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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Jun 09. 2024

삼국지와 춘추전국에 비견될 또 하나의 '천하' 쟁탈전

중국군벌전쟁 - 권성욱(미지북스)  ●●●●●●●●◐○


중원대전은 신해혁명 이래 장장 20년에 걸쳐 진행된
군벌들의 마지막 천하 쟁탈전이자 내전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었다.



   내우외환 속에서 장제스는 자신의 고집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는 군벌들과 적당히 타협하여 내전을 조속히 마무리 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장제스가 군벌들을 완전히 평정할 수 없었던 이유는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직계부대는 30만 명으로, 200만 명이 넘는 전체 군대의 7분의 1에 불과했다. 장제스는 여러 군벌 중에서 가장 강한 군벌일 뿐 모든 군벌을 압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채찍을, 한편으로는 당근을 내밀면서 군벌들을 회유하고 그들과 타협해야 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얻은 것 없는 그저 무익한 싸움이었던가. 중원대전 이후 장제스의 권위에 무력으로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그 후로도 양광사변과 푸젠사변 등 국지적인 반란이 반복되었지만, 그때마다 장제스에게 여지없이 박살나거나 중앙에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적당한 지분을 인정받는 선에서 항복했다. 중원대전은 신해혁명 이래 장장 20년에 걸쳐 진행된 군벌들의 마지막 천하 쟁탈전이자 내전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었다. 그런 점에서 중국판 '메이지유신'은 아니더라도 도쿠가와 막부를 연 '세키가하라 전투'에 견줄 만했다.

                                                                                                                                         - p. 1195. 중원대전



 

   . 예전에 봤던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청년이 된 푸이가 자금성에서 쫓겨나는 장면이 떠오른다. 하얀 옷을 입고 테니스를 치던 푸이 앞에 갑자기 잿빛 옷을 입은 군인들이 나타나고, 그들은 푸이에게 하루이틀 내로 자금성을 비워줘야 한다고 통보한다.힘없는 푸이는 차를 타고 자금성을 떠나 푸이는 일본 조계로 가서 한량 같은 생활을 한다. 이후 만주국으로 가서 다시 꼭두각시 황제가 되지만 그건 뒤의 일. 이렇듯 영화에서는 짤막하게 다뤄진 자금성 퇴거지만, 실제로 그 사건을 중심으로 앞뒤 15년여의 기간 동안 중국 전토는 치열한 내전에 휩싸여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중국군벌들 간의 내전과 내전을 종식시킨 장제스의 북벌이 그것이다.


   . 이 시기야말로 중국 역사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알려지지 않은 시기다. 이 기간에 대해 보통의 역사책에서는 으레 저 변방에서 일어난 중국 공산당의 탄생 및 상하이에서 벌어진 장제스의 공산당 탄압 정도를 이야기하고, 그러다 갑자기 장제스가 쑨원의 유지를 이어받아 북벌을 실행하자마자(!!) 곧바로 성공하는 것처럼 다룬다. 그런 연후 보통은 챕터를 바꿔 별다른 부연설명 없이 일본이 만주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장쭤린을 폭사시키는 장면을 넣고, 장쉐량이 아버지 장쭤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장제스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장정과 중일전쟁, 시안사변과 종전, 국공내전과 장제스의 패배, 공산당의 베이징 입성.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작 푸이를 자금성에서 내몬 이가 누구인지, 쑨원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장제스는 대체 누구와 어떻게 싸운 것인지, 장쭤린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것이다.  





   어째서 쑨원은 그토록 혁명에 매달렸는가. 임시 대총통 자리를 순순히 위안스카이에게 양보했다는 점에서 '제2의 흥슈취안'이 되겠다는 야심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만약 장제스나 마오쩌둥이라면 남에게 내주느니 마지막까지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려 했을 것이다. 쑨원은 훨씬 담백했다. 문제는 권력을 향한 욕심이 아니라 만주족을 향한 증오심이었다. 야만스러운 오랑캐의 지배를 받는 한족 백성을 자신이 해방하겠다는 영웅심리에 가까웠다. 그가 말하는 공화제란 청조를 타도하기 위한 명분이지 목적은 아니었다. 공화제를 제대로 이해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반만흥한'을 외치던 쑨원은 신해혁명 뒤에는 '오족공화'로 말을 바꾸었다. 그 속내는 청제국 시절의 판도를 유지하고 만주족을 포함한 소수민족들의 분리 독립을 억압하기 위함이었다.

