처럼 서로 쫓는다. 그것은 이어지는 현상에서 단선적인 선이 실뱀이 되어 입체적인 꽃잎을 무는 것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어둠에서 불꽃처럼 꽃이 피어난다. 그러나 한 송이 꽃은 이내 찢어지고 떨어진다. 이것은 세계의 다양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세계는 이렇게 선과 입체가 만나 무변의 망사를 이루며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작은 세계가 아니며 달걀처럼 둥그런 우주다. 그 우주가 고요하게 내려앉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선형의 세계가 입체의 세계로 전환하여 우주가 되어 내 곁에 고요히 내려앉아 있는 상황이라 하겠다. 이는 이전과는 다른 세계의 모습이다. 선의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며 입체화되어야 구체화하여 우리 주변에 나타나는 세계인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새로운 원본이자 독립적 존재인 시뮬라크르는 이전의 세계에서 비춘 모습과는 아주 다른 형태로 재창조된 것이다. 이에 그 의미 또한 이전의 의미와는 상반된 것으로 새로운 해석과 적용이 필요하다.

이전에 있던 것이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여 새로운 원본이 된 것이다. 이전과 비교하면 현격하게 차이를 갖는 원본이며 독자적인 작품이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원본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발표자

김신영 중앙대 문학박사, 홍익대 대전대 등 강사 역임, 현, 푸른사상문화학교, 이천문화재단 강사  

신죽란시사 문화연구소 소장     


    <출간도서>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문학과 지성사, 1996),『마술상점』(시인수첩 여우난골, 2021), 평론집『현대시, 그 오래된 미래』(한국학술정보, 2017), 시창작론집『아직도 시를 배우지 못하였느냐』(행복에너지, 2020) 외다수     


 <수상>

2016, 2019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 2019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 2016년 한글문화대상, 2019년 기독교 작품상, 2023년 심산진흥재단 시문학상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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