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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Feb 27. 2024

길을 잃었습니다.

파업이 시작된 지 이제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1주일이란 시간은 꽤나 많은 적응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시간이지만 그럼에도 감정의 기복은 태풍의 가장자리에 놓인 바다와 같습니다. 본인의 생각을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패배감에 휩싸인 채 그저 빨리 현 상황이 마무리되고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나이트 근무가 끝난 뒤 일어나고 가장 먼저 접한 속보였습니다. 눈을 의심했습니다. 정말 통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정부는 작년 거부권을 행사하여 간호법을 무산시켰습니다. 물론, 전 작년에 간호법을 반대했던 사람입니다. 당시 발의 되었던 간호법은 취지는 좋았지만 의료법을 복사 붙여넣기 정도 한 것뿐, 그 당시 우리의 상황을 개선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간호법이 의료계열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며, 국민 건강의 안전에 위해가 될 수 있다는 워딩은 너무나도 분했습니다. 그리곤 그나마 우리가 지켜왔던 명예와 권리가 다른 직군들에 게 위협을 받는 상황들과 저항할 수도 없는 강압적인 간호대 정원 증원 결정 등으로 핍박받은 작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가 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지금,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우리를 최소한의 법적인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사지로 내몰려고 하는 듯 보입니다. 현장에 남아있는 우리 인력들은 우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우리의 일터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역병 때문에 위협을 받았던 지난 몇 년과 달리 서로의 이익을 위해 벌어진 상황 속 틈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단 말입니다. 하지만 그 노력은 한 문장으로 무너졌습니다. 

의료 공백을 메꾸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아프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환자들은 죄가 없습니다. 병원은 결코 오고 싶은 곳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남아있는 간호사가 하릴없이 필요한 업무를 다하는 것도 이번 일주일 동안 많은 생각을 하며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제에는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선’이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우리 간호사를 작금의 사태를 도와줄 수 있는 중요한 일원으로 생각한다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 협조를 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정부는 불법으로 인정한 행위를 직접 인정하고 싶지 않아 병원장에게 그 역할을 맡기는 겁니까? 이미 지금도 수많은 곳에서 불법 행위가 만연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누군가 한 명에게 그 역할을 일임한다니요. 간호사도 그저 한 명의 직장인일 뿐입니다. 우리를 종속 관계의 사지로 몰지 말아주세요. 

더 이상 강압적인 엄지는 받고 싶지 않습니다. 닳아서 없어질 대로 없어진 날개를 억지로 달아 영웅 취급을 받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전 이번 일이 끝나고 난 뒤의 우리의 위치가 더더욱 두렵습니다. 

동료에게도, 국가에도 기댈 곳이 없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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