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시험을 망치는 20가지 이유
시험기간이 되면 학원에서 계획을 세웁니다. 언제부터 내신 대비를 할지, 교재는 어떻게 할지. 각 반의 수준에 따라 기간이 달라지고 교재가 달라지지요. 하지만 거의 대동소이 합니다. 그리고 근처 학교의 N개년 내신기출문제, 내신 범위 모의고사 기출문제, 예상문제, 문제 유형서 등을 몽땅 제공합니다. 학원에서 주는 문제를 모조리 풀고, 오답까지 100% 다 정리하면 시험을 진짜 잘 볼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문제를 다 풀어내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하루에 70, 80문제씩 매일 풀어야 다 소화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하면 몇과목 씩 시험치는 아이들이 그걸 다 할 수 있을까요?
다른 과목과의 균형까지 고려해주는 학원은 거의 없습니다. 영어 시험도 잘 봐야하니까, 수학 공부는 이정도까지만 하자~하는 수학학원은 없을겁니다. 지난 시험에 과학을 망쳤으니까, 수학보충 빼줄 테니 이번엔 과학 보충에 열심히 가거라~하는 수학학원도 없을거에요. 일단 우리 학원에서 공부하는 과목의 성적이 좋아야하니까요. 타 과목에 비해 우리 학원 과목에 더 신경쓰게 하는 많은 방법 중에 하나가 양치기예요. 양치기는, 일단 문제 양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학원용 은어입니다.
아이들은 시험기간 전에도 아무것도 몰랐고, 시험기간이 된 지금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런데 시험기간이 되면 학원에선 일단 문제부터 풀기 시작합니다. 이론은 예전에 했으니까 안합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예전에 이론 수업을 들었단 이유로 이론 수업을 또 하면 지겨워하기 때문에 안합니다. 시험이 되니까 마음이 급해진 아이들을 위해, 그 급한 마음을 달래느라 바로 문제부터 푸는거죠.
네, 예전에 이론을 한 번 했으니까 문제를 풀다보면 뭔가 알게 되기도 하겠죠. 하지만 이렇게 시작한 수학공부는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이런식으로 시험대비를 하다보면 아이들은 대부분 비슷한 질문을 하게 되는데요, 이런 식입니다.
“선생님, A 문제는 OO를 이용해서 푸는 문제죠? XX를 이용해서 푸는 건 B문제 같은 거죠?”
학생들은 수학에서 배우라는 논리나 추론은 한쪽에 고이 접어두고 A유형엔 A풀이다 식의 외우기 전략을 씁니다.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과정을 추론하지 않고 정해진 과정을 머릿속에 입력합니다. 뭐, 그 입력한 걸 다 외우면 그나마 다행인데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고요.
이런식으로 공부를 하다가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보면, 모조리 다 모르는 문제겠죠. 내가 외운 유형이 아니니까요. 시험에서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만나면 별로 어려운 문제가 아니더라도 ‘처음보는 문제’, ‘모르는 문제’라 단정하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당황하면서 못 풀고, 시험을 망칩니다. 이런 건 모두 유형별 문제풀이로 접근한 양치기에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학원에서 문제는 많이 푼 것 같은데, 정리가 안된다.”
이런 느낌이 들었다면 지금 시험 공부를 완전 잘못하고 있단 신호입니다. 당장 지금 하는 걸 중단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하루 이틀만에 70~80문제를 숙제로 풀어 오라는 학원이요? 그 학원은 빡세단 소문이 퍼지길 원하는 거에요. 어떤 학생이 그만둔 이유가 ‘그 학생이 학원의 빡셈을 견디지 못해 그만뒀다’가 되길 원하는 거죠. 책임을 학생 측으로 넘기고 있는 것일 뿐이예요. 그런 학원은 학생의 수학실력이 오르는 것을 원하는 곳이 아닐 확률이 큽니다. 일단 많이 던져주는 거죠. 잘하는 학생들은 사실 어떤 상황에서도 잘 할 겁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은 성적이 안 오를 확률이 크고, 성적이 안 오른 건 학원에서 주는 걸 다 하지 않았기 때문인 거죠. 그럴듯 하지 않나요?
아, 물론 학원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거의 100% 진심일겁니다. 제가 본 대부분의 학원 강사들은 학생들을 정말 아끼고, 그들의 성적이 오르길 바라거든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사업체로서 학원의 마인드입니다. 그런 콘셉트의 학원에서도 좋은 선생님들이 들어와주면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줄 수 있을 텐데요, 이건 또 주제에서 벗어나는 문제니까 이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학원이 어떤 학원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선생님을 만나 공부하게 되냐입니다.
푸는 문제의 양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내 수준에 맞는 문제를 적당량 푸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딱, 거기서부터 실력을 올릴 수 있는 문제를 선별하고 제공해줄 수 있는 선생님이 필요하고요.
그럼, 최적의 학습은 이상적인 선생님과 함께하는 과외인가요? 글쎄요. 대신 집합학습을 하는 학원에서는 이런 학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