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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현 Jan 11. 2023

나를 일으켜주는 숲

곤지암 화담숲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날. 걷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나뭇잎 한 장조차 버겁게 느껴진다면. 그런 날엔 지난 숲길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뒤적인다. 작은 방에서 가만히. 끝없이 사방으로 펼쳐진 하늘과 뚜렷한 경계로 모습을 드러낸 산. 그 속에서 흐르던 바람, 물길, 그리고 나뭇가지의 움직임. 그걸 담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미 내 정신은 숲향기 가득한 자연에 머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 발길이 닿았던 그곳, 지금은 누가 고요히 걷고 있을까, 지금의 풍경은 어떠할까 생각해 본다.     

 

자꾸 휴대폰 사진을 휙휙 넘기다 결국 인터넷으로 화담숲 방문 예약을 했다. 사진 속에 있던 그 추억을 다시 한 번 누려보고 싶어서. 그리고 다시 그 숲으로 갔다. 몸이 힘든 날에도 굳이 숲길을 걸어야겠다면, 아무래도 산책길이 잘 정비된 곳이 좋다. 걷는 코스가 비교적 짧고, 차를 타고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 화담숲은 그렇게 걷기에 딱 제격인 숲이다.


화담숲은 LG상록재단이 운영하는 수목원으로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리조트 옆에 있다. 대부분 경사지이긴 하지만 걷기에 부담없는 완만한 코스를 만들어 두었다. 단풍나무원, 이끼원, 암석원, 수국원 등 17개의 다양한 주제 정원과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화담(和談)’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라는 의미다. 자작나무와 소나무, 이끼와 진달래와 함께 고요하고 향기롭게 대화를 나누며 걷기 좋다. 홀로 방문한 날엔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도 좋다.

   

화담숲 산책로는 크게 두 코스가 있다. 자작나무 숲이 있는 왼쪽 길과 소나무정원이 있는 오른쪽 길. 대부분 산책자는 왼쪽으로 올랐다 오른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한다. 완만한 데크길로 이어진 왼쪽 길로 정상까지 가는 길은 약 2km. 천천히 걸으면 40분 정도 걸린다. 계단으로 만들어진 지름길을 이용하면 훨씬 빨리 오를 수도 있다. 모노레일로 이동하면 걷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숲 입구에서 정상까지, 정상에서 소나무정원까지, 소나무정원에서 다시 숲 입구까지. 숲 사이사이로 이동하기 때문에 모노레일을 타더라도 숲을 느끼는 데는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화담숲은 벌써 N번째 방문이다. 회사 워크숍으로, 친구와 함께, 남편과 함께, 또 2019년엔 장애인고용공단 사보에서 무장에 여행지로 이곳을 취재하러 오기도 했다. 가을엔 단풍을 보러, 겨울엔 조용하고 안전한 숲길을 걷기 위해 종종 방문했던 곳. 이번처럼 혼자 오기는 처음이다. 지나가는 모노레일을 보고 있자니 예쁜 사진을 찍자며 하염없이 모노레일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던 친구의 기다란 목이 떠오른다. 분재원에서 비싼 소나무와 돌을 보고 있자니 ‘이건 설악산 울산바위네, 주왕산 장군봉이네’ 하던 엄마의 목소리도 바람처럼 지나간다. 취재를 위해 나뭇잎 하나, 그 나뭇잎이 타고 다녔던 바람 소리 하나 자세히 듣고자 했던 2년 전의 내 모습도 재잘대는 참새처럼 유쾌하게 지나간다.   

   

기운이 없어서, 움직일 수 없어서 찾았던 화담숲. 화담숲에 남은 좋은 사람들과의 추억이 다시 한번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이곳에서 유난히 늘 즐거워했던 나. 내 좋은 기억들을 숲 곳곳에 생생하게 잘 간직하고 있던 화담숲,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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