                                                                                                                           - p. 182. 혁명이냐, 입헌이냐


   국공합작은 중국 혁명사에서 한 획을 그은 사건이자 일대 전환점이었다. 물론 공산당과 손잡았다고 한들 거대한 군벌 세력에 견주면 쑨원의 세력은 여전히 초라했다. 그러나 국공합작의 진짜 의미는 보잘것 없는 두 세력이 합쳤다는 사실이 아니다. 암살과 테러, 군벌과의 결탁이라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고집했던 쑨원이 그제야 민중의 역량에 눈을 돌렸다. 쑨원은 소비에트 혁명을 완강히 거부하면서도 민중을 결집하고 혁명전쟁의 한 축으로 동참시켜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다. 그동안 민중을 수동적인 존재로만 여겨왔던 사고방식에서 엄청난 변화였다.

                                                                                                                                           - p. 546. 국공합작





   . 그렇게 간과되고 누락된 부분을 이 무지막지한 책은 - '아프리카의 운명'도 두꺼웠고, '몽유병자들'도 만만찮았지만 본문만 1260페이지에 부록을 합하면 14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 정도는 아니었다 - 하나하나 꼼꼼히 채워넣는다. 그렇다보니 역사책들이 '한편, 장제스는 쑨원의 유지를 받들겠다며 북벌군을 이끌고 진격해 군벌들을 무찌르고 북벌을 성공시켰다'고 한두줄 정도로 끝내버리는 역사를 이 책에서는 600페이지에 걸쳐 다룬다. 심지어 위안스카이의 하야 전후를 다루는, 대부분의 역사책에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 이야기만 해도 400페이지 정도는 된다.


   . 그래서 이 책을 읽고나면 그동안 우리가 알지도 못한 채 그냥 넘어간 15년 남짓한 짤막한 시기가 실제로는 삼국지나 춘추전국시대를 능가할 정도로 치열한 전투와 정략이 난무했던 시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짧은 기간 몇 차례에 걸쳐 '천하'의 주인이 바뀌었으며, 그들은 차례차례 떠올랐다가 몰락해갔다. 그리고 천년 전이나 이천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누구 하나 영웅호걸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이들이 천하를 움켜쥐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에 뛰어들거나, 한 발 물러나 자신의 영역에서 정세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 내전을 종식시킨 이는 이러한 군벌들의 시대가 막 시작되었을 때에는 아직 한줌의 병력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내였다니, 이 얼마나 극적인 이야기인지.


   . 예전 글에서 19세기 중앙아시아를 두고 벌어진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을 다루면서 역사란 하나씩 읽을 때는 별개의 이야기인것마냥 느껴지지만, 내용들이 하나둘씩 쌓여가다보면 역사적 사실들 간에 연결고리가 생기고, 그러한 연결고리들이 모이면 선이 되고 면이 되어 전체의 그림이 드러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게 전체의 그림이 드러나게 되면 이번에는 그림 속의 빠진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을 찾아 채워나가는 게 역사를 읽는 묘미가 된다. 그동안의 내게 있어 1920년대의 중국사는 몇몇 부분만이 조금씩 드러난 퍼즐이었고, 이 책을 통해 빠져있던 부분의 상당수를 메울 수 있었다. 역시, 역사를 읽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



   p.s. 이 책의 저자인 권성욱 작가는 울산 토박이로 울산에서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고향에서 전산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전쟁사에 몰두하며 꾸준히 번역과 집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가정도 꾸리셨고. 정말 멋진 삶이다. :)




   로마제국이 무너진 뒤 유럽이 수많은 나라로 분열된 것과 달리 중국이 단일 제국으로 남은 비결을 두고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많은 서구 학자들은 "중국은 유럽에 견주어 산이나 하천 같은 지리적인 경계가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필립 T. 호프먼 교수는 '정복의 조건'에서 이러한 주장은 유럽의 기준에서 본 막연한 생각일 뿐, 중국에도 지리적 경계가 될 만한 산과 하천이 유럽만큼이나 많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한다. 중국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은 자연지리가 아니라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정체성이다.

                                                                                                                                 - p. 1198. 몽골과 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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