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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 Jun 05. 2022

연극 <기후비상사태 : 리허설> 끄적 노트


장소 :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 기후 위기, 어렵고도 먼 주제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작가 혹은 연출가의 이기심과 이타심을 꾸준히 의심하고 저울질하며, 그의 본심과 이면 사이를 어지럽게 캐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주제보다도 이 주제가 나를 정신없이 돌아다니게 한다. 연출가도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연극 속 암전 상황에서 오롯이 명징한 빛처럼 드러났듯이, 나는 이곳에서 관객들과 함께 호흡을 주고받고 있었고, 강제로 2시간 동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충실하게 지구 멸망 1분 전이라는 리허설 상황으로 나를 이끌었다.


- 그래도 내가 기후 프랜들리하게 바뀐 점은 뭐가 있을까, 하고 고민하게 된다.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극장 밖 명동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진다. 내 삶에 ‘기후’라는 주제가 그 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 연출가의 가끔은 자학 같은 자기 고백이 솔직하면서도, 거울을 보는 것처럼 괴로웠다. 감정의 과잉도 불편했다. 아니마, 그리고 사로잡힘이라는 단어가 내 머리를 사로잡았다. 결국 이거다. 기후 변화 주제는 극단의 사회적 도덕성의 요청 같다. 쉽게 휩쓸리면 안 될 것 같은, 엄마의 품같이 확실하고 안락한 도덕의 고향 같다. 궁금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불길하다.


- 대사 “우리 만나고 있나요?”… 요즘 만남이라는 단어에 꽂힌다. 진짜로 만나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만나야 하는 걸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만남은 무엇인가?  


- “암전. 완벽한 어둠. 그리고 그 설렘.” 부분… 연극에서 가장 마음이 드는 부분이다. 정확히 음미할 수 있게 적절히 반복된 점도 좋았다. 마지막 암전에서 나는 편안했고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 기후 위기에 대해 글을 쓰러 가는 길이, 가장 기후 다움이 없었다는, 즉 자본주의의 전형이었다는 연출가의 자기 인식. 자본주의와 기후 주제의 연관성을 인식하는 연출가.


- 단체로 컵차기 하는 배우들가장 정답 같은 장면이었다.


- 연출가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심… 어떻게 기후 위기를 주제로 연극을 만들 생각을 하고 그런 dare을 수용할 수 있지, 어떻게 자기애가 가득한 자기 내레이션을 곳곳에 넣어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지, 그 뻔뻔한 이기심과 이타심의 배합 상황을 어떻게 견디고 있지, 하는 생각. 내 머리는 이보다 더 나은 것을 이미 제작하고 있는데, 실제도 그러할까 하는 두려움. 연출가에게 주어진 행운에 대한 부러움.


-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느슨하고 초현대적으로 “전부” 엮은 것 같은 것은, 연출가의 빼기 불능 문제일까, 아니면 모더니즘적 일관성에 대한 나의 강박일까. 그는 모더니즘이라는 과제가 주는 찝찝함을 얼마만큼 느낄까.


- 귀에 걸린 대사들

“동굴 그림자… 어쩌면 진짜가 싫을지도 몰라요.”

“우크라이나 전쟁… 진짜 전쟁을 하고 있다고?”

“낮은 곳에서부터 침수된다… 철학적”

“140, 160, 170…”

“광주 아파트 붕괴 현장… 함께 가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중학생 아이들의 답.. 먼지,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


- 아울러, 스웨덴 그 청소년 환경운동가 연설, 영화 돈룩업 찾아봐야겠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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