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계획 없이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계획은 안 짜자니 불안한 마음이 생겨서 2일 차에는 계획을 짜 보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직 집에서 보낸 택배도 오지 않아서 할 수 정리할 짐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럼 그렇지, 계획과 루트를 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좋다는 곳의 리스트를 쭉 적어 내려갔지만 '와! 꼭 가야지!' 할만한 곳이 없었다. 이러다가 한 달 동안 방 안에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살짝 엄습해왔다. 아니지! 그러면 뭐 어때!
선물로 받은 케이크 기프티콘을 들고 빵집으로 가서 빵을 잔뜩 사고, 선착장을 구경했다. 낚시,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었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예, 낚싯대 가져오기를 잘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점심으로 먹을 홍게라면을 포장했다. 참 한산하게 사람이 없다는 주인분의 말에 동의했다. 관광지 같지 않게 여유로운 거리였다. 이렇게만 여유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내 욕심이겠지.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방인 줄 알았다. 내 방은 아니었다. 옆 방이 조금 더 비싼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저것 먹고, 계획 짠다고 핑계대면서 뒹굴거리는 동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집 베란다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노을이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핸드폰을 들었다. 주황빛 노을이 눈에도 카메라에도 담겼다. 이틀째 하루의 나태함은 이 노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